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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님, 구해줘요

사령관님, 구해줘요

수국의속삭임

Last update: 2021-11-26

제1화 너의 불행한 삶을 기도해

  • “나랑 당신 남편 샹그릴라 1108호실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 백도희, 도대체 왜 이혼을 안 하는 거야? 야비한 년! 넌 그 사람 몸도 마음도 잡지 못하고 있어.”
  • 백도희는 1108호실 입구에서 휴대폰 속의 문자메시지를 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다.
  • 긴 속눈썹이 눈 밑의 수심을 가리고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 소욱은 요염하고 섹시한 여비서를 안고 나왔다.
  • 그는 백도희를 보고 흠칫하더니 이내 간사한 미소를 지었다.
  • “또 외도 현장 잡으러 왔어? 왜? 들어오지? 그렇게 서 있으면 안 힘들어?”
  • 백도희는 그런 소욱을 덤덤하게 보며 입을 열었다.
  • “너희 분위기 깰 가봐 안 들어갔지, 너 내 얼굴 보고 안 서면 어떡해? 아 맞다, 병은 다 나았어?”
  • 그녀의 저주를 듣는 소욱의 눈에는 언뜻 노한 빛이 스쳤다.
  • “백도희, 처음부터 불결한 건 너였어, 말을 이딴 식으로 밖에 못해?”
  • 백도희는 웃었다.
  • 눈물이 나올 정도로 웃었다.
  • 3년 전, 소욱의 전 여자친구가 백도희를 납치했다.
  • 그녀는 도망치다가 복면을 쓴 낯선 남자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말았다.
  • 소욱의 차가 멀지 않은 곳에 멈추는 게 보였다.
  • 소욱과 그 여자는 한데 얽혀 뒹구르고 있었다.
  • 바로 백도희를 납치한 여자 말이다.
  • 요란한 차의 진동을 보며 백도희는 가슴이 찢어졌다.
  • 심지어 뒤에서 전해오는 강렬한 통증보다 더욱 아파났다.
  • 그동안 어떻게 견뎌왔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가슴이 찌릿해왔다.
  • “듣기 불편했다면 미안해. 말을 이딴 식으로 하는 게 습관 됐나 봐.”
  • 백도희는 턱을 살짝 쳐들며 말했다.
  • 소욱의 눈빛은 싸늘해졌다.
  • “도대체 여긴 왜 온 거야? 설마 나 일부러 기분 나쁘게 하려고 온 거야?”
  • “그럴지도? 당신 예감은 늘 틀리지 않았잖아.”
  • 백도희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 “꺼져.”
  • 소욱은 거리낌 없이 말했다.
  • 백도희는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 소욱에게 건넸다.
  • 소욱은 바로 건네받지 않고 신중한 모습이었다.
  • “이게 뭐야?”
  • “이 여자.”
  • 백도희는 소욱의 비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 “내가 뭐?”
  • 비서는 소욱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 백도희가 소욱의 아내이긴 하지만 전혀 사랑을 못 받는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오늘 보니 소욱의 미움을 한껏 받고 있는 것 같았다.
  • 그래서 비서도 두려울 게 없었다.
  • 백도희는 손에 든 자료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 “당신, 소성에서 아주 유명하던데? 소성에서 잘나가는 부자들 80%로는 거의 너랑 다 잤잖아, 그중 한 명이 지난달에 에이즈 판정을 받았어.”
  • 비서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 백도희는 소욱에게 시선을 돌리고 계속 말했다.
  • “콘돔은 사용했겠지? 만약 아니라면 내가 아는 의사 있는데 소개해 줄까?”
  • 소욱은 백도희의 손에 있는 자료를 건네받고는 눈을 찌푸리고 매서운 눈빛을 발산하더니 백도희의 얼굴에 자료를 던져버렸다.
  • “넌 늘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어.”
  • 백도희는 꼿꼿이 서있었다.
  • 종이에 맞은 얼굴은 생각보다 아팠다.
  • 그녀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 “알잖아, 난 당신 행복한 꼴 못 봐, 앞으로도 쭉 불행하게 만들어줄 거야.”
  • “그럼 난, 널 더 불행하게 만들어서 내 행복을 찾으면 되지, 오늘 집에 안 돌아가, 기다리지 마.”
  • 소욱은 화내며 말했다.
  • 그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 백도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제자리에 서있기만 했다.
  • 기다리지 말라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오늘 밤, 그는 다른 여자와 밤을 보내고, 다른 여자의 냄새에 취한다는 뜻이었다.
  • 그때 그 일이 있은 이후로 소욱은 줄곧 백도희의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 그의 눈에 백도희는 더러운 비서만도 못한 존재였다.
  • 백도희의 눈에는 서서히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 그녀가 말을 하지 않고 울지 않는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 소욱의 비서는 갑자기 손을 뻗어 백도희의 뺨을 때렸다.
  • 무방비 상태에 있던 백도희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벽에 기대었다.
  • “비열한 년, 날 망가뜨린다고 네가 저 남자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 비서는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 “난 저런 바람둥이 마음 같은 거 필요 없어.”
  • 백도희는 비서의 뺨을 후려쳤다.
  • “난 너희들이 함부로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 “그럼 왜 이혼 안 하는 건데?”
  • 비서가 소리쳤다.
  • “그 문제는 넌 알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내일 이 자료들을 인터넷에 뿌릴 거야, 다 자업자득이야.”
  • 백도희는 차갑게 말하고 호텔을 나왔다.
  • 밤은 이미 깊어졌고 그녀는 옷을 여미고 인적이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 달빛이 그녀의 그림자를 길게 늘여놓았다.
  • 조금 쓸쓸하고, 조금 고독했다.
  • 집으로 돌아가면 마음만 더 불편해질 테니 그녀는 아예 병원의 당직실에 가서 자려고 했다.
  • 막 사무실에 도착해서 불을 켜는데 녹색 군복을 입은 병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뛰쳐들어와 다급하게 물었다.
  • “당직 산부인과 의사십니까?”
  • 백도희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물었다.
  • “무슨 일이죠?”
  • “근처에 임산부가 인질로 잡혔는데 양수가 터져서 즉시 응급처치가 필요한 위급한 상황입니다. 저랑 함께 가주십시오.”
  • 병사는 급하게 말했다.
  • 양수가 터졌다면 산모와 아이는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 백도희는 고민할 겨를도 없었다.
  • “구급상자 챙겨서 갈 테니까, 5분만 시간을 주세요.”
  • 잠시 후, 그녀는 병사를 따라 병원 부근의 가든 아파트에 도착했다.
  • 복도에는 십여 명의 군인들이 굳은 얼굴로 서있었다.
  •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윗쪽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 백도희는 사건이 발생한 801호 맞은켠 802호에 들어갔다.
  • 한눈에 지휘하고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 그는 강인한 얼굴형에 매서운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 또렷한 이목구비는 마치 조각해낸 예술품 같았고 늠름한 자태는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 그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무궁화 3개가 달린 대령도 있었다.
  • ‘그럼 이 사람 신분은 장군이란 거야?’
  • 남자의 살벌한 눈빛이 날아왔다.
  • 백도희는 그의 위력에 눌려 고개를 숙여버렸다.
  • 그는 백도희에게 걸어왔고 큰 그림자에게 뒤덮인 백도희는 이상한 압박감이 몰려왔다.
  • 그날 밤 낯선 남자도 이처럼 건장했었다. 그래서 그녀의 몸부림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 “고개 드십시오.”
  • 고형준이 명령했다.
  • 그는 매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백도희의 청순한 얼굴과 오므린 입술을 보고 화내지 않고 위엄을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 백도희는 압력을 못 이겨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다.
  • 그의 냉철한 얼굴과 매서운 눈빛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사람을 숙연하게 만드는 남자는 본 적이 없었다.
  • “저는 범죄자가 아니라, 의사예요.”
  • 백도희가 입을 열었다.
  • 고형준의 눈에는 한 줄기 예리한 빛이 스치더니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 “내보내고 다른 의사 들여 보내도록 한다.”
  • 백도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
  • “왜 전 안되는 거죠?”
  • “저안에 마약 거물들만 셋이 있습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데, 괜찮겠습니까?”
  • 고형준은 위엄있게 말했다.
  • “왜 안 괜찮죠?”
  • 백도희가 되물었다.
  • 고형준은 차가운 눈으로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다가와 말했다.
  • “잘 생각하고 말하십시오, 이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시뮬레이션도 아닌 실전입니다.”
  • 그의 숨결은 모두 그녀의 입술에 전해졌다.
  • 백도희는 고집 있는 여자였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무시할수록 그녀는 더욱 해내야만 했다.
  • “죽는 게 두려웠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요.”
  • 그는 고형준을 바라보며 경건하게 말했다.
  • 고형준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 그의 새까만 눈동자를 통해, 그의 눈에 비친 백도희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