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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늙은 여우

  •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두 사람은 서로에게 뒤엉켜 몸을 탐했고 그러다 그녀의 치마가 땅에 떨어졌다.
  • 검은색 속옷이 드러났고 그는 등 뒤의 단추를 풀어 속옷을 위로 밀었다.
  • 3년 전과 변함없이 여린 속살은 고형준의 모든 신경을 자극했다.
  • 고형준은 입에 물고 흔들기 시작했다.
  • 그녀의 신음소리는 고형준에게 강력한 호르몬 촉매제로 되었다.
  • 그는 팽팽한 고통을 참으며 따뜻한 입술로 그녀의 배를 타고 내려왔다.
  • 3년 전처럼 그녀에게 고통만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 백도희는 조금 두려워났다, 낯설고 이상한 느낌이 그녀로 하여금 따뜻한 기류가 감돌게 하였다.
  • “소욱 씨, 살살.”
  • 백도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고형준은 흠칫 놀라더니 모든 동작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검고 복잡한 눈으로 붉어진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그녀는 눈을 감고, 속눈썹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백도희는 자신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 고형준은 눈을 찌푸리고 짜증을 부리며 일어났다.
  • 그곳은 여전히 무서운 기세로 우뚝 솟아 있었다.
  • 그는 빠른 걸음으로 욕실로 향했고 물을 틀었다.
  • 차가운 물이 그의 머리 위에서부터 흘러내려왔다.
  • 그의 안색은 더욱 깊고 어두워졌다.
  • 평온해진 후 그는 다시 욕실에서 나왔다.
  • 백도희는 이미 잠이 들었고 옷은 여전히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 그녀의 늘씬하고 예쁜 다리는 조금 구부려졌고 평평한 아랫배에는 복근도 있어 더욱 섹시하고 요염해 보였다.
  • 그는 그녀에게 옷을 입히고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베개 중간에 눕히고는 담요를 덮어주었다.
  • 그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그녀를 쳐다보았다.
  • 방안은 아주 조용했다, 마치 방금 있었던 격렬했던 일들이 모두 환각인 것처럼 조용했다.
  • 3년 전, 그가 그녀의 처음을 빼앗아갔다.
  • ‘남편과 사이가 이 정도로 안 좋은 게 설마 나 때문인가?’
  • 죄책감과 동정을 느낀 그는 문밖을 향해 걸어갔다.
  • 양 중령은 손에 약을 들고 서있었다.
  • “사령관님, 72시간 내에 먹으면 임신하지 않을 겁니다.”
  • 고형준의 예쁜 눈썹이 찌푸려졌다.
  • “필요없다.”
  • “안전기입니까?”
  • 양 중령은 의아하게 물었다.
  • 고형준은 죽일 듯한 표정으로 양 중령을 노려보았다.
  • 양 중령은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 고형준은 양 중령 손안의 약을 한번 흘겨보고는 다소 복잡한 눈으로 말했다.
  • “아무 일도 없었다.”
  • “네?”
  • 양 중령은 흠칫 놀랐다.
  • ‘그럼 사령관님 아직도 총각? 불쌍해라…’
  • 그는 사령관의 스타일을 조금도 알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금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지금 당장 사람 붙여서 선생님 돌봐주도록 한다, 그리고 오늘 밤 일은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운다.”
  • “네.”
  • “또 최고급 화장품들도 사주도록 한다.”
  • 고형준은 또 명령했다.
  • “네.”
  • 양 중령은 의심스러운 듯 사령관님을 쳐다보았다.
  •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눈앞에 떡은 안 먹고 도리어 토해내?’
  •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 아침.
  • 백도희는 눈을 떴다.
  • 어젯밤 숙취로 인해 머리가 심하게 아파졌다.
  • 일어나 앉아 사방을 둘러보니 담요는 군녹색이었다.
  • 머릿장에는 가지런히 책 두 권이 놓여 있었다. 덮여 있는 한 권은 책갈피를 끼워놓았고, 다른 한 권은 펼쳐져 있는 러시아어 책이었고 메모가 가득했다.
  • 침대 맞은편의 책장에는 온통 책으로 가득했다.
  • 책장 위에는 두 개의 곤돌라가 있었고, 한쪽에는 국기와 수십 개의 트로피가 있었다.
  • 방 안은 온통 남성적인 향기로 가득했다.
  • 그녀의 방이 아니었다.
  • 백도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 유진이 그녀에게 준 물 한잔 후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 필름이 끊겨버렸다.
  • 그녀가 막 일어나려는데 누군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쟁반 위에는 세면도구들이 놓여있었다.
  • 백도희는 의아해서 물었다.
  • “누구시죠? 제가 왜 여기 있죠?”
  •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사령관 님께서 어젯밤 저더러 돌봐주라고 하셨습니다. 이건 세면도구입니다.”
  • “사령관 님이요?”
  • 백도희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 “네! 먼저 씻으세요.”
  • 진이는 화장실 문을 열고 물건을 화장대에 올려놓고 밖을 나갔다.
  • 백도희는 속으로 의아해하며 회장실로 들어갔다.
  • 화장대 위에는 남성 용품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 속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젯밤, 낯선 남자 침대에서 잤다니.
  • 거울 앞에 다가가 자신의 모습을 본 백도희는 화들짝 놀랐다.
  • 눈 밑은 온통 까맣고 가짜 속눈썹은 온데간데없었고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 그녀는 서둘러 이를 닦고 세수를 했다.
  • 하지만 눈밑 까만 부분은 아무리 씻어도 씻어낼 수 없었다.
  • 이때 누군가 클렌징 오일을 건네주었다.
  • 백도희가 고개를 들어보니 고형준이 깊은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아름답고 차가운 두 눈은 화를 내지 않았지만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
  • 백도희는 그가 바로 그날 사람을 구한 사령관이라고 알아차렸다.
  • 그녀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는 아무런 기억도 없었다.
  • “죄송해요,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요.”
  • 백도희가 사과했다.
  • “네.”
  • 그는 목구멍으로 이 소리를 내고는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 “이 클렌징 오일로 씻으세요.”
  • “네, 감사합니다.”
  • 백도희는 클렌징 오일을 건네받았다.
  • 그는 손에 있는 화장품 세트를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다.
  • “전 여자건 안 씁니다. 이거 먼저 쓰십시오.”
  • 말을 마치고 고형준은 몸을 돌렸다.
  • 백도희가 보니 프랑스 브랜드 겔랑이었다.
  • 이 브랜드는 30ML짜리 바디로션도 최저 300만 원이었다.
  • 그녀에게는 너무 벅찬 브랜드였다.
  • 그녀는 화장품 선물 봉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 고형준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앉아 있는 자세조차 강직하고 우아했다.
  • 손에는 메모한 러시아어 책을 들고 열심히 보고 있었다.
  • 소파 앞 테이블에는 죽 한 그릇과 계란, 유유 한 컵과 무슨 국인지 모를 국이 놓여있었다.
  • 백도희는 그의 앞에 다가왔지만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저기요, 이것들 전 사용할 수 없어요.”
  • 백도희는 선물 봉투를 소파 옆에 놓았다.
  • 그의 시선은 여전히 책을 향해 있었고 마치 그녀를 상대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 난감해진 백도희는 자리를 뜨려고 문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 “테이블 위에 있는 아침 먹고 가십시오.”
  • 고형준은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 백도희는 고형준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다.
  • 만약 여기 단둘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있다고 여길 정도였다.
  • 백도희는 테이블 앞에 앉았다.
  • “옆에 있는 그건 해장국입니다, 먼저 마시세요.”
  • 고형준이 또 말했다.
  • 백도희는 의심스러운 듯 그를 쳐다보았다.
  • 분명 자신을 보고 있지 않지만 모든 걸 꿰뚫고 있는 기분이었다.
  • 확실히 머리가 아팠던 그녀는 해장국을 들고 다 마셨다.
  • 속으로는 의구심이 생겼다.
  • ‘설마 내가 어제 이상한 말했나?’
  • “제가 어제 술에 취해서요, 말실수 한건 없죠?”
  • 백도희는 걱정스레 물었다.
  • 그는 우아하게 책 한 페이지를 넘기고 느긋하게 물었다.
  • “어떤 말실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헐, 진짜 실수한 거야?’
  • 그녀의 얼굴은 벌갛게 달아올랐다.
  • 백도희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 “제 친구가, 제가 취하면 횡설수설한다고 했는데, 사령관 님 믿지 마세요.”
  • 그는 고개를 들고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붉어진 그녀의 얼굴을 1초간 바라보았다. 그녀의 긴장과 부끄러움을 한눈에 담고 이내 한기를 뿜어냈다.
  • 백도희는 바짝 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