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초희는 분노에 찬 소리를 지르며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건장한 남자의 몸집이 그녀에게 밀착하자 그의 단단한 남성이 아랫배를 찔렀다.
“이게 뭐야. 비켜… 아…”
하초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항의했지만 알싸한 담배 향기를 머금은 남자의 입술이 곧장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하초희는 남자의 뜨거운 키스에 머리가 어지럽고 구름 위를 걷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의 뜨거운 몸이 자신에게 닿자 그녀는 불에 덴 듯 온몸이 달아올랐다. 그녀가 괴로운 표정으로 몸부림치자 남자의 키스가 더 깊어졌다.
코끝에 남자 특유의 시원한 향이 느껴지자 온몸이 열기로 뜨거워졌다.
“아! 더워. 비켜….”
‘비켜?’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부태준은 뜨거운 눈길로 그녀를 노려보며 코웃음 쳤다.
‘이제 늦었지.’
그가 다시 그녀에게 바짝 밀착했다.
…
햇살이 창문을 통해 여자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다.
하초희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다가 천천히 잠에서 깼다. 순간 머리가 빠개질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삭신도 쑤셨고 하반신에서 찢어질 것 같은 얼얼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경직된 채 침대에 누워서 한참 지나서야 힘들게 눈을 떴다.
북유럽풍의 화려한 샹들리에가 눈에 들어오자, 그녀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렇게 비싼 방을 예약했었나?’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옆에 있는 남자를 확인한 순간,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 자리에 경직됐다.
조각 같은 이목구비에 유럽 귀족의 카리스마를 풍기는 아주 잘생긴 남자가 옆에 누워 있었다. 매끈한 이마에 자연스럽게 드리운 머리카락,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였다. 얇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잠들어 있었지만 존귀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었다.
그 미모를 한참 감상하고 있자니, 어젯밤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소파 위… 침대… 욕실… 뜨거운 입맞춤….
그 뜨거웠던 몸부림이 생생하게 떠오르자,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면서 가슴이 쿵쾅거렸다. 하초희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세상에!
‘이 남자한테 밤새… 아니, 내가 이 남자를 덮쳤어!’
분명 어젯밤 남자는 명확히 거절했지만, 술 취한 그녀가 울며불며 매달렸었다.
‘그런데 이 남자… 정말 잘생겼네….’
하초희는 남자의 매력적인 얼굴을 홀린 듯 쳐다보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리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첫날밤을 이런 미남이랑 보내다니… 운 좋았어!’
그녀는 다 늙은 영감이랑 첫날밤을 보내기보다는 천 배 낫다고 생각했다.
‘이건 행운이야!’
그러던 그녀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헉!”
순간 아찔한 통증이 몰려왔고 그녀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남자를 향해 원망하듯 중얼거렸다.
“도대체 여자를 얼마나 안 만났으면… 움직이기도 힘들게 만들어 놨잖아….”
하지만 온몸에 도배된 빨간 자국들을 확인한 그녀는 온몸을 떨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이 사람이 정말… 나도 처음인데 좀 살살할 것이지! 별로야!’
온몸에 생긴 얼룩을 보자 왜 이렇게 삭신이 쑤시는지 알 것 같았다.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집에서 걸려온 전화임을 확인한 하초희는 다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서둘러 전화를 꺼버리고 허둥대며 옷을 찾았다. 하지만 처참하게 조각난 옷을 확인한 그녀는 다시 얼굴이 찌푸려졌다.
“제길! 옷까지 찢었어? 너무 폭력적이잖아….”
‘이 남자 너무 위험해!’
하초희는 저도 모르게 잠든 남자를 매섭게 쏘아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서 왜 이렇게 폭력적이래…. 얼굴이 잘생기면 뭐 해…. 몇십만 원이나 주고 산 옷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이때, 침대 위의 남자가 갑자기 몸을 뒤집었고 그녀는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록 같이 잠을 잔 사이라지만 대낮에 이런 모습으로 마주하기엔 많이 어색했다.
하초희는 마른침을 삼키며 경직된 자세로 남자를 응시했다. 남자가 깨지 않았음을 확인해서야 그녀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다행히 치마는 청치마라 단추 하나만 떨어졌을 뿐, 그런대로 입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상의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방 안을 둘러보며 입을 만한 것을 찾다가, 어쩔 수 없이 남자의 셔츠를 몸에 걸쳤다. 하지만 셔츠도 단추가 여러 개 뜯겨 나가서 가슴골이 다 보일 정도였다. 하초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셔츠 아랫단을 나비 모양으로 묶었다. 그런대로 나갈 수는 있었지만 노출은 조금 과했다.
“네가 내 옷을 찢어 놓기는 했지만, 많이 애쓴 걸 봐서 먹튀는 안 할게….”
그녀는 지갑을 꺼내 현금을 찾으려 했지만,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그제야 빈약한 지갑 사정을 떠올렸다.
“미안해! 오늘 현금을 안 가져왔네. 하지만 너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잖아. 내 처음은 소중한 거니까. 그리고 너도 내 옷을 찢었고. 보상은 필요 없어. 여기 오천 원으로 국밥이나 사 먹어!”
그녀는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침대 머리에 놓은 뒤, 아픈 몸을 끌고 황급히 호텔을 떠났다.
‘앞으로 아무리 남자가 필요해도 이런 남자는 찾지 말아야겠어. 너무 폭력적이야!’
하지만 그녀가 문을 닫은 순간 침대 위의 남자가 눈을 떴다. 잠기가 하나도 없는 말짱한 얼굴이었다.
부태준은 고개를 돌려 침대 머리에 놓인 오천 원을 바라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밥값? 놀고 있네.’
하초희는 부태준의 한 끼 밥값이 자신의 연봉과 맞먹는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사실 그는 그녀가 몸을 일으키던 순간에 잠에서 깼다. 하지만 그녀가 다음에 뭘 할지 궁금해서 계속 자는 척하고 있었던 건데, 이 겁 없는 여자는 불평도 모자라, 욕설까지 퍼부었던 것이다.
가장 어이가 없었던 건, 오천 원짜리 한 장 달랑 남겨놓고 자리를 떴다는 것이다. 부태준이 어디 이런 취급을 받아나 봤을까! 저번에 그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자는 이미 대한민국에서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살면서 이렇게 겁 없는 여자는 그도 처음이었다.
부태준은 험악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고 바닥에 널려 있는 상의 조각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