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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사당(祠堂)에 갇히다

  • 잡지 표지에는 남자의 셔츠와 미니스커트를 입고 황급히 스위트룸을 빠져나오는 그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실려 있었다. 훤히 드러난 목덜미에서 빨간 자국이 여기저기 찍혀 있어 오해하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 아무리 바보라도 이 사진이 찍히기 전, 여자가 룸에서 무엇을 했는지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 대문짝만한 기사 제목도 눈에 띄었다.
  • “북모 그룹 사모님, 밤중에 외로움을 못 이기고 술집에서 애인을 찾다!”
  • CCTV 영상에 찍힌 사진 외에 그녀가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사진들도 있었다. 술집 VIP룸 어두운 불빛 아래 수많은 남녀가 귓속말하는 모습, 진한 스킨십을 하는 모습들이 여러 각도로 촬영되어 있었다.
  • ‘이제 호텔에서 나왔는데 벌써 사진이 기사에 나갔다고?’
  • 어젯밤 일이 들통날까 봐, 황급히 오는 길에서 간단한 면티를 사서 바꿔 입고 돌아왔는데 이미 집안사람들은 그 사실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 하초희는 순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잡지를 든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잡지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마치 그녀의 무기력함을 비웃고 있는 듯했다.
  • 그녀는 부씨 가문에서 자신에게 어떤 체벌을 내릴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 “저는… 저는….”
  • 하초희는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지만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젯밤 밖에서 남자랑 밤을 보낸 것이 사실인데!
  • “하초희, 이게 무슨 상황인지 변명이라도 해볼래?”
  •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먹이는 그녀를 본 노부인은 더욱 화가 치밀어서 지팡이로 탁자를 힘껏 내리쳤다. 강화유리로 된 탁자가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 하초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노부인에게 용서를 빌었다.
  •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용서해 주세요!”
  • 그녀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 ‘이제 처녀도 아니니, 나를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
  • 거실에 있던 모두가 노부인의 분노에 겁에 질린 얼굴로 숨죽이고 뒤로 물러났다.
  • “용서? 하초희, 너 너무 염치없는 거 아니야? 네 아빠가 돈을 받고 널 이곳에 보낸 지 이제 이틀이 지났어. 그런데 감히 밖에서 외간 남자를 만나! 우리 부씨 가문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밖에서 아이를 낳아 오겠다는 수작이야?”
  • 노부인은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지팡이로 바닥을 힘껏 두드렸다. 부씨 가문이라는 말을 들은 하초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술까지 파르르 떨었다.
  •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용기를 울먹이며 사과했다.
  •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때는 어른들끼리 결정하신 일이고 제가 원해서 온 건 아니었어요. 돈은 아빠한테 돌려드리라고 할 테니, 제발 저 좀 놓아주세요! 죄송합니다!”
  • 노부인은 험상궂은 얼굴로 하초희를 내려다보았다.
  • “이런 사고를 치고 넌 상관없으니 나가겠다는 거야? 그럴 수는 없지! 감히 우리 태준이를 배신해? 나한테 혼 좀 나야겠어!”
  •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가슴을 치는 노부인은 마치 지옥에서 온 악마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노인을 마주한 하초희는 겁에 질려 식은땀이 났다.
  • ‘부씨 가문은 눈 깜짝 않고 사람을 죽인다고 소문이 났는데 설마 진짜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
  • “뭐 하시려는 건데요?”
  • 그녀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지만 이내 고용인에게 뒷덜미를 잡혔다.
  • “악!”
  • 노부인이 냉기가 뚝뚝 흐르는 눈빛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본 하초희는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 서서히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는 마치 죽음을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겁에 질린 그녀의 눈이 거세게 요동쳤다.
  • “제가 원해서 여기 팔려 온 게 아니에요. 저도 억지로 끌려왔다고요. 제발 살려 주세요. 저 죽고 싶지 않아요! 살려 주세요! 돈은 그대로 돌려드릴게요….”
  • 하초희는 끝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애원했다.
  • 짝!
  •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거친 손바닥이 그녀의 얼굴을 후려쳤다. 왼쪽 얼굴에서 강한 통증과 함께 귀까지 얼얼해지며 비릿한 피 맛이 입안에서 느껴졌다.
  • “이제 와서 죽고 싶지 않다면 다야? 밖에서 남자랑 놀아날 때는 이런 결과를 예상치 못했어? 너 때문에 우리 부씨 가문이 사람들 웃음거리가 됐잖아!”
  • 눈에 빗발이 선 노부인이 고래고래 호통쳤다. 평소에 얌전해 보이던 여자가 이런 파렴치한 여자일 줄은 그녀도 예상치 못했다. 가문이 욕보였다는 생각에 노인은 오늘 이 여자를 단단히 혼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 ‘이런 미친 할망구가! 감히 나를 때려?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 하초희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 “더 웃음거리가 되기 싫으면 저 좀 놓아줘요! 누가 여기 오고 싶댔어요? 앗….”
  • ‘아파!’
  • “이 계집애가! 감히 소리를 질러?”
  • 한 번도 이런 무례함을 당해 본 적 없는 노부인이 분노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하초희는 입을 다물기는커녕 더 바락바락 대들었다. 다시 손을 들어 올리던 노부인은 하초희의 핏발이 선 눈동자를 마주하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손을 내렸다. 노인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 “끌고 가!”
  • “네!”
  • 하초희는 고용인들에게 끌려 밖으로 나갔다.
  • “지금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사람을 죽이는 건 법을 어기는 일이야! 감옥에 갈 거라고… 이거 놔!”
  • “돈을 주고 나를 산 것도 위법행위야! 사람 살려!”
  • 그녀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기골이 장대한 고용인들은 한 집사의 지휘 아래 그녀를 끌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한 방 앞에 도착한 그들은 인정사정없이 그녀를 방 안에 던졌다.
  • 탁!
  • 문이 닫히고 하초희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 방 안에 버려진 그녀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밖에서 한 집사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르신께서 반성할 때까지 여기 꿇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잘못을 뉘우치기 전에는 여기서 절대 못 나옵니다.”
  • ‘내가 사과까지 했잖아!’
  • “어디 도망가지 못하게 잘 지키고 있어!”
  • “네!”
  • 한 집사는 차갑게 수하들을 향해 명령하고 발길을 돌렸다. 발소리가 멀어지자 한소희는 그제야 정신을 조금 차리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 하지만 고개를 든 순간, 그녀는 다시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 “악!”
  • ‘세상에! 여긴 조상님 신주를 모신 곳이잖아?’
  • 이층으로 된 고전적인 다락방에 천 개는 넘어 보이는 위패가 눈에 들어오자, 그녀는 수많은 눈동자를 마주한 것만 같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 하초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심스럽게 다락방을 관찰했다. 닫힌 창문에 암막 커튼까지 쳐져 있어 방 안은 음습한 분위기가 풍겼다. 위패를 모신 곳에 켜진 촛불만이 어두운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방 안에는 향을 피운 냄새로 가득했다.
  • 하초희는 마른침을 삼키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 ‘제길! 이런 곳에 나를 버려? 심장마비라도 와서 죽으라는 건가?’
  • 순간, 촛불이 흔들리며 무언가가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놀란 하초희는 창백해진 얼굴로 방문을 향해 달렸다.
  • “아! 사람 살려!”
  • 탕탕탕!
  • “빨리 문 열어! 나 나갈래!”
  • 그녀는 두려움에 식은땀을 흘리며 미친 듯이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