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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말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하지 마

  • 왠지 모르게 배도형의 달라진 눈빛에 허아영은 긴장을 하며 재빨리 몸을 돌려 매니저에게 물었다.
  • “음식은 언제 나와? 배고픈데.”
  • 매니저와 배도형이 허물없는 사이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그녀와 매니저도 거리낌이 없었고 그 상황이 비록 이상은 했지만 종종 그런 일이 있곤 하였다.
  • “곧 올라올 것 같아요. 잠시만요.”
  • 매니저는 예의 바른 대답으로 허아영과 친해 질 수 있는 타이밍을 회피하였는데 그녀가 싫어서가 아니라 호칭을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었다. 하물며 그의 도련님도 입을 열지 않았기에 자신이 미리 짐작하여 경거망동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배도형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이 무슨 주책인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홀로 답답해하고 있었다.
  • 곧 요리가 나왔고 배도형은 음식을 보고 별다른 말이 없었으며 허아영은 그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젓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하였는데 그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 같았다.
  • 배도형은 허아영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 “내가 너를 굶겼어? 왜 그렇게 급하게 먹어?”
  • 허아영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로열 캐슬의 대우를 받으며 급하게 국을 한 그릇을 해치우고 또 한 그릇을 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말할 타임이 생겼다.
  • “8시 전에 돌아가야 되는데 급하게 먹지 않으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 허아영은 그를 재촉하며 시계를 쳐다보니 벌써 7시가 된 것을 보고 더욱 조급해났다.
  • “너는 무슨 일해?”
  • 허아영은 배를 채우고 난 뒤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임산부는 다 이런 것인가? 항상 배가 고파서 먹을 것만 보면 달려들어 먹기 급급해서 이미지가 참으로 말이 아니었다.
  • “이제 와서 네 남자가 뭘 하는지 신경을 쓰면 늦었다고 생각되지 않아?”
  • 배도형은 시원치 않은 듯한 말투로 그녀한테 물었다.
  • “흥! 네 체면을 봐주려고 물어봤는데 말하고 싶으면 말하고 안하고 싶으면 하지 마!”
  • 그녀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면서 그한테 말했다.
  • 배도형은 똑바로 앉아서 한창 맛있게 먹고 있는 허아영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새우만두를 한입 베어 물자 즙이 나오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행복하였다. 그녀는 참으로 먹을 복이 있었는데 첫 끼를 로열 캐슬로 먹는 것은 보통 입맛이 아니었다. 허아영의 말에 찔린 배도형은 아예 입을 다물었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며 그녀가 스스로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는 아직도 자신의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그녀가 믿기지 않았다.
  • “진짜 말 안 할 거야?”
  • 역시나 허아영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였다. 배 씨 도련님이 배 씨 가문에 출근을 하지 않는 이상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여느 집 재벌 2세가 특출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 배도형은 이내 까불며 젓가락을 들어 우아하게 음식을 한입에 삼켰고 이 모습이 다른 여성들한테는 멋져 보일 수도 있었지만 허아영의 눈에서는 그가 생색을 내며 까불거리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 “내가 보기엔 네가 말하기 쑥스러워 하는 것처럼 보여!”
  • 허아영은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입술을 닦고 교양이 있는 듯한 모습으로 시치미를 떼면서 말을 이어갔다.
  • “배 씨 가문 몰래 무슨 떳떳하지 못한 짓을 했길래 이렇게 꺼려 하지?”
  • 배도형은 순간 젓가락을 들고 있던 손이 얼어붙은 듯하였다. 떳떳하지 못한 짓? 나를 지금 호스트 취급을 해? 그녀는 아무런 말이나 꺼리지 않고 무슨 말이든 다 하였는데 그 또한 배도형 한테만 한정된 것이었다.
  • “허아영. 지금 네가 내 아이를 가졌다고 내가 너한테 아무 짓도 못한다고 착각하지 마!”
  • 가끔은 배도형도 그런 그녀를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 궁금하면 그냥 물어보면 될 일인데 굳이 그의 신경을 자극을 할 필요가 있을까?
  • 어쭈! 성깔을 부려!
  • 허아영은 눈썹을 치켜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 “야. 체육 선생님한테서 국어를 배웠어?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 길 가던 사람한테 물어봐 봐! 누가 너처럼 이해하냐고.”
  • 그녀는 시비를 거는 듯한 모습으로 그를 쏘아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 “괜히 나를 예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할까 봐 다시 설명해줄게. 내 뜻은 혹시 네가 마약 밀수나 총기 판매를 하고 있느냐는 뜻이야! 멍청아!”
  •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배도형의 안색은 순식간에 안 좋아졌고 뒤에 서있던 매니저는 삭막한 공기흐름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명색이 배 씨 가문의 도련님인데 언제 이런 굴욕을 당해 봤을까, 그녀의 용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