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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부사장님, 자중해주세요

  • “부사장님, 자중해주세요.”
  • 부태영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서아름의 얼굴을 보며, 덤덤하게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귀에 대고, 천천히 말했다.
  • “나는 장사꾼이야, 장사꾼은 이익만 도모하고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지. 그렇다면 너는 그 별장과 등가로 교환할 만한 물건이 있어?”
  • 부태영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싸늘한 한기가 어렸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는 그녀의 옆모습을 지켜보았다. 부태영의 말은 그녀의 마음속 가장 연약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돈이라면 3년 전 서씨가문이 부도나면서 서아름은 돈이 없다. 어젯밤 부태영은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난처하게 했으니 자신을 원하는 것도 아니라 생각하며 대체 자신한테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했다.
  • 그녀의 허리를 쥔 손은 더 꽉 쥐었다. 서아름은 힘껏 몸부림쳤지만,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고, 부태영은 그녀의 가냘프고 여린 모습을 보며 물었다.
  • “어젯밤에는 잘만 꼬시더니?”
  • 부태영은 몸을 숙여 얇은 입술은 더욱 그녀에게 가까이하며, 매력적인 목소리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 “아니면, 지금 나랑 밀당하는거야?”
  • 부태영은 조용히 서아름의 어깨에 늘어뜨린 긴 머리카락을 뽑아 손에 쥐더니 갑자기 어항 쪽으로 밀었다. 등이 단단한 유리에 부딪혀 아픈 서아름의 작은 얼굴은 구겨졌고 반항할 여지도 없이 남자의 길고 힘 있는 다리가 그녀의 다리 사이로 끼어들어 섹시하고 강렬한 남성의 호르몬 기운이 풍겼다.
  • “너의 젊은 몸에는 꽤 관심 있어.”
  • 부태영의 경박한 말투는 서아름을 불쾌하게 했고 가까이 다가온 준수한 얼굴을 째려보았다. 서아름의 얇은 입술이 부태영과 닿기 직전, 그녀의 눈이 심하게 떨리더니, 부태영을 힘껏 밀어 사무실에서 뛰쳐나왔다. 부태영은 허둥지둥 도망치는 가녀린 모습을 보며, 손에 쥔 검은색 머리를 날카롭게 보았다.
  • 서아름이 정신없이 사무실에서 허둥지둥 뛰쳐나온 바람에 한 여자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 “와르르--”
  • 여자와 부딪혀 들고 있던 서류들이 땅에 떨어지자, 서아름은 급히 몸을 구부려 주워주었다.
  • “죄송합니다.”
  • 서아름이 서류를 쥐여주며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성미주는 깜짝 놀랐다.
  • “부딪혀서 너무나 죄송합니다.”
  • 성미주는 웃으며 공손히 서류를 넘겨받았다.
  • “괜찮아요.”
  • 서아름이 떠나고 나서야 성미주는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이마를 찌푸리며 서아름의 눈이 콩이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성미주는 시끌벅적한 면접실을 보더니 부태영이 콩이의 생모를 찾는다고 짐작하며 더욱 불안해했다. 서류를 들고 하이힐을 밟으며 사장 사무실로 걸어가 문을 두드리려는데 안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 “이건 콩이와 서아름의 머리카락이야. 당장 가져가 검사해보고 DNA 결과를 비교해.”
  • 역시나 부태영은 콩이의 생모를 찾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성미주의 서류를 든 손이 하얗게 질리도록 꽉 쥐었다.
  •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문 앞에 서 있는 성미주를 본 서강은 멈칫했지만 인사를 했다.
  • “성 사장님, BOSS한테 볼 일 있으세요?”
  • “응, 의 포스터 원고가 나와서 보여주려고 왔어.”
  • 서강은 고개만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 “BOSS 바로 안에 있습니다. 저는 볼 일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 성미주는 서강의 손에 쥔 흰색 봉투를 보더니 궁금해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 “서비서, 이건 뭐야?”
  • 성미주는 손을 뻗어 가지려고 했지만, 서강은 경계하는 듯 한발 비켜서며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 “별거 아닙니다. 성 사장님.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 성미주는 안에 든 물건이 콩이와 서아름의 머리카락이라 생각하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 “이건 원고야, 확인해보고 문제없으면 사인해 주면 돼.”
  • 부태영은 서류를 받아 훑어보더니 검은색 사인펜을 들어 대충 사인을 했다.
  • 성미주는 심호흡을 하며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 “아침부터 유석이가 몇 명 데리고 '사모님' 자리를 면접 보느라 바쁜 거 봤는데, 정말 아내를 면접으로 뽑을 거야? 태영아, 결혼은 장난이 아니야.”
  • 성미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태영은 머리를 들며 말했다.
  • “형수님, 회사에서는 부 사장님이라고 불러 주세요.”
  • 성미주가 멈칫하더니, 부태영은 이미 서명한 서류를 건네주었다. 성미주는 빨간 입술을 오므리며 말을 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더니 한참 동안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서류를 넘겨받았다.
  • 문 앞까지 걸어가던 성미주는 뒤로 돌아보며 물었다.
  • “태영아, 나랑 꼭 이렇게까지 선을 지켜야 해? 한유가 죽은 지 5년이나 넘었잖아.”
  • “공적으로는 나의 직원이고 사적으로는 영원한 저의 형수예요.”
  • 차갑고 무자비한 목소리로 성미주의 마음속 마지막의 희망의 줄을 끊어버렸다.
  • 서아름은 부식 그룹 사옥에서 나와 냉수 한 병을 사서 반병을 마시고 나서야 그 어수선한 마음이 가라앉았다.
  • 바로 전에 눈 딱 감고 동의했더라면 지금쯤 벌써 아버지의 별장을 지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아름은 머리를 치며 후회하고 있던 중 전화가 걸려 들어왔다.
  • “응, 율아.”
  • “아름아, 면접 어때? 너의 재능으로 심사위원들을 다 굴복시켰지?”
  • 서아름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택시를 잡았다.
  • “말도 마, 부식 그룹은 아무래도 망한 거 같아. 어제저녁에 온라인에서 아르바이트를 지원했는데 지금 가보려고.”
  • “그럼 파이팅, 부식 그룹 쪽은 분명히 면접 붙을 거야! 너의 실력을 믿어!”
  • 서아름은 전화를 끊으며 택시에 탔다.
  • “기사님 국제 유치원으로 가주세요.”
  • 국제 유치원에 도착한 서아름은 문을 열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 “안녕하세요, 저는 면접 보러 왔는데요, 어제 연락드렸었습니다.”
  • “아, 네. 미술 선생님 자리를 면접 보러 오셨죠.”
  • “네.”
  • 어린이집 원장님은 서아름의 이력서를 보더니 웃으며 물었다.
  • “서아름씨의 학력과 해외의 출신 대학은 모두 매우 우수하지만, 아직 아이들과 어울린 적이 없던 것 같은데, 요즘 우리 유치원의 유아반에 전학 온 어린이가 다른 친구들과 늘 충돌이 생겨서 한번 해결해보시겠어요?”
  • 서아름은 바로 면접시험인걸 알아채고 웃으며 대답했다.
  • “네, 알겠습니다.”
  • 어린이집 원장님은 서아름을 데리고 쉬는 시간의 운동장에서 멀지 않은 큰 나무 아래 앉아 있는 어린 소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 “저기 앉아있는 여자아이예요. 얼마 전, 기관유치원에서 전학 왔는데, 이름은 콩이에요. 같은 반의 친구들과는 늘 사이가 좋지 않았고, 어제도 친구들과 싸웠어요.
  • 콩이 집안이 워낙 대단해서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은 감히 비난하지 못했지만, 선생님으로서 우리는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 서아름이 콩이 앞으로 다가가더니, 콩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큰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 “누구세요?”
  • “그럼 넌 누구야? 왜 혼자 여기서 이러고 있어? 다른 친구들이랑 안 놀아?”
  • 콩이는 입술을 더 세게 내밀며 말했다.
  • “안 알려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