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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구해주다

  • 안한미의 휴대폰에는 GPS가 깔려 있었고, 서지형은 사람을 시켜 공장 주변의 모든 도로에서 택시를 찾게 했다. 안한미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 하지만 소석은 아직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안한미는 극도의 불안과 죄책감을 느꼈고, 몸이 계속 떨렸다. 그녀는 정말 무너질 것 같았다.
  • 400억!
  • 두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에 충분한 액수였다. 한 마디 말이면 되는데 왜 서지형은 소석을 구해주지 않은 걸까. 도대체 왜.
  • 몇 시간 후 서지형은 전용기를 타고 돌아왔다.
  • 그는 그 스스로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 거실에 들어서 그는 불안에 온몸을 떨고 있는 안한미를 보았고, 곧장 달려가 그녀를 안았다.
  • 서지형에게 안긴 안한미는 안심이 되기는커녕 너무 무서웠다.
  • “왜? 왜 걔를 구해주지 않은 거에요?”
  • 안한미는 흐느끼며 말했다. 그녀는 눈앞에 서있는 이 남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았다.
  • 서지형은 안한미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이는 걸 보며 항상 따뜻하게만 느껴졌던 그 두 눈에서 처음으로 거리감과 차가움을 느꼈다.
  • 그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잘생긴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마치 지옥의 사탄 같이 변했다.
  • “너 너무 놀랐어. 오늘 밤엔 나랑 같이 자자.”
  • 서지형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녀를 안아 침실로 갔다.
  • “소석은 날 지켜주다가 다리가 부러졌다고요! 그런데 아저씨는요? 그깟 돈 준 것 말고 한 게 뭑 ㅏ있는데요!”
  • 안한미는 발버둥치며 울부짖었다. 그녀는 서지형의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고 그의 어깨까지 깨물었다.
  • 하지만 서지형은 개의치 않았다.
  • 그는 침실로 가서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은 뒤 목욕물을 받아주었다.
  • “가서 씻어.”
  • 서지형의 얼굴엔 아무 표정이 없었다.
  • “안 씻어요! 소석이 죽게 생겼는데!”
  • 안한미는 계속 어린애처럼 울며불며 소리쳤다.
  • 서지형은 화가 나서 안한미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는 두 손으로 침대를 잡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 “안한미, 다시 한 번 말한다. 가서 씻어!”
  • 안한미는 울음을 멈췄다. 아저씨가 화난 걸 느낄 수 있었다.
  • 서지형은 굳어버린 그녀를 바라보았다. 부드럽고 깨끗한 피부에서 눈물이 반사하는 빛이 그의 눈에 비쳤고, 그의 마음에 박혔다.
  • 그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여 인상을 찌푸리고 마른침을 삼킨 뒤 일어섰다.
  • 그는 그녀가 다 컸다는 걸 잊을 뻔 했다.
  • “다 씻으면 네 방으로 돌아가.”
  • 서지형은 통제력을 잃은 모습을 들키지 않게 등을 돌려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 그는 스스로 통제력을 잃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 안한미는 소석이 걱정되면서도 서지형이 화내는 게 무서웠다. 그녀는 그 사이에서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 “아저씨... 소석-”
  • “닥쳐!”
  • 서지형은 결국 통제력을 잃었다. 안한미는 입을 열기만 하면 소석 얘기였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 때문에 그와 싸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 상관 없는 애 때문에 그에게 계속 대들고 있었다.
  • 안한미는 깜짝 놀랐다. 서지형이 그렇게 화난 모습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 그녀는 서지형의 칠흑 같이 어두운 두 눈을 보며 눈물을 주륵주륵 흘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서러웠다.
  • “아저씨, 아저씨는 변했어요.”
  • 안한미는 아무렇게나 눈물을 닦고 침대에서 일어나 서지형을 밀어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문을 열어젖히고 달려나갔다.
  • 그녀는 1초도 그를 더 보고 싶지 않았다, 단 1초도.
  • 서지형은 그때서야 자신이 그녀를 놀라게 했다는 걸 깨달았다. 잘생긴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이 이런 상황에서 통제력을 잃을 줄은 전혀 몰랐다.
  • 그는 자신이 왜 그 아무 상관 없는 애 때문에 싸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서지형은 거칠게 넥타이를 풀었지만 도저히 풀리지 않아 화가 치밀어 올랐고 문을 세차게 찼다.
  • 진짜 빌어먹을!
  • 그때 유 비서가 허겁지겁 도착했다. 그는 다른 도시에 일을 보러 가고 있었는데, 도착하기도 전에 서지형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직 점검 중인 전용기를 타고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간이 떨어질 뻔했다.
  •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 유 비서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는 서지형이 다른 사람의 관심을 싫어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서지형이 자라는 모습을 다 지켜본 그로서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 “전용기는 다시 점검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에 아무 일도 없어서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다음 번엔 절대로 이렇게 무모한-”
  • “유 비서, 당신도 내가 변한 것 같아?”
  • 서지형은 몸을 돌렸다. 매우 피곤해보였다.
  • 유 비서는 멍하니 서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 “내 계획을 잊지 말아야지.”
  • 그의 표정에선 기쁨도 분노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 “모든 게 제대로 되어가고 있어.”
  • 말이 끝나면서 그의 눈 밑에서 어두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천 년 된 얼음 동굴에서 꺼낸 검은 보석처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 유 집사는 말 없이 살짝 미소 지었고, 허리 굽혀 인사한 뒤 자리를 떠났다.
  • 또 한 번의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