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의 마이바흐가 두 줄의 높고 큰 오동나무 아래의 그늘을 지나가며 부씨 가문 본가로 들어갔다. 어두운 밤으로 뒤덮인 부씨 가문 별장은 더욱 장엄해 보였다.
부태영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부정열을 보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아버지.”
부정열은 주름진 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코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아버지라 생각하면 빨리 결혼해서 콩이한테 새엄마나 만들어줘! 나 죽을 때까지 장가도 못가지 말고.”
3년간 부정열이 부태영에게 제일 불만인 건 여자친구를 좀처럼 찾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는 것이었고 요즘 들어 더 많이 재촉했다.
그 말을 들은 부태영은 차분하게 대처했다.
“누구랑 결혼하던지 제겐 똑같아요. 소개해준 김 씨, 조 씨, 이 씨, 박씨 집안의 딸한테 저는 의견 없어요. 그런데 아시겠지만, 콩이는 그 이모들을 하나도 좋아하지 않아요. ”
부정열은 화가 나서 지팡이를 잡고 마루를 힘껏 두드리며 호통쳤다.
“콩이를 두고 핑계 삼는 거를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
부태영은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더니 침착하고 쌀쌀하게 말했다.
“아버지, 다른 일 없으면 콩이 보러 먼저 올라갈게요.”
“거기서!”
부정열은 일어나서 지팡이를 잡고 무거운 걸음으로 부태영에게 다가갔다.
“콩이가 다른 이모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니 그럼 콩이 친엄마를 다시 찾아와! 네가 정말 나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해? 미혼에 세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게 말이 돼? 콩이도 점점 커가는데 언젠간 외부에서 콩이의 존재를 알 것이고, 나 부정열의 손녀, 부태영의 딸이 어미 없는 자식으로 알려지면 안 돼!”
부태영은 발밑의 계단을 뚫어지라 보며 눈동자가 깊어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번 달 내로, 마음에 들만한 며느리를 찾아올게요.”
부정열은 지팡이를 세게 잡고 차갑게 말했다.
“나를 실망하게 하지 마.”
부태영은 위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침실에서 가장 가까운 아이 방에 들어갔다. 따스한 오렌지색의 불빛 아래, 하얗고 인형처럼 이쁜 아이가 침대 위에 앉아 작은 손에 그림책 한 권을 들고 보고 있었다. 차갑기만 하던 부태영의 눈빛은 순식간에 따뜻하고 부드러워졌다.
“콩이, 아직 안 잤어?”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콩이는 그림책을 집어 던져 스누피 모양의 노란 이불을 젖히고, 맨발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태영은 콩이가 넘어질까 봐 두려워 성큼성큼 다가와 품속으로 뛰어든 아이를 안고 팔에 앉혔다.
콩이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큰 눈은 반달 모양으로 보일 만큼 헤벌쭉 웃으며 물었다.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5일 동안 못 만났는데 아빠도 콩이가 보고 싶었어요?”
부태영은 딸의 하얀 볼에 뽀뽀하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히 보고 싶었지. 하지만 아빠는 돈을 벌어야 콩이한테 간식이랑 우유를 사주지, 안그래?”
콩이는 입을 삐쭉 내밀고, 작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콩이는 밥 안 먹고 간식 안 먹고 우유도 마시지 않아도 돼요. 아빠가 콩이 곁에 오래 있어 주면 안돼요? 유치원의 친구들은 아빠와 엄마가 유치원에 데려다주는데, 콩이만 할아버지가 데려다줘서 기분이 안 좋아요.”
부태영은 딸을 안고 침대 옆에 앉아 콩이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콩이가 밥 안 먹고 우유 마시지 않으면 어떻게 키커? 착하지, 아빠랑 주말에 동물원에 갈까?”
콩이의 까맣고 큰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지도록 웃으며 부태영의 목을 껴안았다.
“아빠, 약속!”
콩이의 작은 발이 부태영의 허벅지를 밟고, 깡충깡충 뛰면서, 작은 손을 내밀어 약속을 요구했다.
부태영은 웃으며 손을 내밀어 콩이의 통통한 새끼손가락에 걸었다.
콩이의 잠옷이 팔 위로 감겨, 작은 팔뚝에 있는 붉은 멍 자국을 본 부태영은 이마를 찌푸리며 콩이의 작은 손을 잡고 물었다.
“누가 너를 괴롭혔어?”
이 얘기를 꺼내자 콩이의 얼굴에 넘쳤던 웃음이 가라앉으며 작은 입을 내밀어 부태영의 품에 안겨 시무룩해졌다.
“매일 할아버지가 유치원에 데려주니까 유치원의 친구들은 콩이의 엄마 아빠를 본적이 없어서 홍이는 콩이가 거짓말한다며 엄마아빠가 없다고 했어요.”
부태영은 찌푸린 이마를 풀며 물었다.
“그래서, 홍이랑 싸웠어?”
콩이는 부태영의 품에서 비비며 답답한 듯 물었다.
“아빠, 엄마 진짜로 화성에 있어요? 언제쯤 엄마를 찾으러 화성에 갈 수 있어요? ”
부태영은 화성이 너무 뜨거워 나중에 크면 엄마를 찾으러 갈 수 있다고 콩이에게 얘기해서 콩이는 얼마나 커야 갈 수 있는지 궁금했다.
부태영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콩이에게 물었다.
“콩이는 정말 엄마를 갖고 싶어?”
콩이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소리로 조곤조곤하게 대답했다.
“오늘 유치원에서 엄마 아빠 그리고 자신을 그리라고 해서 저는 아빠와 콩이를 그렸는데 선생님께 혼났어요. 아빠, 화성에 가서 엄마를 데려와 주면 안 돼요?”
부태영은 콩이의 촉촉해진 눈을 한참 바라보더니 난데없이 서아름의 눈이 생각났다. 그제야 부태영은 오늘 자신한테 작업 걸 던 여자의 눈이 콩이와 조금 닮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태영이 대답을 안 하자 콩이는 목을 껴안고 힘껏 흔들었다.
“엄마를 데려오면 안 돼요?”
더없이 딸을 예뻐하는 부태영은 시계를 보더니, 콩이를 침대에 눕혀 이불을 덮어주고 부드럽게 말했다.
“늦었어. 얼른 자고 내일 아침 아빠가 유치원에 데려다줄게.”
콩이는 부드러운 작은 손으로 부태영의 큰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빠, 그럼 엄마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거에요!”
부태영은 허리를 굽혀 콩이의 이마에 뽀뽀했다.
“콩이. 잘자”
콩이도 부태영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빠도 잘 자요~”
부태영은 아이 방에서 나오더니 비서 서강에게 전화를 걸었다.
“3년전 대리 임신한 여자가 누군지 조사해봐.”
전화를 받은 서강은 어리둥절해 했다. 분명히 3년 전에는 의도치 않은 귀찮은 일이 일어날까 봐 비밀 유지를 엄청나게 잘 했는데 이제 와서 BOSS는 왜 그 여자를 찾으려 했는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