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꺼져
- 닝구 산 중턱에 위치한 별장.
- 어두운 조명과 사과향이 풍기는 룸.
- 핑크색 침대 위에 침대 시트는 잔뜩 구겨져있었다.
- 소욱은 앉아서 눈을 반쯤 뜨고 있었다. 촘촘한 속눈썹들이 그의 새까만 눈동자를 가려줘 그의 눈에 간간이 스치는 서늘함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 붉고 얇은 입술은 섹시하게 살짝 벌러져있었다.
- 조각가 손에서 탄생한 천사가 따로 없었다, 완벽한 외모와 매력적인 성격, 그리고 얼굴에는 늘 매혹적인 웃음을 짓고 있었다.
- 쪼그려 앉은 여자는 열심히 입으로 그의 가장 예민한 신경을 건드리면서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 “갖고 싶어요.”
- 여자가 애원했다.
- 그는 고개를 숙이고 사악한 웃음을 짓더니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 “갖고 싶어?”
- “네.”
- “오늘은 좀 피곤해서, 다음에.”
- 소욱은 잔인하게 말하고는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 오늘 밤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 소욱은 일찌감치 자리를 떠났다.
- 별장에서 나온 그는 휴대폰을 들고 백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 뚜, 뚜, 뚜…
- 백도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 그는 입꼬리를 쓱 올리더니 중얼거렸다.
- “성질부리는 거야? 그래, 재밌네.”
- 그는 또 그녀가 시중심에 사는 아파트로 전화를 걸었다.
- 뚜, 뚜, 뚜.
- 그의 인내심은 점점 한계에 다다랐다.
- “여보세요.”
- 집에 있는 하녀의 혼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사모님은?”
- 소욱은 차갑게 물었다.
- “네, 사모님 아직 안 돌아오셨는데요.”
- 여하인이 대답했다.
- “오늘 당직 아니잖아?”
- 소욱의 안색이 더욱 차가워졌다.
- “네, 아닙니다.”
- 여 하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욱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 “백도희, 감히 외박을 해!”
- 그는 속도를 높여 병원으로 향했다.
- 병원으로 돌아온 백도희는 서랍을 열고 휴대폰을 꺼냈다.
- 2시 31분에 소욱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 그녀는 슬픈 웃음을 짓고는 다시 전화하지 않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 그는 서랍에서 밴드와 요오드를 꺼냈다.
- 거울 앞에 가서 목의 상처를 확인하니 바늘만 한 구멍의 흉터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 그래도 안전을 위해 밴드를 붙였다.
- 의자에 앉아 그녀는 면봉으로 요오드를 약간 묻혀 손톱 상처에 바르고 세 개의 밴드를 붙였다.
- 그리고 사무실의 침대에 막 누웠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 백도희는 바로 일어나 앉았다.
- 소욱은 그녀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빵빵한 얼굴에는 평소와 같은 매력적인 미소가 번졌다.
- 그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거들먹거리며 그녀 앞에 다가왔다.
- “오늘 당직도 아닌데 왜 집에 안 돌아갔어?”
- 백도희는 그의 목에 난 키스마크를 바라보았다.
- ‘방금 일을 마쳤나 보네!’
- “여긴 왜 왔어?”
- 백도희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신발을 신고 일어났다.
- “지나가다가!”
- 소욱은 느긋하게 말하고는 그녀 목에 난 상처를 발견했다.
- 그리고 그 준수한 얼굴에 갑자기 풍자스러운 웃음이 번졌다.
- “백도희, 언제부터 자학행위를 배웠어?”
- 백도희는 건들건들 거리는 그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 그의 얼굴에서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 마치 외도를 한 사람이 아닌듯, 밖에 사생아까지 있는 사람이 아닌 듯 말이다.
-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그녀는 눈빛도 날카로워졌다.
- “그래, 그게 뭐? 네가 바람피운 아픔에 비하면…”
- “쓱!”
-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욱은 손을 뻗어 그녀 목의 밴드를 떼어냈다.
- 피부가 잡아당겨지며 전해오는 고통에 머리까지 서늘해졌고 무참히 그녀가 하려던 말을 끊어버렸다.
- 그녀는 멀뚱멀뚱 서서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 그녀의 매끈한 목을 보고 소욱은 오히려 반감하며 말했다.
- “뭐야, 아무런 상처도 없잖아, 백도희, 이런 개수작 부리지 마.”
- 소욱은 비꼬며 말했다.
- 그녀는 마음이 더 시려났고 그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 “꺼져.”
- 소욱의 눈에서는 한줄기 예리한 빛이 스쳤다.
-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그녀를 침대로 앉혀 싸늘한 얼굴로 죽일 듯이 노려보며 비꼬았다.
- “내가 왜 네 몸에 손 안 대는 줄 알아?”
- 그녀는 입을 오므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큰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 가슴속에 있는 거문고 줄이 당긴 듯 아파났다.
- 지금처럼 그의 잔인한 모습을 머릿속에 새겨 넣어야만 점점 무뎌지고 강해질 수 있었다.
- 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소욱은 더욱 화가 나서 그녀에 대한 미움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 “거만한 것도 얄밉고, 그 가식적인 모습도 역겨워.”
- 그녀의 속눈썹이 반짝였고, 눈앞에는 한 층의 안개가 뒤덮였다. 그녀는 묵묵히 그를 쳐다보며 울지도, 반박하지도 않았다.
- 가슴 깊은 곳에서는 피가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 “알아, 날 싫어하는 거 아는데 내가 왜 너랑 결혼했는 줄 알아?”
- 백도희가 물었다.
- 소욱은 흠칫하더니 눈썹을 찌푸리고 그녀의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 백도희는 미소를 지었다, 마치 아름다운 백합과 같은 미소였다.
- 그의 웃음은 여러 운명을 바꾸어 놓을 경국지색의 외모였다.
- 소욱은 그녀의 웃음에 조금 빠져들었다.
- “왜냐하면, 네가 불행한 모습을 지켜보려고. 너랑 네 애인이 날 납치했는데 증거가 없으니, 다 같이 죽을 수밖에.”
- 백도희는 단호하게 말했다.
- 소욱은 바로 그녀의 얼굴을 뿌리쳤다.
- “내 변호사가 곧 연락이 갈 거야. 너랑은 끝이야. 나까지 망가뜨리려고? 꿈 깨.”
- 소욱은 이성을 잃은 듯 말했다.
- 그는 몸을 돌리고 책상 위에서 휴지를 꺼내 힘껏 닦았다.
- 마치 무슨 더러운 물건을 만지기라도 한 듯 말이다.
- 휴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이내 밖으로 나갔다.
- “펑!”
- 백도희는 굳게 닫힌 문을 보고 침대에 앉아 눈가가 촉촉해졌다.
- 그녀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니 가슴속의 상처가 점점 아려왔다.
- 한때는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였다.
-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그에게 무슨 존재였을까?
- 결혼을 제의한 사람도 그였고, 배신한 사람도 그였다, 지금 이혼을 꺼낸 사람도 어김없이 그였다.
- 그녀는 마치 미치광이처럼 남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 마음이 아파져 숨을 쉴 수가 없었다.
- 그녀는 몸을 더 움츠린 채 자신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얼어 죽지 않으려고 자신의 몸에서 열을 흡수하려는 것 같았다.
- 결국,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이 들지 못했다.
- 기지----
- 고형준은 양 중령이 건네준 자료들을 넘겨받고는 미간이 찌푸려지고 칠흑 같은 눈에서는 죄책감이 스쳤다.
- 결혼 후 그녀의 생활이 이토록 비참할 줄은 몰랐다.
- 그녀는 남편과 별거 중이었고, 고부관계도 좋지 않았고, 엄마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 그녀의 남편은 이미 찾아낸 애인만 열여섯 명이었다.
- 기본적으로 두 달 반 정도에 한번 여자를 바꾸고 있었다.
- 고형준은 자료를 덮고 양 중령에게 명령했다.
- “그쪽 원장님께 인사드리고 부과장으로 승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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