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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여지

  • 서지형은 멍해졌다. '버린다'는 이 말이 마치 날카로운 비수처럼 그의 마음에 박혔다. 그는 그 비수가 언제 빠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가 그녀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것처럼.
  • 서지형은 갑자기 심장이 아팠다. 그는 인상을 찌푸린 채 손을 뻗어 자신의 가슴에 파고든 안한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어젯밤, 유 비서는 안한미가 학교에서 싸운 일에 대해 알아보았고, CCTV도 확보했다.
  • 서지형은 그렇게 안한미가 다 컸다는 걸 깨달았다.
  • 그녀의 세계에는 남녀 간의 사랑이 생기기 시작했고, 가족과의 사랑이 아닌 다른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석이라는 남자아이를 보면 얼굴이 빨개졌고, 서지형 본인이 아닌 다른 이성이 그녀를 안는 것도 허락했다.
  • 그것이 서지형이 화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는 그 사실만큼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 내친김에 아예 방향을 틀었다.
  • “안한미, 또 싸우게 되면 더 세게 때려.”
  • 서지형이 갑자기 말했다.
  • 안한미는 멍하니 서서 고개를 들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 “누구든지 너를 괴롭히면, 똑같이 되갚아줘야 해. 그리고 끝까지 가. 여지를 남기지 말고.”
  • 서지형의 진지한 눈빛이 안한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촉촉하고 큰 눈은 어렸을 때부터 예뻤고, 자라고 나니 더 매력적이었다. 서지형의 마음에 거의 감전될 것 같이 전기가 흘렀다.
  • “너는 다른 사람을 괴롭혀도 되지만, 다른 사람은 절대 널 괴롭혀선 안 돼.”
  • “알겠어?”
  • 짧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안한미의 귀에 꽂혔다. 그녀는 울음을 그쳤다. 서지형이 그렇게 말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 “아저씨, 저한테 화난 거 아니에요?”
  •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나는 우리 한미가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 때문에 화난 거야.”
  • 우리 한미가, 괴롭힘을 당했다.
  • 그 말은 그대로 안한미의 마음 속에 새겨졌다. 타오르는 듯한 느낌 때문에 몸이 떨렸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 그녀가 몰랐던 것은 몇 년 후 그 말이 엄청난 모순처럼 느껴질 것이란 사실이었다.
  • “오늘 밤에 출국해야 해. 핸드폰 계속 가지고 다니는 거 잊지 마.”
  • 원래 어젯밤 비행기였지만 안한미의 일 때문에 오늘 밤으로 바꾼 것이었다.
  • 안한미는 서지형의 바쁜 삶에 익숙했다. 그저 그가 외국에 나갈 때마다 혹시 비가 내릴까봐 두려울 뿐이었다.
  • “네,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 그녀는 서지형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애교 부리듯 몸을 배배 꼬았다.
  • 서지형은 무언가가 몸에 닿는 것을 느꼈고,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안한미를 떼어낸 후 옆으로 비켰다.
  • “내려가서 밥 먹어.”
  • ----
  • 학교.
  • 안한미는 학교 정문에 도착했을 때 인파 속에서 소석을 발견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했다.
  • 안한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학생들 틈에 껴서 안으로 들어갔다.
  • “안한미!”
  • 소석은 눈이 밝았다. 단번에 안한미를 알아보고는 안한미를 부른 것이다. 모든 학생들이 그의 시선을 따라 안한미를 쳐다보았다.
  • 많은 여학생들이 질투 어린 눈빛을 쏘아대서 안한미는 더 난처해졌다.
  • 소석은 인파를 헤치고 안한미에게 다가왔다. 잘생긴 얼굴은 아침 햇살 아래서 더 빛이 났다. 안한미는 서지형이 아닌 다른 남자와 이렇게 마주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안한미는 긴장되어 죽을 것 같았다.
  • “어제 아무 일 없었지? 장 주임은 속물이야, 그 선생님...”
  • “게시판 좀 봐봐, 장 주임 해고됐대!”
  • “정말? 갑자기 웬 해고야?”
  • 소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학생들이 그를 데리고 게시판을 보러 갔다. 그 소식을 듣고 안한미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가방끈을 꽉 잡았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 왜냐하면 그녀는 장 주임이 해고된 건 서지형이 화났기 때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 소석은 게시판을 보고 흥분해서 달려왔다.
  • “안한미, 그 인간 해고됐대! 이건 기념해야지?”
  • “기념?”
  • 안한미는 이런 일을 기념해야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 “우리 둘 다 그 선생 때문에 고생했잖아. 동병상련 처지인데 오늘 저녁에 학교 끝나고 내가 밥 사줄까?”
  • 그 말을 하면서 소석은 조금 부끄러웠지만, 그는 원래 솔직한 성격이었다.
  • “아무 말 안 하니까 동의하는 걸로 알게, 약속 지켜야 돼!”
  • 안한미는 멍하니 쿨한 척하는 소석의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이 터질 뻔 했다. 그는 그녀의 첫 이성 친구였고, 마음 속에 작은 파도가 일었다.
  • 하루종일 수업은 너무 재미가 없었다. 소석은 안한미가 저녁 데이트를 잊지 않도록 수업시간마다 그녀에게 쪽지를 보냈다. 쪽지를 받은 안한미는 다른 사람이 볼까봐 몰래 쪽지를 뭉쳐 수업이 끝나면 버렸다.
  • 드디어 학교가 끝났다. 소석은 안한미가 짐 챙기는 걸 도와주고 함께 학교를 나섰다.
  • 그들이 안한미를 데리러온 차 앞에 도착하자, 기사가 차에서 내려 안한미를 위해 문을 열어주려 했다.
  • “저 오늘 저녁 먹고 들어가려고요.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
  • 기사는 옆에 서 있는 소석을 쳐다보았다. 안한미를 픽업하는 몇 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안한미가 남학생과 같이 있는 걸 보지 못했다.
  • “아가씨, 도련님이 아시나요?”
  • 기사는 그 남자 아이가 안한미를 데려가게 두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