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아영은 고개를 숙이고 눈살을 찌푸렸다. 줄곧 배도형이 가부장적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축 처진 눈동자에는 자신의 평평한 아랫배가 보였다. 허아영이 그의 가슴 위에 놓인 손을 살짝 쥐고 작게 말했다.
“배도형, 이제 우리 정말로 결혼하네.”
배도형이 대답하기도 전에 허아영은 또 말했다.
“결혼하면 넌 이제 유부녀야.”
“그게 뭐 어때서?”
허아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그와 자신을 조롱했다.
“이것도 네가 성장했다는 걸 증명하는 방식이겠지.”
이번에 배도형은 화를 내지 않았고 다만 그녀의 말속의 조롱을 알아듣고 달갑지 않게 말했다.
“허아영, 이 혼인은 네가 먼저 승낙했으니까 너와 내가 달갑지 않아도 이제 와서 만회할 여지가 없어. 특히 노인네가 돌아온 지금은 더 그렇고!”
“노인네?”
허아영은 의문스러운 듯 고개를 들었다. 아이처럼 궁금해하는 모습이 잠깐 귀여워 보였다.
“우리 할아버지.”
배도형은 왠지 모르게 화가 반쯤 풀려서 말했다.
“밤에 만나보면 알 거야.”
바로 이때, 카메라맨이 큰 성공을 거뒀다고 선언하자 배도형은 허아영을 끌어안고 쉼터로 가서 쉬며 말했다.
“쉬었다가 옷 갈아입어. 내가 아래층에서 기다리면서 일 좀 처리할게.”
허아영은 배도형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입을 삐죽 내밀었다. 네 살 연하의 남자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친근하게 대하기를 바라지 않은 데다가 또 그녀의 성격상 이런 말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여보, 나 피곤하니까 여기서 기다려. 나랑 같이 이야기도 좀 하고 쉬었다가 다시 볼일 보러 가.’
허아영이 자신을 추스르고 내려왔는데 배도형은 스튜디오 입구에 있는 그의 차 안에서 노트북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말 바쁜 것 같았다. 허아영은 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순순히 입구 앞에 있던 랜드로버에 올라타자 배도형은 허아영이 이렇게 빨리 내려올 줄은 미처 몰랐는지 조금 놀라 물었다.
“벌써 다 쉬었어?”
“나 배고파.”
허아영은 그를 보지도 않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쉬었다.
배도형은 허아영이 왜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차가 빠르게 시동이 걸리자 허아영은 살짝 한숨을 돌렸다.
그녀도 자신의 기분이 왜 갑자기 나빠졌는지 알지 못했다.
….
‘로열 캐슬’ 입구에서 랜드로버가 막 멈추자 누군가 올라와서 자발적으로 주차했다.
허아영은 배도형을 따라 내렸는데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로열 캐슬’ 매니저가 마중 나와 깍듯이 인사하고 말했다.
“배 씨 도련님.”
그제야 허아영이 배도형을 진지하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아니, 배 씨 가문은 뭐 하는 곳일까?
듣자하니 배 씨 그룹 측에서 배 씨 가문 사람들은 요식업을 하면 안 된다고 규정했고 또 배 씨 가문은 요식업과 무관하다고 하니 ‘로열 캐슬’의 태도가 너무 이상해 보였다.
“너 여기 자주 와?”
의혹 속에 허아영은 작은 소리로 물었다.
“매일 와.”
배도형은 사실대로 대답하고 손을 뻗어 허아영의 허리를 감싸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화려하고 웅장한 ‘로열 캐슬’로 걸어 들어갔다.
‘로열 캐슬’에 들어서자마자 허아영은 이곳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공간이 이상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배도형을 대하는 태도가 이상했다!
왜 모든 사람들이 ‘배 씨 도련님’이라고 깍듯하게 부르는 거지?
배도형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허아영이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인테리어는 이름 그대로 으리으리했지만 그렇다고 촌스러워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장엄함까지 느껴졌다. 게다가 이런 환경에 옆에 있는 철부지까지 더해져 그녀는 더욱 궁금해졌다.
이곳의 주인은 젊고 멋있지만 장사하는 수완이 매섭고 날카롭다는 소문이 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로열 캐슬’을 전국 곳곳에 열었을까. 또 누가 이곳의 위상을 이런 자리까지 올려놓았을까.
‘로열 캐슬’에 들어가는 것은 부잣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이런 소문은 간단하지 않았다.
“배도형, 돈 가지고 왔어?”
허아영은 배도형을 보며 갑자기 다짜고짜 물었다.
그녀는 이곳 사람들이 그에게 그렇게까지 예의를 갖추는 이유가 그가 배 씨 가문의 도련님인 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배도형이 아무리 배 씨 가문의 도련님이라고 해도 여기서 무전취식을 할 수는 없을 것이고 또 그녀는 그에게 짓궂은 장난을 하려는 목적을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