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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한 번뿐인 결혼

  • 허아영은 분명 알아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겁도 없이 다시 물었다.
  • “무슨 말?”
  • 배도형은 드라마의 남주인공처럼 멋지게 자신의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어쩌겠냐는 듯이 말했다.
  • “기억을 하지 못하나 보군.”
  • 허아영이 손을 쓸 틈도 없이 배도형은 아무런 말도 없이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이번은 저번보다 가볍게 더 수위 높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허아영이 그의 행동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허아영이 그를 밀쳐내려고 하는 순간 배도형은 그녀를 놓아주고 그녀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자신의 커다란 손에 꼭 쥐었다. 둘이 이러는 사이에 카메라맨은 아까부터 찰칵찰칵하며 촬영하면서 말했다.
  • “그래요! 바로 이거예요! 좀 더 격정적이게 해도 좋을 텐데!”
  • 배도형은 자신의 품속에 있는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 그녀는 마치 한 손으로 쥐락펴락할 수 있을 만큼 작았다. 그리고 그녀는 아름다웠다.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메이크업을 하지 않아도 예쁜 그녀는 특히 화를 내면서 얼굴을 붉히며 자신을 바라볼 때 배도형은 자기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 그는 그런 여인이 자신의 아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한테 어떤 짓을 해도 다 받아줄 수 있는 그런 여인.
  • 그는 그녀의 손을 더 꽉 쥐고 그녀 손의 온기를 느꼈다. 마치 둘이 몸을 맞대고 있는 것처럼 그 온기는 배도형을 편하게 해줬다. 그러면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기도 했다. 그러면서 배도형은 처음으로 그녀와의 결혼생활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따분할 날이 없을 것만 같았다.
  • “이제 기억나?”
  • 배도형은 목을 구부리며 쉰 목소리로 그녀한테 물었다. 그 와중에 셔터 소리는 더 빠르게 들렸다.
  • 그는 허아영은 놓아주면서 한편 움츠리고 있었다. 또 언제 갑자기 귀싸대기가 날아올지 모르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맨과 직원들도 있는 앞에서 그런 꼴을 당할 수는 없었다. 그는 허아영의 눈에 분노가 가득 찬 것을 볼 수 있었다.
  • “배도형! 이 저질!”
  • 그녀는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는데 움직이려 하니 자신이 배도형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화가 나 그를 째려보며 한다는 말이 겨우 그한테는 별 타격이 없는 말이었다. 배도형은 그 말을 듣고 웃겼는지 입꼬리가 올라갔다.
  • “근데 어떡하지? 네 남편은 자기 마누라한테 저질스러운 짓을 하는 걸 너무 좋아하는걸?”
  • 웨딩 촬영 장소를 바꾸면서 허아영은 화가 잔뜩 난 채 배도형을 어떻게 골탕을 먹일지 계속 생각했다.
  • 마침 그녀가 옷을 다 갈아입고 나올 때 배도형이 밥 먹을 곳을 정하는 소리를 들었다.
  • “두 명. 룸으로 잡아줘.”
  • 허아영은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그녀는 콧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는 배도형의 달팽이관을 비볐다.
  • “자기야. 나 ‘로열 캐슬’가고 싶은데…. 오늘은 거기 가면 안 돼? 못 간지 너무 오래됐는데….”
  • ‘로열 캐슬’?! 이 네 글자가 들리자마자 주위는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 강성의 배 씨 가문은 이 나라에서 가장 잘나가는 집안 중 하나이긴 하지만 배 씨 가문만의 철칙이 있었는데 바로 자식 교육이 엄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배 씨 그룹의 도련님들은 모두 자기 힘으로 먹고사는데 배 씨 그룹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낙하산은커녕 샐러리맨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더구나 소문에 의하면 배도형은 배 씨 그룹에서 일을 한 적이 없을뿐더러 아직 어려서 ‘로열 캐슬’에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 배도형은 머리를 돌려서 웃으며 대답을 기다리는 허아영을 보며 그저 입가를 오므리고 눈썹을 치켜들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허아영은 배도형 앞으로 가서 계속 떼를 썼다.
  • “자기야. 나도 ‘로열 캐슬’이 만만치 않은 건 알아. 하지만 한 번뿐인 결혼인데 가면 안 돼? 응? 자기야.”
  • 한 번뿐인 결혼?
  • 허아영은 단지 배도형을 골탕 먹이려 한 것뿐이었는데 자기의 그 말이 누군가의 기분을 망칠 것을 몰랐다.
  • “이미 예약 다 했어. 이따 가자.”
  • 어라? 허아영은 잠시 정신줄을 놓았다. 그녀가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기도 전에 배도형은 몸을 숙여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 “이제 보니 입이 비싸네? 신부님?”
  • ‘로열 캐슬’? 그녀가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곳인가?
  • 허아영은 겨우 정신을 차렸지만 입꼬리가 굳었는지 내려가지 않았다.
  • “칭찬으로 들을게. 퉁퉁이.”
  • 조금만 있으면 그가 ‘로열 캐슬’에서 얼마나 쩔쩔맬지 두고 보자고!
  • ….
  • 마지막 촬영까지 끝내고 허아영은 지쳐 있었다. 웨딩 촬영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그녀는 생각도 못 했다. 겨우 임신 2개월도 이렇게 힘든 지도 몰랐다.
  • 갑자기 그녀는 가느다란 허리에 온기가 느껴졌다. 배도형이 팔에 힘을 줘서 그녀를 자신의 품에 가뒀다. 품에 파묻힌 그녀의 코는 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원래 그녀는 배도형이 철이 들어서 자신을 챙겨 줄 것을 바라지도 않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아마 그녀가 그를 오해한 것 같았다.
  • 둘의 케미를 본 카메라맨은 둘이 정말 천생의 한 쌍 같았다. 조금 전까지도 원수지간 같던 둘이 어느새 잉꼬부부가 될 수 있는 거지? 또 소문으로만 듣던 T시의 배 씨 도련님이 또 이렇게 부드러운 분이었나?
  • “오늘 식사를 마치고 우리 친정집에 가자. 너도 우리 가족을 볼 때가 됐어.”
  • 배도형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