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14화 분위기에 맞춰준 것뿐

  • 그는 멍해졌지만 고현은 이미 몸을 일으켜 옆에 있는 검은 양복을 집어 들고 룸을 나섰다.
  • 오늘 먹은 해열제의 약효가 어떤지는 몰라도 송민아는 관정에서 나왔을 때 머리가 어지러워 다시 로비로 돌아가 앉아서 휴식을 취하였다. 그녀는 이마를 만져보니 더 뜨거운 것 같았고 좀 더 휴식하다 가려고 했는데 그때 사람들이 우르르 관정에 들어섰다.
  • 맨 앞에 선 사람은 스모그 그레이 색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얼굴이 더 예리하고 엄숙하게 느껴졌고 잘 생긴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는데 이는 송민아가 아주 익숙한 얼굴이었다. 최수호가 마침 그의 친구들과 관정에 놀러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딱 봐도 그들은 관정에 자주 오는 듯했고 품에는 모두 섹시한 여자를 한 명씩 안고 있었다. 최수호의 품에 있는 여자는 그나마 단정한 편이었는데 하얀 옷을 흩날리고 있었고 화장도 너무 진하지 않았으며 그의 품에 기대어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송민아의 마음은 저도 모래 아파왔으며 그녀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몸을 돌리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발견하고 최수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최수호는 차가운 얼굴로 품에 있는 여자를 풀어주고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송민아에게 걸어왔다. 송민아는 소파에서 핸드백을 찾아 들고 관정을 나서려 했고 최수호가 다가와 손목을 잡았다.
  • “당신이 여기에서 뭐 하는 거야!”
  • 최수호는 그녀의 뒤에 서있었고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으며 송민아는 팔목이 아파왔다. 그녀는 아무런 표정이 없이 몸을 돌려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하얀 옷을 입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것만 보면 자신이야말로 그들의 결혼생활을 파탄시킨 내연녀 같았다. 송민아는 어이없이 웃으면서 말했다.
  • “당신이 뭘 하러 온 거면 나도 똑같이 뭘 하러 온 거예요.”
  • 최수호의 표정이 바뀌더니 눈빛이 암담해지기 시작했다.
  • “당신이 말한 저녁 약속이 관정에 와서 소란 피우는 거야?”
  • 소란? 송민아는 웃었지만 눈에는 뜨거운 것으로 가득 고였다.
  • “왜요? 당신만 이런 곳에 와서 여자랑 즐기고 나는 여기에 와서 놀면 안 돼요?”
  • “최수호, 당신은 매일 다른 여자들을 바꿔가며 놀면서 나한테만 결혼생활에 충성하라고요? 당신이 다른 여자들과 있을 때 내 생각은 해보기나 했어요?”
  • 오늘 밤 연우의 말이 가장 예민한 신경을 건드린 것인지 송민아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는 묵묵히 2년을 기다렸고 그는 여전히 혐오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그녀는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최수호는 그녀가 방금 전 품에 안았던 여자 때문에 질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저도 몰래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조금 경직된 목소리로 변명을 했다.
  • “저 여자는… 분위기에 맞추려는 거야. 알지도 못하는 여자야.”
  • “마음대로 해요…”
  •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하여 송민아는 한순간 의기소침해졌다. 그녀는 최수호가 잡은 손을 힘껏 뿌리쳤고 어지러움이 몰려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최수호가 잡아주었고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것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 “열나는 거야? 데려다줄게.”
  • “상관하지 말아요.”
  • 최수호는 표정이 난감하게 변했다.
  • “송민아, 그만 좀 해!”
  • 송민아는 다시 한번 최수호의 손을 뿌리치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있었다.
  • “나는 이렇게 억지를 쓰는 여자예요! 당신은 가서 당신의 여자나 달래 줘요. 저렇게 불쌍하게 기다리고 있잖아요.”
  • 그 시각 송민아의 절망적인 눈빛이 최수호를 자극 한 것인지 그는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으며 손을 내밀어 그녀를 잡아주려던 순간 그녀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었다. 송민아는 더 이상 그를 쳐다보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확인도 하지 않고 받았다.
  • “여보세요. 누구세요?”
  • 그녀는 조금 울먹이고 있었고 최수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가방을 들고 최수호의 주시하에 관정 밖으로 걸어나갔다.
  • “송민아씨, 고 대표님의 비서 진우입니다. 예전에 만난 적이 있어요.”
  • 전화기 너머에서는 진우가 대표님의 담담한 눈빛을 받으며 다급한 척 송민아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 “진 비서님, 무슨 일이에요?”
  • 송민아는 곧 자신의 기분을 정리하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밤바람은 차가웠고 그녀는 아픈 머리를 겨우 지탱하며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고현의 비서가 전화를 해오니 비치에 관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