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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밥값

  • 갑자기 그가 몸을 뒤집더니 전세가 역전되었다.
  • “정말 나랑 잘 거야?”
  • 부태준이 어두운 눈빛으로 확실한 답을 요구했다.
  • “당연하지!”
  • 하초희는 분노에 찬 소리를 지르며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건장한 남자의 몸집이 그녀에게 밀착하자 그의 단단한 남성이 아랫배를 찔렀다.
  • “이게 뭐야. 비켜… 아…”
  • 하초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항의했지만 알싸한 담배 향기를 머금은 남자의 입술이 곧장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 하초희는 남자의 뜨거운 키스에 머리가 어지럽고 구름 위를 걷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의 뜨거운 몸이 자신에게 닿자 그녀는 불에 덴 듯 온몸이 달아올랐다. 그녀가 괴로운 표정으로 몸부림치자 남자의 키스가 더 깊어졌다.
  • 코끝에 남자 특유의 시원한 향이 느껴지자 온몸이 열기로 뜨거워졌다.
  • “아! 더워. 비켜….”
  • ‘비켜?’
  •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부태준은 뜨거운 눈길로 그녀를 노려보며 코웃음 쳤다.
  • ‘이제 늦었지.’
  • 그가 다시 그녀에게 바짝 밀착했다.
  • 햇살이 창문을 통해 여자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다.
  • 하초희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다가 천천히 잠에서 깼다. 순간 머리가 빠개질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삭신도 쑤셨고 하반신에서 찢어질 것 같은 얼얼함이 느껴졌다.
  • 그녀는 경직된 채 침대에 누워서 한참 지나서야 힘들게 눈을 떴다.
  • 북유럽풍의 화려한 샹들리에가 눈에 들어오자, 그녀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 ‘내가 이렇게 비싼 방을 예약했었나?’
  •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옆에 있는 남자를 확인한 순간,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 자리에 경직됐다.
  • 조각 같은 이목구비에 유럽 귀족의 카리스마를 풍기는 아주 잘생긴 남자가 옆에 누워 있었다. 매끈한 이마에 자연스럽게 드리운 머리카락,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였다. 얇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잠들어 있었지만 존귀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었다.
  • 그 미모를 한참 감상하고 있자니, 어젯밤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 소파 위… 침대… 욕실… 뜨거운 입맞춤….
  • 그 뜨거웠던 몸부림이 생생하게 떠오르자,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면서 가슴이 쿵쾅거렸다. 하초희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 세상에!
  • ‘이 남자한테 밤새… 아니, 내가 이 남자를 덮쳤어!’
  • 분명 어젯밤 남자는 명확히 거절했지만, 술 취한 그녀가 울며불며 매달렸었다.
  • ‘그런데 이 남자… 정말 잘생겼네….’
  • 하초희는 남자의 매력적인 얼굴을 홀린 듯 쳐다보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리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 ‘첫날밤을 이런 미남이랑 보내다니… 운 좋았어!’
  • 그녀는 다 늙은 영감이랑 첫날밤을 보내기보다는 천 배 낫다고 생각했다.
  • ‘이건 행운이야!’
  • 그러던 그녀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 “헉!”
  • 순간 아찔한 통증이 몰려왔고 그녀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남자를 향해 원망하듯 중얼거렸다.
  • “도대체 여자를 얼마나 안 만났으면… 움직이기도 힘들게 만들어 놨잖아….”
  • 하지만 온몸에 도배된 빨간 자국들을 확인한 그녀는 온몸을 떨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 ‘이 사람이 정말… 나도 처음인데 좀 살살할 것이지! 별로야!’
  • 온몸에 생긴 얼룩을 보자 왜 이렇게 삭신이 쑤시는지 알 것 같았다.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 집에서 걸려온 전화임을 확인한 하초희는 다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서둘러 전화를 꺼버리고 허둥대며 옷을 찾았다. 하지만 처참하게 조각난 옷을 확인한 그녀는 다시 얼굴이 찌푸려졌다.
  • “제길! 옷까지 찢었어? 너무 폭력적이잖아….”
  • ‘이 남자 너무 위험해!’
  • 하초희는 저도 모르게 잠든 남자를 매섭게 쏘아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서 왜 이렇게 폭력적이래…. 얼굴이 잘생기면 뭐 해…. 몇십만 원이나 주고 산 옷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 이때, 침대 위의 남자가 갑자기 몸을 뒤집었고 그녀는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록 같이 잠을 잔 사이라지만 대낮에 이런 모습으로 마주하기엔 많이 어색했다.
  • 하초희는 마른침을 삼키며 경직된 자세로 남자를 응시했다. 남자가 깨지 않았음을 확인해서야 그녀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 다행히 치마는 청치마라 단추 하나만 떨어졌을 뿐, 그런대로 입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상의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 그녀는 방 안을 둘러보며 입을 만한 것을 찾다가, 어쩔 수 없이 남자의 셔츠를 몸에 걸쳤다. 하지만 셔츠도 단추가 여러 개 뜯겨 나가서 가슴골이 다 보일 정도였다. 하초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셔츠 아랫단을 나비 모양으로 묶었다. 그런대로 나갈 수는 있었지만 노출은 조금 과했다.
  • “네가 내 옷을 찢어 놓기는 했지만, 많이 애쓴 걸 봐서 먹튀는 안 할게….”
  • 그녀는 지갑을 꺼내 현금을 찾으려 했지만,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그제야 빈약한 지갑 사정을 떠올렸다.
  • “미안해! 오늘 현금을 안 가져왔네. 하지만 너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잖아. 내 처음은 소중한 거니까. 그리고 너도 내 옷을 찢었고. 보상은 필요 없어. 여기 오천 원으로 국밥이나 사 먹어!”
  • 그녀는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침대 머리에 놓은 뒤, 아픈 몸을 끌고 황급히 호텔을 떠났다.
  • ‘앞으로 아무리 남자가 필요해도 이런 남자는 찾지 말아야겠어. 너무 폭력적이야!’
  • 하지만 그녀가 문을 닫은 순간 침대 위의 남자가 눈을 떴다. 잠기가 하나도 없는 말짱한 얼굴이었다.
  • 부태준은 고개를 돌려 침대 머리에 놓인 오천 원을 바라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 ‘밥값? 놀고 있네.’
  • 하초희는 부태준의 한 끼 밥값이 자신의 연봉과 맞먹는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사실 그는 그녀가 몸을 일으키던 순간에 잠에서 깼다. 하지만 그녀가 다음에 뭘 할지 궁금해서 계속 자는 척하고 있었던 건데, 이 겁 없는 여자는 불평도 모자라, 욕설까지 퍼부었던 것이다.
  • 가장 어이가 없었던 건, 오천 원짜리 한 장 달랑 남겨놓고 자리를 떴다는 것이다. 부태준이 어디 이런 취급을 받아나 봤을까! 저번에 그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자는 이미 대한민국에서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살면서 이렇게 겁 없는 여자는 그도 처음이었다.
  • 부태준은 험악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고 바닥에 널려 있는 상의 조각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 잠시 후, 그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 “옷 한 벌 가져와!”
  • 용건만 얘기하고 전화를 끊은 부태준은 알몸인 상태로 욕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