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는 유골함을 힘껏 잡아당겼는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아 흔들리는 눈빛으로 한편에 앉아있는 남자를 바라보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부…부 사장님 이게…”
남자는 차가운 눈빛으로 여자가 안고 있는 유골함을 훑어보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출발해.”
기사는 재빨리 운전석에 앉아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폭우는 점점 더 거세지고, 하늘도 점점 더 어두워지며 차 안의 불빛도 어두웠다. 부태영은 옆에 누워있는 여자를 보니 젖은 긴 검은색 머리는 손바닥만한 창백한 얼굴에 달라붙었고 하얀 팔뚝의 깊게 긁힌 자국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초라하고 가련해 보여 돈 받으려고 일부러 차에 박은 것 같지는 않았다.
안개가 짙은 비 내리는 밤의 미끄러운 도로 때문에 기사는 급커브를 하더니 뒷좌석의 가볍고 부드러운 여인의 몸은 남자의 허벅지에 미끄러졌다. 부태영은 여자의 얼굴이 자신의 슈트 바지 중앙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보더니, 이마를 찌푸리며 얼굴은 더 차가워졌다.
“유기사, 운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거 아니야?”
유기는 겁에 질려 백미러로 뒷좌석의 상황을 보고는 몹시 난감했다며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부 사장님, 너무 죄송합니다. 오늘은 비가 너무 세게 와서…”
부태영은 이쁘고 가느다란 큰 손으로 차갑게 여자의 몸을 옆으로 옮겼다. 여자는 여전히 깨어날 기미가 없이 눈을 감고 있었고 부태영은 생각에 잠긴 듯 여자의 핏기 없는 부드러운 입술을 쳐다보았다.
병원,
깨어난 서아름은 눈을 살짝 뜨더니 실눈으로 희미하게 움직이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아름아, 정신 들었어? 진짜 깜짝 놀랐어!”
여율은 서아름의 대학 동창이자 친한 친구였다.
서아름은 갈라진 입술로 힘없이 오물거리며 말했다.
“율아, 너… 너왜 여기 있어?”
서아름이 품에 안겨있던 아버지의 유골함이 보이지 않아 감정이 격해져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물었다.
“율아, 우리 아버지 유골함 못봤어!”
여율은 서아름을 부추기며 타일렀다.
“여기 있어, 안 버렸어. 아직은 일어나지 마, 의사 선생님께서 넌 지금 몸이 엄청 허약하다고 했어.”
여율이 유골함을 건네자 서아름은 커다란 보물을 안은 듯 온몸의 힘을 다해 힘껏 껴안았다. 여율은 서아름의 집에서 일어난 일을 듣고 화가 나 신영 모녀를 한참 욕하고서는 그녀를 껴안으며 동정해 하며 말했다.
“나는 작은 외삼촌의 갓 태어난 아기를 보러 병원에 오지 않았더라면 너를 만나지 못했을 거야. 우리 외삼촌은 바로 옆방 VIP 유아실에 있어. 필요한 거 있으면 나를 불러. 내가 도울 수 없어도 우리 외삼촌은 도울 수 있을 거야. 너 먼저 푹 자고, 나는 조카를 보고 다시 올게.”
여율은 서아름의 등을 토닥이고, 유골함을 안고 있는 그녀의 이불을 다시 덮어주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아름아, 푹 쉬고, 필요한 거 있으면 나를 불러!”
서아름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고 눈을 감으면 아버지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모습만 생각나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렀다.
옆방 VIP 유아실
여율이 문을 열고 살금살금 들어가자마자 공기에 맴도는 저기압이 느껴졌다.
부정열은 지팡이를 짚고 복잡한 눈빛으로 인큐베이터에 있는 갓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부태영! 네가 이렇게 어이없는 일을 저지를 줄은 몰랐어!”
부정열은 지팡이를 들어 부태영의 다리를 세게 때리고 화난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이 아이의 엄마는?”
부태영은 준엄한 얼굴에 표정 변화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난산해서 죽었어요.”
“…”
부정열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호통을 쳤다.
“나 죽이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니?”
여율은 인큐베이터 앞에 엎드려 부정열의 팔을 잡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외할아버지, 우리 조카 얼마나 귀여운지 보세요. 계속 외삼촌한테 결혼하고 애 낳으라고 재촉하셨잖아요? 지금 이렇게 떡하니 조카가 생겼는데 왜 또 화를 내세요? 화 푸세요.”
“나는 결혼하고 애 낳으라 그랬지, 언제 결혼하기도 전에 느닷없이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그랬어? 인사도 없이 애까지 낳아? 나를 아버지라고 생각은 하는 거니?”
이때 간호사가 문을 밀고 들어오며 예의 있게 말했다.
“부 회장님, 아이 자는데 깨울 수 있으니 가능한 한 작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부정열은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이를 보더니 어쩔 수 없는 듯 한숨을 내쉬며 지팡이를 쥐고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