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아, 당신 지금 화를 내는 게 아니지? 나는 당신이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억지? 송민아는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해야 억지를 부리지 않는 것이 되는 거지?
“나의 남편이 먼저 그의 애인에게 옷을 사주고 나서 돌아와서 나랑 함께 집에 간다는데, 최수호, 당신은 자신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자신이 더 이상 원고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송민아는 아예 펜을 내던지고 눈을 치켜뜨고 눈앞에 있는 흠잡을 데 없이 잘 생긴 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주 잘 생겼다. 오뚝한 코에 얇은 입술, 그리고 두 눈은 부드러울 때면 세상을 녹일 것 같았다. 이런 남자에게 어떤 여자가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른 일이 없으면 최 대표님, 그만 돌아가시죠, 저는 일이 있어서 배웅하지 않을 게요.”
송민아는 담담하게 그에게 나가라고 했고 최수호의 얼굴은 이그러질 대로 이그러졌으며 차가운 시선으로 송민아를 훑어보더니 코웃음을 치고 자리를 떴다.
“마음대로 해!”
송민아는 최수호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이나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려왔고 그녀는 화면을 힐끗 보고 나서 얼굴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책상에 던지고 난 송민아는 눈앞의 디자인 원고를 바라보며 눈빛이 점점 허무하게 변해갔다.
…
퇴근을 한 뒤 방설은 꽃단장을 하고 먼저 나갔고 송민아는 그녀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녀는 계속 회사에 남아 디자인 원고를 수정했다.
그녀는 고현의 개인 자료를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예전에 부동산 프로젝트를 맡았던 일도 포함되었었는데 그녀는 거기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보려 했다. 예를 들면 어떤 스타일의 건축을 좋아하는지 알아내서 이런 정보들을 자신의 창작에 결합시키려 했던 것이다.
우연히 동영상 하나를 발견했고 그 동영상은 오늘 아침에 촬영한 것이었다. 그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허리를 곧게 폈으며 멋진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고 기다란 두 다리는 겹쳐 앉았으며 자세가 자연스러웠다.
동영상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우라는 아주 남달랐다. 앞부분은 사업 발전에 대한 질문들로 구성됐고 뒷부분에서는 사회자가 얼굴에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고 물었다.
“마지막으로 드릴 질문은 고 대표님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물론 저 혼자만 궁금한 게 아니라 아마 화면 앞에 있는 모든 미혼 여성들이 궁금해하실 거라 믿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 대표님은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으며 아마 사회자가 이런 물음을 물을 지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고현이 이런 무료한 문제에 답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 밖으로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지금이 아니에요.”
이 한 마디는 밑도 끝도 없었지만 사회자는 잠시 멍해 있다가 이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 흥분하며 물었다.
“고 대표님이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씀이죠? 그럼 지금 함께 하고 있나요? 제가 알기로는 고 대표님이 아직 솔로인데 그렇다면 고 대표님은 아직도 짝사랑 중이신가요?”
고현은 눈을 찌푸리고 이 문제에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답안을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사회자는 무엇인가 더 물으려 했지만 이때 광고 한 단락이 나왔고 광고 뒤에는 인터뷰가 끝났다는 인사말이 이어졌다. 송민아는 동영상을 끄고 고현 같은 남자도 짝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것에 의아해했다. 하지만 이런 남자에게 어떤 여자가 어울릴지 궁금하기는 했다.
이 일은 곧 잊혔고 송민아는 계속 디자인 원고를 수정하고 있었다. 핸드폰 벨 소리가 또다시 울렸고 송민아는 발신번호를 확인하고 조금 짜증이 났으며 그 번호를 아예 지워버렸다. 한참이 지나니 핸드폰이 다시 울렸고 이번에는 한숨을 내쉬고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