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10시, 부식 그룹에 들어서자마자 1층 로비에 지원서를 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더욱 이상한 일은 거의 99%가 젊고 예쁜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서아름은 이마를 찌푸리며 오늘이 무슨 날이길래 면접 보러 온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궁금했다.
“실례지만, 다 면접 보러 온 거세요?”
분홍색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서아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대답했다.
“그쪽도 면접 보러 온 거예요? 무슨 비구니 무당 같은 옷을 입으면 부태영이 좋아할 것 같아요?”
“…”
서아름은 무의식적으로 자기의 옷차림을 보았다. 면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션으로 화이트 셔츠에 랩스커트, 심플한 3cm 구두를 신어 세련되면서도 똑똑해 보이기만 하지 전혀 비구니 무당 같지 않았다.
저쪽에서 영사가 걸어와 와서 안내를 하는데,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뒤의 두 눈이 경멸의 뜻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부사장님은 시끄러운 여자를 제일 싫어하니 조용히 하세요, 줄을 나뉘어 서서 차례대로 저랑 엘리베이터를 타고 606층에 가서 면접을 보면 됩니다.”
서아름은 상황을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는데, 뒤에 서 있던 여자는 급하게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밀었다.
“저기요, 안 가세요? 안 가시면 좀 비키죠?”
영사는 이마를 찌푸리고 서아름과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밀긴 왜 밀어요? 66층에 올라간다고 해서 면접에 성공할 줄 알아요?”
가는 내내 분위기가 기괴했고 서아름은 꽃단장한 여자들 사이에 서서 아트 디자인 팀 면접을 보는데 소개팅하는 것처럼 치장해야 하나라고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엘리베이터에서 각기 다른 메이크업을 한 여러 스타일의 미녀들은 지워지지도 않은 메이크업을 계속 덧칠했다. 엘리베이터가 66층에 도착했을 때, 드디어 문이 열리고 서아름은 또 밀려나 사람들을 따라 면접실로 갔다. 작은 투명 유리창을 통해 창 안을 확인해 보니 세 명의 심사위원, 그리고 두 명의 비서가 그들 곁에 있는데, 이 라인업으로만 해도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서아름은 부식 그룹이 예술 디자인 팀의 작은 디자이너를 뽑는 것도 이렇게 엄격한데 부장이나 본 부장을 뽑을 때는 얼마나 더 어려운 심사를 거칠지를 생각했다.
서아름 뒤에 앉아있는 몇몇 여자들은 긴장해 손에 땀을 흘리며 수군거렸다.
“부사장님이 상경대학교에서 졸업했다고 들었는데 나는 일반 대학 졸업해서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 어떡하지?”
“학력이 뭐가 중요해, 남자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여자의 얼굴과 몸매, 그리고… 잠자리 스킬이지…”
마지막 단어를 아주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으나 서아름은 똑똑히 들려 작게 웃으며 아마도 저 두 사람은 디자이너 면접을 지원한 게 아니라 여자친구를 지원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무실의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그 안에서 지방시 검정 치마를 입은 여자가 걸어 나왔는데, 면접을 잘 봤는지 예쁜 얼굴에 득의양양해 하며, 팔짱을 끼고 면접을 기다리는 여자들에게 오만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설마 이쁘고 몸매만 좋으면 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부사장님은 보아왔던 여자가 많아 너희 같은 여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아. 부사장님은 나처럼 가문 좋고 학력 높고 머리까지 좋은 여자를 좋아하니까 미리 말해주자면 주제 파악을 잘 해둬!”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여비서가 사무실에서 나오며 딱딱하고 공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분.”
서아름은 자신의 차례가 되어 흠칫하더니 크게 숨 한번 쉬고 이력서를 들고 여유롭게 사무실에 들어섰다.
세 명의 심사위원 중 중앙에 앉은 금테 안경을 쓴 점잖고 예쁘게 생긴 남자가 서아름의 이력서를 힐끗 보더니 먼저 물었다.
“서아름? 신체 사이즈, 몸무게, 키, 신체 상태 및 가족 상태가 어떻게 되는지 자기소개하세요.”
이 말을 들은 서아름은 이마를 찌푸리더니 청아하고 수려한 얼굴에 잠깐 불만이 스쳤다.
“부식 그룹에서는 앞에서는 여직원의 면접을 보고 뒤에서는 이런 비열한 짓을 하는 거예요? 저는 부사장님이 정직한 상인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냥 다 쇼네요. 죄송하지만, 저는 면접을 보지 않겠습니다. ”
세 명의 심사위원은 서로 쳐다보면서 화가 잔뜩 난 서아름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겼다.
“서아름씨는 미래 부사장님 아내의 면접을 지원했는데 당연히 우리 부사장님이 서아름씨의 기본 조건을 확실히 알 권리가 있지 않을까요? 안 그러면 우리 부 사장님은 아무나하고 결혼 할 수 있겠네요.”
“미래 사모님?”
“아무래도 제가 잘못 찾은 것…”
서아름의 해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면접시험이 중단되었다. 들어온 사람은 부태영의 비서 서강이었다. 서강은 중간에 앉은 심사위원 쪽으로 걸어가 둘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 사장님, 부 사장님이 서아름 씨를 직접 면접 보시겠답니다.”
유석은 금테 안경을 올리며 재밌는 듯 씩 웃었다.
“나는 부태영이 여자를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취향이었어?”
유석은 이쪽에 서 있는 서아름을 훑어보더니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서강은 서아름에게 걸어가 예의 바르게 말했다.
“서아름씨,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
검은색 중역 의자에 앉아 있는 부태영은 차가운 표정으로 노트북 모니터에 일시 정지된 화면을 응시했고 그 영상은 방금 서아름이 옆방에서 면접을 보던 CCTV였다. 부태영은 이른 아침에 보내온 자료와 사진을 쥐고 한 여자가 분만대에서 출산하는 흐릿한 사진 위에 날카롭게 시선을 꽂았다. 만약, 3년 전에 대리 임신한 여자가 정말로
서아름 이라면…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서강이 서아름을 데리고 들어왔다.
“BOSS, 서아름씨 오셨습니다.”
“먼저 나가 있어.”
“네.”
서아름은 얼떨결에 이곳으로 끌려와 서강이 나가자,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부 사장님,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를 면접 지원하러 왔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요.”
부태영은 손을 들어 노트북을 덮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조롱하듯 서아름을 보며 말했다.
“방금 옆방에서 나를 정직하지 않고 쇼를 한다고 했는데, 그럼 어제 연회장에서 사람들 다 보는 앞에 꼬시는 건 뭐지? 쇼를 하는 건 내가 아닌 것 같은데.”
서아름의 난처한 얼굴이 빨개져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저는 그저 부사장님이 심연로의 철거계획을 취소하도록 부탁드리려 했는데 만약 부사장님을 오해 삼게 했다면 저의 실례인 것 같습니다.”
부태영은 일어서며 긴 다리로 사무실 안의 거대한 어항 쪽으로 걸어가, 느릿느릿 하게 어항 속에 먹이를 던지며 말했다.
“철거계획을 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서씨 가문 별장은 아예 의논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
서아름은 기뻐하며 급히 되물었다.
“서씨 가문 별장을 보존해 준다는 말씀이신가요?”
부태영은 손에 쥐고 있던 먹이를 놓더니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맑고 좋은 남자의 숨결이 가까이 다가오자 서아름은 한 발짝 물러섰지만, 한순간 잘록한 허리가 큰 손에 꽉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