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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귀신이야!

  • 하지만 하초희가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밖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 “사람 살려!”
  • 하초희는 등 뒤에서 무수히 많은 눈동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고 두려움에 목소리까지 맛이 갔다.
  • 하지만 아무리 소리 질러도 문을 열어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녀는 절망에 울고만 싶었다. 밀폐된 방 안에서는 숨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 하초희는 불안한 마음으로 등을 돌려 조심스럽게 부씨 가문 조상님들의 위패를 바라보았다. 용기를 내고 싶었지만 머리털이 곤두섰다. 그녀는 두 손 모아 떨리는 소리로 빌었다.
  •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큰아버지, 고모님들… 갑자기 방해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고의는 아니니 저 찾아오지 마세요.”
  • 다락방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촛농이 떨어지는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 하초희는 두려움에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다시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곧장 위패 앞에 무릎을 꿇었다.
  • “조상님들, 잘못했어요. 화내지 마세요. 정말 일부러 외간 남자를 만난 건 아니었어요….”
  • “술 취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침에 깨보니 웬 남자가 옆에 누워 있었어요. 하지만 저도 아버지 때문에 팔려 온 몸이에요. 저도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고요. 부 대표라는 사람 다 늙은 영감이라면서요. 죄송해요. 일부러 심하게 얘기한 게 아니라, 정말 못생기고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저는 이렇게 젊은데 어떻게 그런 사람이랑 아이를 낳아요? 제발 저 좀 놓아주세요! 이렇게 빌게요.”
  • 그녀는 진심을 다해 절을 했다.
  • “죄송해요. 죄송해요! 정말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고 이제 바꿀 수 없어요. 하지만 어르신께서 불같이 화를 내며 저를 이곳에서 반성하라고 가뒀어요. 조상님들께서 저를 용서하시면 어르신도 저를 놓아주실까요?”
  • 하초희는 진심을 다해 빌며 두려움을 떨쳐내려 애썼다. 물론,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누가 대답을 했다면 그녀는 아마 놀라서 심장마비가 왔을 것이다.
  • 갑자기 남의 집 조상을 모시는 사당에 와서 수많은 위패를 마주했으니, 귀신을 보지 않아도 온몸이 오싹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하초희는 마른침을 삼키며 온몸을 떨었다.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지만 밀폐된 공간이라 공손히 무릎을 꿇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제발 조상들의 노여움을 사지 않기만 간절히 빌었다.
  • 한참 뒤, 그녀는 다시 오싹함을 느끼며 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서워서인지, 장소 탓인지, 계속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 그녀는 여러 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내 착각이겠지? 무서워….”
  • 하초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금은 대낮이고 세상에는 귀신이 없다고 속으로 거듭 되뇌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도 조금 편해져서 꿇는 자세에서 앉는 자세로 바뀌었다.
  • 천 개가 넘는 위패를 보고 있자니 여전히 머리털이 곤두섰지만 이제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무섭지는 않았다. 그녀는 경외심을 가지고 위에 있는 위패들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 가장 앞에 놓인 새것으로 보이는 두 위패가 눈에 띄었다.
  • ‘설마 저분들이 변태 영감의 부모님은 아니겠지?’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일부러 아드님을 그렇게 얘기한 건 아니었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연신 중얼거린 그녀는 다시 말없이 주변을 살피고 입을 삐죽 내민 채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다리 사이의 통증은 여전한 상태로 이런 곳에 갇혔으니, 그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친아빠에게 팔려 부씨 가문에 시집오고 ‘부 대표’라는 남자의 아이를 낳아야 한다니, 그녀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처량했다. 그런 씁쓸한 심정을 안고 동창회에 참석했는데 그만 처음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더 기가 막혔던 건, 그 행각이 전부 집안사람들한테 들켜 버렸다는 것이다.
  • 여기까지 생각한 하초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 예전에도 술 취한 경험이 있었지만 어젯밤처럼 이상한 느낌은 아니었다. 온몸이 불타는 느낌에, 아무라도 찾아 해결하고 싶은 욕구와 충동이 일었었다. 심지어 미친 사람처럼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 ‘제길! 누군가 내 술에 약을 탄 건가?’
  • 하초희는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분노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건 이소연 짓이 분명했다. 어제 그녀에게 알코올 농도가 높지 않다며 칵테일을 건넸던 것도 그녀였으니까.
  • 마침 기분이 안 좋았던 그녀는 그것을 단번에 들이마셔 버렸다.
  • “이소연, 내 눈에 띄기만 해봐!”
  • 그녀는 분노에 찬 소리를 지르며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홧김에 창백하던 얼굴마저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소연에게 고맙기도 했다. 다 늙은 영감이 아닌, 만인의 연인 같은 외모의 남자와 첫날밤을 보내게 됐으니 말이다.
  • ‘뭐, 그렇게 생각하면 밑지는 장사도 아니었네.’
  • 하지만 이런 비열한 수단으로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 그녀를 생각하니 하초희는 억울함에 목이 메었다.
  • 그리고 이른 아침 이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잡지와 신문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실렸고 노부인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 이건 분명 누군가가 그녀를 모함하려는 수작이다! 하지만 그게 도대체 누굴까? 뭘 하고 싶은 걸까? 설마 그것도 이소연이?
  •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녀가 이곳에 팔려 온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설마 이소연에게 공범이 있는 걸까?
  • 하초희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녀는 그 사람이 누구든 무조건 찾아내서 복수하리라 마음먹었다.
  • ‘감히 나 하초희를 건드려? 절대 가만 안 둬!’
  • 하지만 꽉 막힌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다시 풀이 죽었다. 부씨 가문의 복수가 두렵지 않았다면 그녀는 진작 도망갔을 것이다.
  • 부씨 가문은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릴 능력이 있는 막강한 세력을 가진 집안이다. 특히 부 대표라는 사람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냉혈한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와 척을 진 사람은 누구도 무사하지 못했다고 한다.
  • 그런데 그런 사람을 배신했으니 하초희는 자신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 “부 대표님, 죄송해요. 저도 일부러 배신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고, 죽이지만 마세요.”
  • 그가 들을 수는 없겠지만, 하초희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 “피식!”
  • 갑자기 들려온 웃음소리에 하초희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 “누구야?”
  • 그녀는 혼비백산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 ‘세상에! 설마 귀신이라도 나타난 건 아니겠지?’
  • “누구야! 빨리 나와!”
  • 그녀가 큰 소리로 소리쳤지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 구석진 창가, 그녀는 보지 못하는 곳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훤칠한 키의 남자가 차가운 시선으로 웃음을 터뜨린 비서를 노려보자, 비선은 황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가까스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그러는 비서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정찬은 남자의 살기 어린 눈빛을 마주하자 황급히 자리를 떴다.
  • 방안에 그림자 하나가 갑자기 스쳤고 놀란 하초희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 그리고 쓰러지던 순간, 한 쌍의 발이 눈에 보였다!
  • “귀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