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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나는 허락 못한다

  • “할 수 있어.”
  •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 “배도형, 이 아이는 아빠가 필요해. 화목하고 건전한 가정이 필요하다고!”
  • 허아영은 그를 설득하려 했다. 그녀는 건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가정이 아이한테 주는 상처가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 그녀는 이 아이를 일시적인 충동 때문에 낳고 싶지 않다.
  • 배도형은 앞에 있는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며 그녀는 확실히 성숙하다는 생각을 했다.
  • 둘 다 고민에 빠졌다.
  • 그녀는 그가 어려움을 알고 물러났으면 했다.
  • 그는 그녀가 자신을 직시하며 편견을 갖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했다.
  • “배 씨 가문이 책임질 거다.”
  • 갑자기 거실 문이 열리고 배진화가 문 앞에 서서 차분히 입을 열었다.
  • 허아영이 배도형한테는 큰 소리를 쳐도 배진화앞에서는 못한다.
  • 배진화는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 허아영은 그 배도형과 아주 비슷한 다갈색 눈동자를 보며 가슴이 떨렸다.
  • 배진화가 말했다.
  • “배 씨 가문의 아이는 당연히 배 씨 가문이 책임져야지. 내 아들도 당연히 남자로서의 책임을 질 거다.”
  • 허아영은 순간 하늘에 벼락이 쳐서 그녀를 데려갔으면 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결혼식에 참가하라고 큰소리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직속 상사가 미래의 시아버지가 됐다고?
  • 그녀는 시선을 돌려 눈앞의 철부지를 노려보았다.
  • 배도형은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미간을 찌푸리며 배진화를 향해 물었다.
  • “엄마는…?”
  • 배진화는 대답하지 않고 허아영한테 말했다.
  • “아영아, 안심해. 도형이가 이런 짓을 한 이상 내가 책임지게 할 테니. 배 씨 가문도 널 소홀히 대하지 않을 거야.”
  • 배도형은 눈썹을 살짝 치켜들었다. 아버지는 이 며느리가 마음에 드시나 본데?
  • 생각한대로 배진화가 또 말했다.
  • “도형이 엄마도 이 소식을 들으면 기뻐할 거야.”
  • 허아영의 올라간 입꼬리가 굳었다. 전 하나도 안 기쁜데요?
  • 하필이면….
  • 배진화 앞에서는 소란을 피울 수도 없고.
  • 배도형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 “아버지, 엄마 쪽은 문제가 없는 게 확실해요?”
  • 허아영은 지금 당장이라도 배도형의 엄마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싶다.
  • 그러나 배진화가 말했다.
  • “당연하지. 너희 엄마 몸 상태는 너도 잘 알잖아. 네가 장가가는 걸 보려고 버티는 거야.”
  • 배진화는 아내 얘기를 꺼내자 얼굴에 근심이 스쳤고 허아영은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 ….
  • 배진화의 사무실에서 나와 동료들을 등지고 있어도 그들의 따가운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허아영은 지금 당장 배도형의 엄마를 만나서 ‘나는 허락 못한다.’ 라고 하는 걸 듣고 싶었다.
  • “우리 지금 어머니 만나러 가?”
  • 허아영의 맑은 눈망울엔 기대가 들어있었다.
  • 배도형은 그녀의 마음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그는 그녀의 속셈이 물거품이 될걸 생각하니 웃음을 참지 못했다.
  • “맞아, 지금 만나러 가.”
  • 허아영의 마음은 거의 흥청거렸다. 당장 가서 거절당해 말하고 싶었다. 봐, 내가 안 낳는 게 아니라 너희 배 씨 가문에서 허락을 안 한 거야! 라고.
  • 배진화가 나오는 걸 기다린 후 일행은 곧장 인애병원으로 향했다.
  • 허아영은 병원에 들어갈 때 이곳과 인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 병원에서 임신 검사를 했고 심지어 오늘 오후에 인공 유산 수술까지 예약했는데 배도형의 엄마도 이 병원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다니. 그러면 거절당한 후에 약속대로 수술을 바로 할 수 있다.
  • 곧 그들은 병실에 들어갔다. 허아영은 긴장한 듯 소파에 앉아 배도형의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녀는 그 여자를 어떻게 맞추어 주어야 되는지 고민했다. 그러나 허약한 성설은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자마자 허아영의 손을 잡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본 허아영은 마음속에서 한바탕 울부짖었다.
  • 이게 아닌데.
  • 대본을 이렇게 쓰면 안 되지!!
  • 성설은 날 보자마자 절대 동의하지 않아야 되는 게 아닌가?
  • 하지만 지금 이건, 분명히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거잖아!
  • 허아영은 가슴까지 떨렸다. 곁에 있던 성설은 작은 소리로 물었다.
  • “아영아, 의사는 뭐라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