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표지에는 남자의 셔츠와 미니스커트를 입고 황급히 스위트룸을 빠져나오는 그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실려 있었다. 훤히 드러난 목덜미에서 빨간 자국이 여기저기 찍혀 있어 오해하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 아무리 바보라도 이 사진이 찍히기 전, 여자가 룸에서 무엇을 했는지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대문짝만한 기사 제목도 눈에 띄었다.
“북모 그룹 사모님, 밤중에 외로움을 못 이기고 술집에서 애인을 찾다!”
CCTV 영상에 찍힌 사진 외에 그녀가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사진들도 있었다. 술집 VIP룸 어두운 불빛 아래 수많은 남녀가 귓속말하는 모습, 진한 스킨십을 하는 모습들이 여러 각도로 촬영되어 있었다.
‘이제 호텔에서 나왔는데 벌써 사진이 기사에 나갔다고?’
어젯밤 일이 들통날까 봐, 황급히 오는 길에서 간단한 면티를 사서 바꿔 입고 돌아왔는데 이미 집안사람들은 그 사실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하초희는 순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잡지를 든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잡지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마치 그녀의 무기력함을 비웃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부씨 가문에서 자신에게 어떤 체벌을 내릴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저는… 저는….”
하초희는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지만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젯밤 밖에서 남자랑 밤을 보낸 것이 사실인데!
“하초희, 이게 무슨 상황인지 변명이라도 해볼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먹이는 그녀를 본 노부인은 더욱 화가 치밀어서 지팡이로 탁자를 힘껏 내리쳤다. 강화유리로 된 탁자가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하초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노부인에게 용서를 빌었다.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녀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제 처녀도 아니니, 나를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
거실에 있던 모두가 노부인의 분노에 겁에 질린 얼굴로 숨죽이고 뒤로 물러났다.
“용서? 하초희, 너 너무 염치없는 거 아니야? 네 아빠가 돈을 받고 널 이곳에 보낸 지 이제 이틀이 지났어. 그런데 감히 밖에서 외간 남자를 만나! 우리 부씨 가문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밖에서 아이를 낳아 오겠다는 수작이야?”
노부인은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지팡이로 바닥을 힘껏 두드렸다. 부씨 가문이라는 말을 들은 하초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술까지 파르르 떨었다.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용기를 울먹이며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때는 어른들끼리 결정하신 일이고 제가 원해서 온 건 아니었어요. 돈은 아빠한테 돌려드리라고 할 테니, 제발 저 좀 놓아주세요! 죄송합니다!”
노부인은 험상궂은 얼굴로 하초희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사고를 치고 넌 상관없으니 나가겠다는 거야? 그럴 수는 없지! 감히 우리 태준이를 배신해? 나한테 혼 좀 나야겠어!”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가슴을 치는 노부인은 마치 지옥에서 온 악마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노인을 마주한 하초희는 겁에 질려 식은땀이 났다.
‘부씨 가문은 눈 깜짝 않고 사람을 죽인다고 소문이 났는데 설마 진짜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
“뭐 하시려는 건데요?”
그녀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지만 이내 고용인에게 뒷덜미를 잡혔다.
“악!”
노부인이 냉기가 뚝뚝 흐르는 눈빛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본 하초희는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서서히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는 마치 죽음을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겁에 질린 그녀의 눈이 거세게 요동쳤다.
“제가 원해서 여기 팔려 온 게 아니에요. 저도 억지로 끌려왔다고요. 제발 살려 주세요. 저 죽고 싶지 않아요! 살려 주세요! 돈은 그대로 돌려드릴게요….”
하초희는 끝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애원했다.
짝!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거친 손바닥이 그녀의 얼굴을 후려쳤다. 왼쪽 얼굴에서 강한 통증과 함께 귀까지 얼얼해지며 비릿한 피 맛이 입안에서 느껴졌다.
“이제 와서 죽고 싶지 않다면 다야? 밖에서 남자랑 놀아날 때는 이런 결과를 예상치 못했어? 너 때문에 우리 부씨 가문이 사람들 웃음거리가 됐잖아!”
눈에 빗발이 선 노부인이 고래고래 호통쳤다. 평소에 얌전해 보이던 여자가 이런 파렴치한 여자일 줄은 그녀도 예상치 못했다. 가문이 욕보였다는 생각에 노인은 오늘 이 여자를 단단히 혼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미친 할망구가! 감히 나를 때려?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하초희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더 웃음거리가 되기 싫으면 저 좀 놓아줘요! 누가 여기 오고 싶댔어요? 앗….”
‘아파!’
“이 계집애가! 감히 소리를 질러?”
한 번도 이런 무례함을 당해 본 적 없는 노부인이 분노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하초희는 입을 다물기는커녕 더 바락바락 대들었다. 다시 손을 들어 올리던 노부인은 하초희의 핏발이 선 눈동자를 마주하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손을 내렸다. 노인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끌고 가!”
“네!”
하초희는 고용인들에게 끌려 밖으로 나갔다.
“지금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사람을 죽이는 건 법을 어기는 일이야! 감옥에 갈 거라고… 이거 놔!”
“돈을 주고 나를 산 것도 위법행위야! 사람 살려!”
그녀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기골이 장대한 고용인들은 한 집사의 지휘 아래 그녀를 끌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한 방 앞에 도착한 그들은 인정사정없이 그녀를 방 안에 던졌다.
탁!
문이 닫히고 하초희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방 안에 버려진 그녀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밖에서 한 집사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께서 반성할 때까지 여기 꿇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잘못을 뉘우치기 전에는 여기서 절대 못 나옵니다.”
‘내가 사과까지 했잖아!’
“어디 도망가지 못하게 잘 지키고 있어!”
“네!”
한 집사는 차갑게 수하들을 향해 명령하고 발길을 돌렸다. 발소리가 멀어지자 한소희는 그제야 정신을 조금 차리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고개를 든 순간, 그녀는 다시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악!”
‘세상에! 여긴 조상님 신주를 모신 곳이잖아?’
이층으로 된 고전적인 다락방에 천 개는 넘어 보이는 위패가 눈에 들어오자, 그녀는 수많은 눈동자를 마주한 것만 같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하초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심스럽게 다락방을 관찰했다. 닫힌 창문에 암막 커튼까지 쳐져 있어 방 안은 음습한 분위기가 풍겼다. 위패를 모신 곳에 켜진 촛불만이 어두운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방 안에는 향을 피운 냄새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