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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저 여자의 모든걸 원합니다

  • 괴한은 깜짝 놀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 백도희는 풍자적인 미소를 지었고 눈빛은 황량했다.
  • “자, 어디 와봐, 어차피 내가 죽으면 너희들 순장해야 돼.”
  •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차가움이었다. 마치 십이월의 추위와도 같았다.
  • 고형준은 더욱 깊어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형님, 이 년을 죽이고 싶어요!”
  • 노란 머리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고 나이 든 괴한이 일어섰다.
  • 백도희도 일어나 노란 머리를 향해 걸어갔다.
  • 마치 활을 당기듯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 나이 든 괴한은 그녀의 용기에 놀라 총을 그녀에게 겨누며 말했다.
  • “더 이상 다가오지 마.”
  • 백도희는 더욱 풍자적으로 피식 웃었다, 그리고 여광으로 문밖에 서있는 고형준을 보고 멈칫했다.
  • “나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지?”
  • 백도희는 지혜롭게 대처했다.
  • “여기서 해결해.”
  • 나이 든 남자는 신중하게 말했다.
  • “너희들 사실 도망 못 가, 창밖에 십여 명의 저격수들이 너희를 노리고 있어.”
  • 백도희는 턱을 창밖으로 향했다.
  • 나이 든 괴한은 깜짝 놀라더니 이내 창문가로 다가가 귀퉁이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 백도희는 기회를 타 문쪽을 향해 달려갔다.
  • 나이 든 괴한은 속았다는 걸 깨닫고 총으로 백도희의 다리를 향해 쏘았다.
  • 고형준은 한 발 빠르게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 백도희는 고형준의 품에 부딪쳤고, 고형준은 그녀를 뒤로 잡아당겼다.
  • 고형준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괴한은 위험을 인지하고 고형준을 향해 총을 쏘았다.
  • 고형준은 백도희의 머리를 감싸 안고 훈련대로 땅에 엎드렸다.
  • 동작은 아주 위험했다.
  • 하지만 백도희의 머리는 그의 손에 기대어 있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 그의 두 다리는 그녀의 몸 옆을 짓누르고 따뜻한 기운이 그녀의 얼굴에 전해졌다.
  • 백도희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넒은 우주 같았다.
  • 이렇게 그를 보노라니 모든 고통과 시련들을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음 속 깊이 박힌 상처도.
  • “왜 또 왔어요?”
  • 백도희가 물었다.
  • 그리고 바로 자신의 물음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도 깨달았다. 그는 군인이었고 인질을 보호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 “여기 소파 가까이 누워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제가 능력껏 당신의 안전을 지켜드리겠습니다.”
  • 고형준은 약속했다.
  • 백도희는 그가 전투 중인 치타처럼 보였다, 순간 바로 기둥 뒤로 돌진했다.
  • 궁지에 몰린 괴한은 총을 들고 다시 사격하기 시작했다.
  • 백도희는 펑펑 총소리만 귓가에 들릴 뿐이었다.
  • 기둥의 돌과 외벽은 모두 맞아떨어져 나갔고 고형준은 전혀 손을 쓸 겨를도 없었다.
  • 나이 든 괴한은 총을 기둥 가까이에 묘준하고 있었다.
  • 이러다 둘 다 죽을 거라고 판단한 백도희는 자신의 신발을 벗어 소파 뒤에서 던졌다.
  • 노란 머리는 소파를 향해 사격하기 시작했다.
  • 펑! 소리와 함께 노란 머리는 총을 맞고 휘청거리더니 땅에 쓰러졌다.
  • 나이 든 괴한은 경각심을 갖고 소파를 향해 뛰어갔다.
  • 고형준은 위험을 무릅쓰고 백도희를 TV 캐비닛 뒤로 당겼고, 좁은 공간에서 두 사람은 딱 붙어 있었다.
  • 고형준은 괴한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밖을 향해 총을 쐈다.
  • 백도희는 고개를 들어 고형준을 바라보았다.
  • 낯선 사람이 이렇게 능력껏 자신을 보호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 그녀를 보호해야 할 남편은,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여인의 품속에 있을 것이다.
  • 고형준은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숙여 그녀를 보았다.
  • 조심하지 않아, 입술이 닿았고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 그는 등을 꼿꼿이 세우고 얼굴을 돌려 그녀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
  • 백도희도 벽에 기대어 섰다.
  • 소욱도 그녀와 이렇게 가까이 있은 적은 없었다.
  • 죽기 전에 잘생긴 사령관과의 입맞춤이라니, 제법 괜찮았다.
  • 괴한은 눈을 붉히고 TV를 향해 난사하기 시작했고 TV는 그렇게 부서졌다.
  • 그들은 적의 시야에 드러났다.
  • 고형준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려 백도희의 앞에 막아섰고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파묻고, 자신의 육체로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녀를 철저하게 자신의 품 안에서 보호하고 있었다.
  • 쿵! 쿵! 쿵!
  • 백도희는 그의 힘 있게 뛰는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큰 북처럼 들려왔다.
  • 그의 몸에서 나는 특유의 사향 냄새가 그녀의 코끝에 들어왔고, 매우 부드럽고 향긋했다.
  • 철이 들어서부터 그녀는 이런 따뜻함과 안전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 기억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아픔이 강하게 밀려와 소욱의 배신과 한데 뒤엉켰다.
  • 만약 인생이 여기서 끝난다면,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따뜻했다, 이것도 좋았다.
  • 백도희는 눈을 감았고 눈가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낯선 남자의 품속에 숨어, 처음으로 조용하게 울었다.
  • 절체절명의 순간
  • 펑펑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 어두운 곳에 숨어 있던 008과 101은 고형준의 명령하에 순리롭게 적을 소멸했다.
  • 그들은 뛰쳐나가 살펴본 뒤 고형준에게 다가와 공손히 말했다.
  • “사령관 님, 괴한은 이미 처리했습니다.”
  • 고형준은 백도희를 풀어주었다.
  • 백도희는 눈을 뜨고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 “살았네요.”
  • 고형준은 그녀의 말투를 이해할수 없었다, 조금 실망한것 같기도 했다.
  • 그는 가슴이 차가운 걸 느끼고 내려다보니 축축해진 상태였다, 그는 의아하게 백도희를 쳐다보았다.
  • 백도희는 일어나 예쁘게 생긴 두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았다. 깊은 곳에 고요함이 보였고 마치 고요한 수면처럼 차갑지만 담담했다.
  • 고형준은 일어나 걱정스럽게 물었다.
  • “괜찮습니까?”
  • 백도희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 “사령관님께서 잘 보호해주신 덕분에 전 괜찮아요, 제가 할일은 다했으니 이만 돌아갈게요.”
  • 그녀는 몸을 돌렸다.
  • “전화번호랑 이름 남겨주십시오, 돌아가서 위에 보고하고 상을 내리겠습니다.”
  • 고형준은 마치 통상적인 수속을 진행하는 것처럼 진지한 표정이었다.
  • 다만, 이런 일들은 사령관이 처리할 필요가 없었다.
  • “아니에요. 당연한건데요 뭐.”
  • 백도희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어느새 2시가 넘었다.
  • “내일 출근해야 돼서요, 가볼게요.”
  • 그녀는 고형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구급상자를 챙겼다.
  • 고형준은 문 앞에 곧은 자세로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 백도희는 고형준을 지나치고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고 문을 열고 나갔다.
  • 방안은 아주 조용했다, 마치 그녀가 이곳에 없었던것처럼 조용했다.
  • 고형준은 다시 한 번 촉촉해진 옷을 내려다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 “008, 101 의사분 따라가서 안전하게 귀가하는 거 확인하고 다시 군으로 복귀하도록 한다.”
  • 그는 엄숙하게 명령했다.
  • “네!”
  • 08과 101은 신속히 떠났다.
  • 양 중령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들어와 고형준의 앞에 공손히 섰다.
  • “사령관 님, 이번 임무도 사령관 님의 현명한 지도하에 완벽하게 완수했습니다, 28명의 대원들은 모두 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 “돌아간다!”
  • 고형준은 간단하게 말하고 문을 나섰다.
  • 아래층에 군용 랜드로버 한 대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 고형준은 몸을 약간 기울고 뒷자석에 올랐다.
  • 차가 백도희 옆을 스쳐지나가자 고형준은 자기도 모르게 창밖을 내다보았다.
  • 백도희는 구급상자를 들고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야위고 허약한 그녀였지만 카리스마를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 “양 중령.”
  • 고형준이 외쳤다.
  • “네, 사령관 님.”
  • 양 중령은 이내 고개를 돌려 고형준의 지시를 기다렸다.
  • “의사 선생님에 대해 조사한다. 전부 다.”
  • 고형준은 냉철한 얼굴로 명령했고 눈에서는 견고한 의지가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