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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영양실조

  • 허약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 음침한 얼굴을 한 남자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마치 거대한 그림자처럼 차갑고 오싹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 부태준은 차갑게 코웃음 치며 바닥에 쓰러진 여자를 노려보았다.
  • ‘망할 꼬맹이! 감히 조상님들 보는 앞에서 내 욕을 해? 그러고 나한테 귀신이라고? 죽고 싶나 보네!’
  • 그는 음침한 표정으로 하초희의 옆에 쭈그려 앉아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 ‘입술까지 파랗게 질렸네. 내가 그렇게 무섭나?’
  • 남자는 잘생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사정없이 그녀의 볼을 툭툭 두드리며 차갑게 명령했다.
  • “이봐, 정신 차려!”
  • 그가 큰 손으로 그녀의 볼이 빨개질 때까지 사정없이 쳤지만 그녀는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 부태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안 일어나면 평생 사당에서 지내게 될 거야!”
  • 위협적인 목소리에도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부태준은 생기를 잃은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기분이 잡쳤다.
  • 그는 손가락을 그녀의 코끝에 가져갔다. 손끝에 미약한 숨결이 느껴지자 그제야 그는 얼굴을 폈다.
  • “겁도 없이 나가서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 부 대표를 욕해? 그 정도로 간 큰 애가 왜 놀라서 정신까지 잃은 거야?”
  • 부태준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허리를 숙여 하초희를 안아 올렸다.
  • 그러고는 문가로 다가가서 명령했다.
  • “문 열어!”
  • 방 안에서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리자, 밖을 지키고 있던 고용인들은 서로 번갈아 보았다. 그들은 서로의 눈빛을 통해 확실히 부태준이라는 확신이 든 뒤에야 서둘러 문을 열었다.
  • “태….”
  •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훤칠한 그림자가 그들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 “아까 지나간 분, 태준 도련님 맞아?”
  • “그래. 잘못 본 건 아닌 것 같아! 확실히 태준 도련님이었어!”
  • “도련님께서 여자를 품에 안았어!”
  • “그러니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 “조금 전에 안고 간 여자가 어르신께서 벌을 내린….”
  • “어떡해?”
  • 키 크고 마른 고용인이 동료에게 물었다.
  • “먼저 어르신께 알리자!”
  • 조금 뚱뚱한 고용인이 제안했다.
  • “그럼 네가 가!”
  • “….”
  • 부태준은 고용인들의 대화는 들은 척도 않고 성큼성큼 저택으로 향했다. 노부인과 한 집사는 여자를 품에 안고 나타난 부태준을 보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 “준아… 이게….”
  • 노부인은 물론이고 부씨 가문에서 부태준이 여자라면 질색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평소 여자랑 살짝 스치기만 해도 차갑게 밀치던 그였다.
  • 그런데 그랬던 그가 여자를 품에 안았다니?
  • 처음에 노부인은 손자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오해했고, 부씨 가문이 대가 끊길까 봐 걱정했었다. 그래서 스물아홉이 넘도록 여자랑 접촉이 없자, 조급한 마음에 돈을 주고 여자를 사 온 것이다. 어쨌든 증손주를 봐야 마음이 놓일 테니까.
  • 모든 사람이 외계인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여자를 안고 선 부태준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
  •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 노부인은 놀라움도 잠시, 조금 기쁜 마음이 들었다. 손자가 여자에게 손도 대기 싫어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니까. 어떤 집안 여식이든 순수하고 그녀에게 증손을 낳아 줄 수 있다면 그녀는 만족했다.
  • 하지만 한 집사의 부축을 받고 그에게 다가간 노부인은 부태준 품 안의 여자가 다름 아닌 하초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경직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분노가 일었다.
  • “태준아, 어떻게 이 여자를 안고 있어?”
  • “할머니!”
  • 평소 차갑기만 하던 부태준이 노부인 앞에서는 사뭇 부드러운 표정으로 인사했다.
  • “태준아! 이 여자는 좋은 여자가 아니야. 어서 내려놔. 네 손까지 더러워질라!”
  • 하초희가 겁도 없이 바람을 피운 것을 생각하자, 노부인은 곧장 손을 내밀어 여자를 잡아끌려 했다.
  • 부태준은 어두워진 눈빛으로 몸을 살짝 틀어 할머니의 손길을 피했다. 손자가 자신의 말을 거역하고 여자의 편을 들자, 노부인의 표정도 차갑게 굳었다.
  • “태준아!”
  • 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지팡이로 바닥을 쳤다.
  • “할머니, 이 여자는 더러운 여자가 아니에요!”
  • 말을 마친 부태준은 차가운 얼굴로 여자를 안고 위층 침실로 향했다.
  • “한 집사, 당장 의사를 불러!”
  • 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어안이벙벙한 표정이었다.
  • “얘… 얘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 분노한 노부인이 씩씩거리며 소리 질렀다.
  • “어르신, 화내지 마세요. 아마 도련님께서 뭔가 착각하신 것 같아요. 조금 지나서 상황을 설명하면 괜찮을 거예요.”
  • 한 집사가 서둘러 노부인을 위로했다.
  • “어르신, 의사는….”
  • “불러!”
  • 노부인이 음침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여자애의 생기 없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생각하고 그냥 의사를 부르기로 했다. 안 그러면 아끼는 손자가 또 화를 낼 테니까.
  • “네!”
  • 한편, 하초희를 침대에 내려놓은 부태준은 빨갛게 부은 그녀의 왼쪽 볼을 보며 순간 분노가 스쳤다.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드러냈다. 어제의 활발하고 생기 있는 모습이 사라진 그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 잠시 후, 구급상자를 든 의사가 저택에 도착했다.
  • “도….”
  • 부태준은 손사래를 치며 차갑게 명령했다.
  • “빨리 얘 좀 봐줘.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 “네!”
  • 의사는 황급히 의약품 상자를 내려놓고 간단한 검사를 시작했다. 나이가 지긋한 의사는 그녀 목덜미에 뒤덮인 키스 마크를 보자 어색하게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의사의 소양이 있었기에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을 뿐, 이내 침착하게 검사를 시작했다.
  • 부태준은 옆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차가운 눈길로 아무런 호전이 보이지 않는 여자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 몇 분 뒤, 고개를 돌린 의사가 공손히 보고했다.
  • “도련님! 별문제 아닙니다. 아마 잘 쉬지 못했거나 영양실조로 잠시 의식을 잃은 것 같습니다!”
  • “영양실조?”
  • 부태준은 의아한 표정으로 여자를 쳐다보았다. 살집이 하나도 없는 허약한 몸매로 보아 그 말도 맞는 것 같았다.
  • ‘도대체 집에서 어떤 생활을 했길래 영양실조까지 걸린 거야!’
  • “네, 거기에 잘 쉬지 못해서 몸이 피곤한 상황에서는 저혈당 쇼크가 오기도 합니다. 평소 균형 잡힌 식사를 하시고 잘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 “그래! 그럼 얘 좀 빨리 깨게 할 방법은 없어?”
  • 부태준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는 이런 모습의 하초희는 보고 싶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이 너무 눈에 거슬렸다. 귀신을 닮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 “그럼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링거를 놓을게요. 다 맞으면 아마 깨어나실 겁니다.”
  • 의사는 부태준의 동의를 거친 뒤, 주사를 처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