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아영은 그를 설득하려 했다. 그녀는 건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가정이 아이한테 주는 상처가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이 아이를 일시적인 충동 때문에 낳고 싶지 않다.
배도형은 앞에 있는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며 그녀는 확실히 성숙하다는 생각을 했다.
둘 다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그가 어려움을 알고 물러났으면 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직시하며 편견을 갖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했다.
“배 씨 가문이 책임질 거다.”
갑자기 거실 문이 열리고 배진화가 문 앞에 서서 차분히 입을 열었다.
허아영이 배도형한테는 큰 소리를 쳐도 배진화앞에서는 못한다.
배진화는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 허아영은 그 배도형과 아주 비슷한 다갈색 눈동자를 보며 가슴이 떨렸다.
배진화가 말했다.
“배 씨 가문의 아이는 당연히 배 씨 가문이 책임져야지. 내 아들도 당연히 남자로서의 책임을 질 거다.”
허아영은 순간 하늘에 벼락이 쳐서 그녀를 데려갔으면 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결혼식에 참가하라고 큰소리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직속 상사가 미래의 시아버지가 됐다고?
그녀는 시선을 돌려 눈앞의 철부지를 노려보았다.
배도형은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미간을 찌푸리며 배진화를 향해 물었다.
“엄마는…?”
배진화는 대답하지 않고 허아영한테 말했다.
“아영아, 안심해. 도형이가 이런 짓을 한 이상 내가 책임지게 할 테니. 배 씨 가문도 널 소홀히 대하지 않을 거야.”
배도형은 눈썹을 살짝 치켜들었다. 아버지는 이 며느리가 마음에 드시나 본데?
생각한대로 배진화가 또 말했다.
“도형이 엄마도 이 소식을 들으면 기뻐할 거야.”
허아영의 올라간 입꼬리가 굳었다. 전 하나도 안 기쁜데요?
하필이면….
배진화 앞에서는 소란을 피울 수도 없고.
배도형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아버지, 엄마 쪽은 문제가 없는 게 확실해요?”
허아영은 지금 당장이라도 배도형의 엄마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싶다.
그러나 배진화가 말했다.
“당연하지. 너희 엄마 몸 상태는 너도 잘 알잖아. 네가 장가가는 걸 보려고 버티는 거야.”
배진화는 아내 얘기를 꺼내자 얼굴에 근심이 스쳤고 허아영은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
배진화의 사무실에서 나와 동료들을 등지고 있어도 그들의 따가운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허아영은 지금 당장 배도형의 엄마를 만나서 ‘나는 허락 못한다.’ 라고 하는 걸 듣고 싶었다.
“우리 지금 어머니 만나러 가?”
허아영의 맑은 눈망울엔 기대가 들어있었다.
배도형은 그녀의 마음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그는 그녀의 속셈이 물거품이 될걸 생각하니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맞아, 지금 만나러 가.”
허아영의 마음은 거의 흥청거렸다. 당장 가서 거절당해 말하고 싶었다. 봐, 내가 안 낳는 게 아니라 너희 배 씨 가문에서 허락을 안 한 거야! 라고.
배진화가 나오는 걸 기다린 후 일행은 곧장 인애병원으로 향했다.
허아영은 병원에 들어갈 때 이곳과 인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 병원에서 임신 검사를 했고 심지어 오늘 오후에 인공 유산 수술까지 예약했는데 배도형의 엄마도 이 병원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다니. 그러면 거절당한 후에 약속대로 수술을 바로 할 수 있다.
곧 그들은 병실에 들어갔다. 허아영은 긴장한 듯 소파에 앉아 배도형의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녀는 그 여자를 어떻게 맞추어 주어야 되는지 고민했다. 그러나 허약한 성설은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자마자 허아영의 손을 잡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본 허아영은 마음속에서 한바탕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