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한미는 기분이 언짢았다. 그녀가 보기에 서지형은 여자 친구 같은 건 두지 않는 사람 같았다.
“야, 지형이도 이제 30인데 여자 친구 만들어야지. 잘 모르는 사람은 걔가 여자 안 좋아하는 줄 알아. 웃을 일이 아니라니까!”
안한미는 당영예를 노려보았지만 뾰로통한 모습은 귀여울 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이런, 우리 한미를 화나게 해버렸네. 그럼 오늘 저녁에 안 갈 거야?”
“왜 안가요? 갈 건데요?”
안한미는 당영예의 덫에 걸려들고 말았다.
“난 안 가.”
서지형은 짐짓 화난 듯 말했다. 당영예만 관계되면 모든 일이 꼬여버리는 듯 했다.
“그렇게 말해도 소용없어.”
당영예의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즐거움이 묻어났다. 서지형에게 여자 친구만 생긴다면 서지형이 안한미에게 애초에 품어서 안 될 마음을 품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당영예는 반드시 이번에 서지형이 그 여자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했다.
당영예는 둘을 데리고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은 이미 영업이 끝난 상태였고 여자도 일찍이 도착해있었다.
안한미는 첫인상부터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몸에 딱 맞는 블랙 미니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가감 없이 드러났다. 그녀의 목걸이는 가슴까지 늘어져 매혹적이었다.
“영예씨.”
미소 짓는 그녀의 눈은 사람을 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왔어? 여기 벌써 알겠지만 서지형, 네 남자친구가 될 사람이야.”
당영예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겠다는 듯 여자를 끌고 왔다.
“정말 웃기네요. 서 도련님이랑 제가 어떻게 사귀어요.”
여자는 서지형의 얼굴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서지형이라는 거물 앞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 주인공은 서도련님과 저 여자야. 잊지 마.”
당영예는 여자에게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두 쌍의 눈이 은밀히 안한미를 훑었다.
“저 여자만 해결하면 서지형은 네 거야.”
당영예는 곧장 몸을 떼고 안한미에게 웃으며 말했다.
“안한미, 서미미를 만난 소감이 어때? 예뻐서 말이 안 나올 정도야?”
안한미 역시 그녀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단지 싫을 뿐이었다.
“안한미씨? 정말 예쁜 이름이네요.”
서미미는 안한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으나 안한미는 몸을 피해버렸다.
“한미는 다른 사람이 만지는 거 싫어해.”
갑자기 서지형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한미는 서지형이 외의 다른 사람이 만지는 것을 싫어했다.
서미미는 민망한 얼굴로 뻗었던 손을 다시 거두었다. 당영예는 즉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종업원을 불러 음식을 주문했다.
“서 도련님은 일 때문에 바쁘시죠? 오늘 이렇게 시간 내어 식사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서미미는 사교계의 스타였다. 그녀의 동작은 모두 자신감이 넘쳤다. 그녀는 사실 줄곧 더 높은 곳에 오르기를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서지형과의 만남은 그녀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네, 바쁩니다.”
서지형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말했다. 그는 접시 위에 올려진 스테이크를 얇게 썬 뒤에 안한미에게 건네주었다.
서미미는 잠시 민망함을 느꼈으나 곧바로 표정을 가다듬으며 웃음을 유지했다.
서지형은 자신의 앞에 놓인 와인을 천천히 열었다. 서지형은 안한미의 앞에서, 특히 최근 들어서는 더더욱 술을 먹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안한미가 아직 어리고 서지형의 앞에서 종종 어리광을 부리기 때문이었다. 둘 중 하나라도 술에 취해 핀트가 나가버리면 그 때부턴 범죄였다. 당영예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반드시 술을 마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미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한미야, 네 아저씨가 오늘은 술을 마시려나 본데 넌 어떡할래?”
당영예는 서지형이 꿈쩍 않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았다. 그의 목적은 안한미를 도발하는 것이었다.
안한미는 낯을 가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식사를 할 뿐이었다. 그녀는 당영예에게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미 불만이 가득했다.
“아무 말 없으면 동의한 걸로 알게.”
당영예는 그 틈을 타 서미미에게 눈짓 했다.
서미미는 곧바로 이해하고는 술잔을 들었다.
“미미가 가장 미천하니, 먼저 한 잔 하겠습니다.”
그녀는 말을 끝내자마자 술을 단숨에 들이키더니 곧바로 한 잔을 또 따랐다.
“오늘 밤에 이렇게 서도련님과 영예씨를 만나 뵙게 되어서 저는 너무 기쁩니다. 서 도련님과도 한 잔 하고 싶은데요.”
서지형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가만히 있던 안한미가 수저를 내려놓더니 자리를 박차고 나가 화장실로 향했다.
“한미씨는 어째 기분이 나빠 보이네요.”
서미미는 안한미가 이렇게 직접적인 반응을 보일지는 몰랐다. 당영예가 서지형이 늘 안한미를 곁에 두고 다닌다고 말해준 바가 있긴 했으나 오늘 직접 보고서야 그저 ‘곁에 둘’ 뿐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어느덧 자리에는 당영예와 서지형만 남게 되었다.
“서지형, 정신이 좀 들었지?”
당영예는 가벼웠던 태도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진지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안한미에게 더 큰 상처를 주기 싫다면 서미미를 둘 사이의 벽으로 써.”
“안한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봤잖아. 아직도 안한미가 너한테 감정이 없다고 말할 수 있어? 걔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 때쯤에 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과연 못 알아차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