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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런 남자는 덮쳐야지

  • 소욱은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미간을 찌푸린 채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 담배 냄새, 술 냄새,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장소의 특유 냄새가 풍겨왔다.
  • 그는 갑자기 음흉해진 눈으로 물었다.
  • “어젯밤 어디 간 거야?”
  • “유진이랑 장군령 클럽에 갔어.”
  • 백도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 그녀는 당당했다, 양심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소욱은 더욱 경멸하는 눈으로 비꼬았다.
  • “너 정말 역겨워!”
  • 백도희는 피식 웃었다.
  • “너도 마찬가지야.”
  • 그녀는 밖을 향해 걸어갔다.
  • “잠깐.”
  • 소욱은 싸늘한 목소리로 불러 세웠다.
  • 백도희가 돌아보니 소욱은 매서운 눈초리로 식탁을 스캔하고 있었다.
  • “이거 다 치워, 네가 만든 음식 더러워서 못 먹겠어.”
  • 백도희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는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 그녀가 아무리 더러워도 남자 한 명뿐이었다, 그것도 강제로.
  • 하지만 깨끗다고 자부하는 그는 한손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애인들이 있다.
  • 그녀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 “내가 만든 음식 먹을 자격 없어.”
  • 백도희는 차갑게 말하고는 식탁을 향해 걸어가 모든 걸 쓸어버렸다.
  • 사기그릇들은 쨍그랑쨍그랑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 사척에 볶음요리, 밥, 국물 투성이었다.
  • 소욱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백도희의 팔을 잡았다.
  • 마치 그녀의 손을 부러뜨릴 기세로 힘껏 잡고는 흉악하게 말했다.
  • “깨끗이 치우고 가.”
  • “꿈 깨.”
  • 백도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 그의 눈에는 살기가 스치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졸라 기도를 막았다.
  • 백도희는 호흡이 가빠 왔고 증오스러운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 그와의 결혼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 끝나는 것도 어쩌면 좋았다.
  • 그녀가 죽으면 그도 감옥에 갈 것이고 함께 지옥으로 갈 수 있다.
  • 혼자서 슬프고, 억울하고, 무수한 고충을 털어놓을 수 없는 생활보다는 낫았다.
  • 백도희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매혹적인 눈매에는 요염한 웃음이 번졌다.
  • 그것은 독이고, 침이고, 가시이고, 단호함이었다.
  • 소욱은 의아해하며 손을 풀었다.
  • 백도희는 힘을 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고 두 손으로 땅을 지탱했다.
  • 날카로운 파편들이 그녀의 손바닥을 찔러 피가 흘러나왔다.
  • 소욱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눈에서는 이상한 기운이 스쳤다.
  • “꺼져, 다시 오지 마.”
  • 백도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내리뜨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피는 바닥에 떨어져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 그녀는 밖을 향해 걸어가면서 소욱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 슬펐다, 가족이 이 모습을 본다면 마음 아플 것이고, 적이 본다면 통쾌할 것이고, 가족도 아니고 적도 아닌 사람이 본다면 그저 티타임일 뿐이었다.
  • 그녀는 슬퍼하지 말아야 했다, 속상해하지 말아야 했다, 울지 말아야 했다.
  • 백도희는 약국에서 손을 씻고 밴드를 사서 혼자 상처를 처리했다.
  • 유진이 전화를 걸어왔다.
  • “도희야, 너희 집 앞인데 언제 돌아와?”
  • 백도희도 어젯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쩌다 그 군인 집에 가게 된 건지 묻고 싶었다.
  • “금방 가.”
  • 얼마 지나지 않아, 백도희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 유진은 백도희의 안색을 살폈지만 그리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유진아, 어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 백도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그게, 어제 나도 취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 안 나, 안 그래도 너한테 물어보려고 했어.”
  • 유진은 조마조마해 하며 말했다.
  • “…나도 기억 안 나, 일단 들어와.”
  • 백도희는 문을 열었다.
  • 백도희가 따지지 않는 것을 본 유진은 싱글벙글해하며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 들어가자마자 화장품 봉투가 한눈에 들어왔다.
  • “세상에, 프랑스 겔랑이잖아, 너 로또 당첨됐어? 이렇게 비싼 화장품을 다 사고.”
  • 유진은 선물 상자를 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 “적어도 5천만원은 하겠는데?”
  • “뭐라고?”
  • 백도희도 깜짝 놀랐다.
  • 그저 몇백만 원인 줄 알고 돈 있으면 갚으려 했는데 5천만 원이라니.
  • 그녀에게 그렇게 많은 돈은 없었다.
  • 유진은 상품 리스트를 한번 보고는 꺼내들고 흔들기 시작했다.
  • “내가 말했지, 4046만 원, 너 벼락부자 됐어?”
  • “내 거 아니야, 이 화장품들 좀 팔아주면 안 돼?”
  • 백도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 “왜 팔아, 네 남편 돈 많잖아?”
  • 유진은 영수증을 선물 봉투 안으로 넣었다.
  • 백도희는 어두워진 눈으로 확신하며 말했다.
  • “그 사람 돈 안 써.”
  • “여자는 무조건 자립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뭐 이런 관점은 나도 너 지지해, 하지만…”
  • 유진은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 “이것들 다른 남자가 준거야?”
  • “어제 한 군인이 준거야, 난 받을 이유 없어, 앞으로 연락하고 지낼 사이도 아닌데 다른 사람 물건 가지는 거 안 좋잖아?”
  • 백도희가 설명했다.
  • 유진의 눈이 반짝였다.
  • ‘어제 그 남자가 그렇게 돈이 많았어?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연락하지 않는다고? 그건 안되지.”
  • “갚아야지, 무조건 갚아야지. 나한테 판 걸로 쳐. 내가 이따가 돈 줄 테니까 네가 갚으면서 밥이라도 사줘, 맞다, 너 어젯밤 그 사람이랑 아무 일 없었어?”
  • 백도희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 “당연하지, 무슨 생각하는 거야?”
  • “그런 남자는 네가 그냥 덮쳤어야지.”
  • 유진이 조언했다.
  • 백도희의 머릿속에는 고형준의 차갑고, 온몸에서 풍기는 함부로 다가가지 못할 카리스마가 떠올랐다.
  • “쉽게 쓰러뜨릴 수 있는 남자가 아니야.”
  • 백도희는 확신에 찬 듯 말했다.
  • “사람이 하려고 하면 못하는 일이 어딨어, 네가 노력하면 돼.”
  • “노력한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 하지만 노력하지 않는 게 더 편해. 그 사람이랑은 불가능해.”
  • 백도희는 말하고는 화장품 봉투를 유진의 품에 건넸다.
  • “가져가.”
  • 유진은 하는 수없이 소파에 앉아 백도희 계좌에 돈을 입금하고는 의아하게 물었다.
  • “그럼 내가 준 돈은 어떻게 돌려줄 거야?”
  • 백도희는 냉장고로 가서 음료 두병을 꺼내고 유진에게 한 병 건넸다.
  • “그 사람 번호 있어, 군사지역 문 앞에 도착하면 전화하라고 했어.”
  • 백도희는 말하면서 유진의 옆자리에 앉았다.
  • 이때 그녀의 핸드폰에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 유진이 이체한 돈이 입금되었다.
  • “지금 바로 전화해. 시간도 있는데 마침 저녁도 사주면 되잖아.”
  • 유진은 히죽히죽 웃으며 조언했다.
  • 남에게 오래 빚을 지고 싶지 않았던 백도희는 가방에서 고형준이 준 종이를 꺼냈다.
  • 위에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 유진은 고개를 내밀고 종이를 쳐다보았다.
  • “고형준, 글씨체를 보아하니 수양도 있고 학식도 뛰어나고 능력도 있는 보기 드문 인재네.”
  • 백도희는 이상하게 유진을 쳐다보았다.
  • “아예 돗자리 깔지 그래?”
  • “헤헤, 그럴까? 빨리, 빨리 전화해.”
  • 유진의 재촉에 백도희는 전화를 걸었다.
  • 연결음이 세 번 울리고 고형준이 전화를 받았다.
  • “안녕하세요, 백도희입니다.”
  • 백도희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 “네.”
  • 그의 묵직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
  • “한 시간쯤 뒤에 돈 갚으러 갈게요. 괜찮으신가요?”
  • 백도희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 “오세요.”
  • 고형준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 “말수가 원래 이렇게 적어?”
  • 유진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 “이미 많이 한 거야.”
  • 백도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
  • “내가 신발 하나 줄게, 나한테 작아, 브랜드 제품이라 버리긴 아까워서.”
  • 유진은 히죽히죽 웃으며 눈에서는 교활함이 번뜩였다.
  • 백도희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 “그래,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