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녀는 연우가 아니었다. 절망의 극치에 달한다고 해도 마음속 한구석에는 그 남자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구제불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난 몇 년 동안의 노력이 한순간에 비눗방울처럼 사라지는 것이 억울했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사랑은 뭐가 되는 걸까?
입꼬리를 씰룩이고 난 송민아는 멀지 않은 곳에서 연우가 휘청거리며 넘어지는 척하다가 잘 생긴 남자의 품으로 쓰러졌다가 깊은숨을 들이쉬고는 몸을 돌려 돌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관정 회관, 진우는 차 키를 관정의 발레파킹 직원에게 넘겨주고 관정의 로비에 들어섰다. 그는 송민아가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며 안으로 걸어갔다.
…
관정의 개인 VIP 룸. 이 룸은 관정의 일반 룸과는 달리 관정의 개인 오락 장소였으며 일반 룸에 비해 고급스러웠다. 그 시각 룸 안에는 담배연기가 자욱했으며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까지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이 룸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부산에서 이름 있는 사람들이고 누구 한 명을 잘못 건드렸다간 앞으로 부산에서 생활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우는 익숙한 듯 노크를 하고 룸에 들어가서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구석의 불빛은 어두웠으며 체격이 훤칠한 남자 한 명이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남자는 입가가 조금 오렌지색이 났으며 담배연기가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진우를 발견한 그 사람은 몸을 앞으로 숙였고 하얀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가 아주 잘 어울렸으며 그 멋진 얼굴이 불빛 속에서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차갑고 망연한 눈빛이 또렷해지자 진우의 눈빛과 동작은 전보다 더 엄숙해졌다.
“고 대표님, 비치 프로젝트에 관하여 이미 3개의 디자인 회사로 확정했습니다. 최씨, 양씨, 그리고 우씨입니다.”
남자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고 목에 걸린 넥타이를 살짝 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현 때문에 억지로 카드놀이를 하고 있던 관월은 불쾌한 듯 말했다.
“고현 형, 우리가 형을 위해 준비한 환영파티에서 일 얘기는 하지 말죠?”
사실 이 사람들은 오늘 아침 고현이 찍은 개인 인터뷰를 보고 파티를 핑계로 고현을 끌어왔던 것이다. 고현은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비벼 끄고 고개를 돌려 담담하게 관월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너의 할머니가 아침에 나한테 전화를 해서 내 옆에 알맞은 여자가 있으면 너한테 소개해 주라고 했어.”
관월은 말문이 막혔고 파리 한 마리를 삼킨 것 같았다. 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관씨의 할머니가 아주 기가 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고현에게 잘해주는 것은 그가 자신의 손자에게 여자를 소개해 줄 수 있기 때문이었고 그 뒤에 숨은 뜻은 여자를 찾아 자신의 손자와 잠을 자게 하라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진하성이 카드를 뒤집었고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관월의 어깨를 쳤다.
“그러게 왜 자꾸 새 머리를 내는 거예요? 미안한데 내가 이겼으니 돈을 내놔요.”
관월은 입을 다시고는 돈을 던지고 카드를 밀었다.
“안 놀래요. 자꾸 당신 같은 늙은 남자들과 노니 재미가 없어요.”
노언이 웃었다.
“우리 같은 나이 많은 남자들과 놀기 싫으면 어디 가서 여자라도 찾아봐요.”
관월은 가볍게 콧소리를 냈다. 그가 기고만장한 게 아니었고 그를 따르는 여자도 많았는데 다들 몸매며 생긴 것도 아주 예쁘긴 했지만 이 업계의 사람들은 결혼할 여자가 아니면 데리고 오지 않는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관월은 고현이 담담하게 있는 것을 보고 포기할 수 없어서 다가가서 말했다.
“고현 형. 형수님을 여기에 데리고 오시면 우리가 나중에 형수님을 잘 보호해 드릴게요.”
고현이 말이 없자 관월은 담이 커져 옆에 있는 진우를 보며 말했다.
“당신이 말해봐요. 고현 형이 어느 집 규수가 마음에 든 거예요?”
진우는 자신의 코를 만지며 그분은 이미 규수가 아닌 어느 집 부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는 감히 그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가볍게 기침을 하고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말했다.
“고 대표님, 방금 관정 입구에서 송민아씨와 마주쳤는데 안색이 안 좋았어요.”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동작이 멈칫했고 눈치 빠른 관월은 다급히 고현에게 불을 붙여주며 두 눈에 빛이 났다.
“고현 형, 송민아씨가 누구예요? 형의 짝사랑 상대인가요?”
고현은 눈을 찌푸리고 관월의 얼굴을 흘겨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눈빛으로 열 번 죽였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관월은 마음이 간지러워났고 뭔가를 더 물으려다가 고현이 옆에 있는 보드카를 입에 털어 넣는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