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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너는 악덕 상인이다

  • “내가 그렇게 없어 보여?”
  • 배도형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의문이 가득 찬 눈동자로 허아영을 바라보았다.
  • “그 문제가 아니야.”
  • 허아영은 잠시 멈칫하고 그를 쳐다보고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 앞으로 걸어가면서 가볍게 한마디를 하였다.
  • “애당초 너한테 돈 벌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어.”
  • 그녀의 속마음은 확실히 그러하였다. 배 씨 가문이 T시에서 꽤 유명한 큰 기업이기는 하지만 자식들한테 재산을 상속하여 생활을 유지하게 하지 않은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렇기에 허아영의 말은 충분한 근거가 있었고 배도형의 과격한 성격도 근거로 한몫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사실이 뭇사람들한테는 몹시 의아한 일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
  • 매니저는 손을 뻗어 코를 만지작거리며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계속 길만 안내하였다. 배도형도 내키지 않았지만 허아영의 발걸음을 쫓아갔다.
  • “내가 돈 벌어서 가정을 꾸릴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데 시집을 왔어?”
  • 그는 매번 자신을 어리게 생각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 “내가 너를 굶겨 죽일까 봐 두렵지 않아?”
  • “아니.”
  • 매니저가 걸음을 멈추자 허아영은 곧장 안으로 들어가고 자신의 배를 만지며 말했다.
  • “이런 상황에서는 배 씨 가문에서 굶어 죽지는 않겠지.”
  • 배도형의 얼굴에는 그늘이 덮였고 눈앞의 그녀가 단지 배 씨 가문의 그늘 밑에서 바람을 쐬려는 간사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 “도련님, 평소대로 주문을 할까요?”
  • 매니저는 예의 바른 말투로 그한테 물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허아영의 정체에 대해 자세히는 몰라도 이러한 센스는 구비하고 있었다. 하물며 허아영이 방금 전 자신의 배를 만지는 제스처를 취하였기에 함부로 그녀를 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 “저 사람한테 주문하라고 해!”
  • 배도형은 심술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매니저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 “돈 챙겼어? 얼마나? 내가 시키는 것을 감당할 수 있겠어?”
  • 허아영은 메뉴판을 넘겨받으면서 다시 한번 확인을 하였다. 혹시라도 잠시 후 로열 캐슬의 대접에 배도형의 알량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날 까봐 찝찝하였기 때문이다.
  • “허! 아! 영!”
  • 배도형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의 분노가 들어찬 눈동자 속에는 허아영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 “걱정하지 마, 네가 로열 캐슬 안의 모든 음식을 죄다 주문을 해도 감당할 수 있어.”
  • “와!”
  • 허아영은 놀란 토끼 눈으로 배도형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 “배 씨네 가문이 원래 이렇게 부자구나!”
  • “이건 내 돈이야! 가문하고는 일말의 관계도 없어!”
  • 배도형은 눈앞에 앉아있는 그녀를 죽일 수 없는 게 한스러울 정도였다. 그녀의 눈에는 그가 그렇게 쓸모없는 사람인가? 밥 한 끼도 사줄 수 없을 정도로? 심지어 그녀는 그가 집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것 같았다.
  • “정말?”
  • 허아영은 손이 가는 대로 몇 가지 메뉴를 주문한 뒤 뒤에 서있던 매니저한테 넘겨주면서 그한테 말을 걸었다.
  • “혹시 몰래 범법행위를 하고 있어? 마약 밀수? 총기 판매?”
  • 매니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말을 잇지 못했으며 방문을 나가지도 못했다. 자신의 상사가 자리에 있으니 그가 어떻게 감히 먼저 나가겠는가! 그것은 그가 일자리를 내놓겠다는 말이 아닌가?
  • “허! 아! 영!”
  • 배도형의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화가 나서 터질 지경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교양 있게 자라왔고 여태껏 한 번도 여자와 얼굴을 붉힌 적이 없었다. 허아영은 처음으로 자신을 이렇게 막 대하는 여자였고 그녀의 말을 듣고 그는 화를 내는 방법 외에는 달리 반박을 할 방법이 없었다.
  • “나는 참된 상인이야!”
  • “상인?”
  • 허아영은 고개를 숙이고 싱긋 웃었다. 그녀는 이상하게 그가 화를 내면 낼수록 기분이 좋았고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 “그럼 너는 악덕 상인이로구나.”
  • “너야말로!”
  • 배도형의 자연스러운 말대꾸는 허아영으로 하여금 그가 더욱 귀여운 어린아이처럼 느껴지게 하였다. 그녀는 자신한테 배도형과 같은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 배도형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녀의 맑은 눈망울에 별빛이 투영된 듯 반짝거렸고 어찌나 밝고 예쁜지, 그 요염하게 휘어진 입꼬리도 그야말로 황홀한 기분이 들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