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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남신 고현

  • 송민아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 텅 빈 방안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해졌다. 어제는 그녀의 24세 생일이었지만 최수호는 이미 잊고 있었다. 최수호는 단 한 번도 그걸 기억한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는 장미꽃을 들고 다른 여자와 밤을 보내러 갔고 그녀에게는 차가운 뒷모습만 남겨주었다. 옷을 갈아입고 내려가니 양정아가 반겨주었다.
  • “민아, 아침밥이 다 됐으니 빨리 와서 먹어.”
  • 양정아는 아마 이 집에서 그녀에게 유일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송민아는 자신의 이런 나쁜 감정을 그녀에게 보여주기 싫어 고개를 끄덕이고 앉았다.
  • “민아, 수호가 어제 너의 마음에 상처를 줬다는 걸 알아. 너무 힘들어하지 마. 엄마는 늘 너의 편이야. 수호도 언젠가는 자신과 함께 할 여자가 누구인지 알 거야.”
  • 양정아는 낮은 소리로 위로했고 송민아는 눈시울이 뜨거워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정아는 한숨을 쉬고 젓가락을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 “먹어, 수호가 일찍 볼일이 있다고 나갔으니 좀 있다 기사한테 너를 데려다주라고 할게.”
  • 말이 끝나기 바쁘게 서 아주머니가 신문을 가지고 들어왔다.
  • “사모님, 여기 신문이요.”
  • 서 아주머니가 신문을 식탁에 올려놓자 양정아의 기색이 확 변했다. 그녀는 신문을 가져가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송민아의 시선이 신문의 헤드라인에 있는 글자에 멈췄고 그곳에는 어젯밤까지 집에 있던 남자가 여배우와 키스하는 사진이 찍혀 있었고 몰래카메라가 찍힌 곳은 호텔이었다. 그러니 최수호는 어젯밤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었다.
  • “민아——”
  • “어머님, 배가 불러요, 먼저 회사에 나가 볼게요.”
  • 송민아는 무표정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들고 현관을 향해 걸어갔고 양정아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송민아의 차가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서 아주머니가 불안한 듯 다가와서 말했다.
  • “사모님, 제 잘못이에요.”
  • “아니에요.”
  • 양정아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돌렸고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 “좀 있다 수호한테 전화를 해요. 오늘 저녁에 반드시 나한테 오라고 해요. 안 그럼 앞으로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해요!”
  • 서 아주머니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어요.”
  • 여러 가지 이유로 송민아와 최수호의 결혼식은 아주 조용히 진행됐으며 송씨 가문의 따님이 최씨 가문의 후계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최씨 회사 안에서마저도 사람들은 그녀가 디자인 부서 A 팀의 팀장으로만 알고 있고 그녀의 진실된 신분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 “송민아씨, 미안한데 점심에 최 대표님과 점심 약속이 있어서 요즘 당신들과 밥을 먹지 못하게 됐어요.”
  • 방설은 미안한 듯 말하고 있었으나 얼굴에는 오만함과 득의양양함이 드러나 있었다. 퇴근 한 시간 전 그녀는 화장실에 들어가 있었으며 다시 나왔을 때 칠한 빨간색 립스틱이 송민아의 눈을 아프게 했다. 말을 마친 그녀는 가방을 들고 엉덩이를 흔들며 최씨 회사의 고층 전문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 “왜 저리 나대는 거죠? B 팀 팀장 자리를 어떻게 따낸 건지 회사 사람들이 모를까 봐 저러는 거예요?”
  • 옆에 있던 여자가 코웃음 쳤고 송민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가방을 들고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에 따라 탔다. 점심을 먹고 돌아왔을 때는 아직 휴식시간이었으며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민아 언니, 빨리 와서 보세요. 고씨 후계자가 소문까지 내면서 귀국해 고씨 집안을 물려받는대요.”
  • 디자인 팀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실습생 진소미가 잡지 하나를 송민아의 앞에 펼쳐놓았다. 어제 연회장에서 그런 일이 있은 뒤로부터 이 꼬맹이만 그녀를 예전처럼 대해주고 있었다.
  • “이것 봐요, 고현이에요. 상업계의 신화죠. 18세에 해외로 나가 22세에 하버드 대학의 관리학과 경영학의 박사 학위를 따냈고 26세에는 미국에서 자신의 상업 제국인 경우 그룹을 창설했고요, 지금은 국내에서 아무도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예요. 그런데 지금 돌아와서 고씨를 물려받는다니… 오 마이 갓, 더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미남인데다가 스캔들 하나 없이 깨끗하다는 거예요! 35세가 되도록 아직까지 솔로라니!”
  • 진소미는 두 손을 모으고 남신을 불렀고 송민아는 그녀의 두 눈이 빛나는 걸 보면서 우울하던 기분이 조금 풀렸다.
  • “대시라도 하게?”
  • 그 말에 진소미는 풀이 죽었고 귀를 만지면서 말했다.
  • “그건 불가능해요. 남신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같이 있을 순 없어요.”
  • “그런데 왜 이렇게 흥분을 해?”
  • 송민아는 잡지를 힐끗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