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아는 미처 반응을 하지 못 한 채 멍해졌고 남자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동작이 아주 우아했고 기다란 손가락의 뼈마디가 아주 예쁘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도 몰래 송민아는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그가 잡아 주었던 것이 생각났고 바로 이 손이 자신의 허리를 감쌌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조금 비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결혼한 지 2년이 되었어요.”
자신의 결혼을 생각한 송민아는 마음이 또 차가워졌으며 남자는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차갑게 변한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말을 이어갔다.
“송민아씨는 명문 집의 따님이시니 남편 되시는 분도 송민아씨에게 어울릴 만한 분이겠죠? 송민아씨의 남편은 송민아씨를 아주 아낄 것 같아요.”
송민아는 고현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아픈 곳을 건드린 것은 분명했다. 그녀는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고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대답했다.
“고 대표님, 제가 오늘 여기에 온 것은 고 대표님과 비치의 프로젝트에 관해 의논을 하고 싶어서예요.”
고현은 또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이려다 그녀의 말을 듣고 멈칫하더니 라이터를 켜고 끄고 하면서 반복하고 있었다. 순간 룸 안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졌다.
“설마 송민아씨는 제가 송민아씨의 개인 사정을 알고 싶어 이런다고 생각하세요?”
고현은 담담히 입을 다시더니 잘 생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그 시각 기분이 나쁘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송민아씨가 이렇게 다급히 의논을 하고 싶어 하니 비치라는 이 프로젝트에 대하여 송민아씨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얘기해봐요.”
라이터가 상위에 던져지며 탁 하는 소리가 났고 송민아는 아주 어색해졌다. 방금 그녀가 한 말이 눈앞의 이 남자의 미움을 산 게 분명했다. 그가 방금 그런 얘기를 했던 것은 그저 분위기를 완화시키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그녀는 마른 기침을 하고 나서 말했다.
“고 대표님, 이번 비치 프로젝트 디자인 원고에 저의 개인적인 취향을 많이 넣었어요. 예를 들면…”
화제가 너무 급하게 본론으로 들어갔지만 고현이 꼬투리를 잡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그는 왼손의 식지와 중지로 상을 두드리고 있었으며 이런 박력에 송민아는 조금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송민아씨가 디테일한 부분에서 아주 잘 처리하긴 했어요.”
마지막에 고현은 긍정적인 대답을 했고 얼굴에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으며 목소리마저 차갑게 들려왔다.
“이번 비치 프로젝트는 고씨에서 회사 세 개 정도를 골라서 선정할 예정이에요. 송민아씨는 최씨를 위하여 그 자격을 따낸 거고요.”
그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뛰어난 몸매를 하고 있는 그가 일어나자 송민아는 고개를 들고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다가 기뻐하며 다급히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저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앞의 남자는 차가운 얼굴로 옆에 있는 양복 외투를 손에 들고 몸을 돌려 룸에서 나갔다.
송민아의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고 비록 자신의 행동이 그를 조금 화나게 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다행히 그가 속 좁은 사람이 아니고 공과 사가 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문이 열리고 다시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제서야 그녀는 밥상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녀가 오기 전에 이미 한 상 가득 음식이 차려져 있었지만 그들은 한입도 먹어보지 못했다.
자신의 핸드백을 들고 그녀는 호운을 나섰으며 차에 오를 때 호운 로비의 관상용 식물 옆에 기다란 몸매를 하고 있는 그림자가 손에 담배를 든 채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 지 못했다.
유 차장은 한편에서 바라보며 무슨 말로 자신의 감정을 형용해야 할지 몰랐다. 진 비서가 그에게 비치 프로젝트건으로 송민아씨와 약속을 잡으라고 말한 뒤로부터 고 대표님이 송민아씨에 대한 태도까지… 머릿속엔 오로지 한 마디만 남았다. 그것은 앞으로 송민아씨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유 차장.”
담담한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고 유 차장은 몸을 곧게 폈다.
“고 대표님?”
“잘 봤어?”
그 목소리는 아무런 기복이 없이 아주 잔잔했음에도 불구하고 유 차장의 이마에는 순간 식은땀이 맺혔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그쪽에 대고 말을 했다.
“그래, 진아, 날 찾았었어? 여기에 신호가 잘 안 터져. 잠시만 기다려…”
그는 말을 하면서 자리를 떴고 고현은 그 하얀색 BMW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손에 든 담배꽁초를 비벼 끄고 눈빛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