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너무 무서워요! 어디 있어요? 아직 살아있으면 빨리 돌아와요. 그 사람들이 나와 아빠, 엄마를 죽이려고 해요, 아빠, 엄마가 더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제발요, 오빠. 빨리 돌아와요…”
외국에서 막 돌아와서 5년 전 사용하던 휴대폰 번호를 찾은 강우영이 받은 전화였다.
여동생 강연우의 겁에 질린 흐느낌 소리를 들은 그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연우야! 집에 무슨 일 생겼어?!”
“망할 것! 네 년이 내 휴대폰을 훔쳤네, 씨발, 죽여버릴 거야!”
전화기 너머에서 남자의 거친 욕설이 들리더니 ‘짝! 짝!’ 하는 뺨 때리는 소리도 들렸다. 이어 귀를 찢는 듯한 강연우의 비명소리와 용서를 구하는 절망적인 소리가 들렸다.
“악! 안 돼요! 안 돼!! 오빠! 살려줘요! 제발 살려줘요!!”
“빠득!”
강우영은 손가락에 힘을 꽉 주어 휴대폰 화면을 박살냈다.
“연우야!”
그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길게 울부짖자 몸에서 무서운 살기가 하늘을 찔렀고 주변 반경 몇 미터 이내의 온도가 급격하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운전해! 빨리 운전해!! 빨리! 빨리!!”
그의 성난 외침 소리는 운전석에 있던 여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짧은 단발에 늠름하고 씩씩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여자는 절대 남자에게 뒤지지 않을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강우영의 중요한 조수이자 다크 나이트 조직의 재무 및 정보 총괄, 청하였다.
강우영을 따라 5년 동안 해외에서 싸운 청하는 강우영이 눈에 핏발을 세우면서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지금처럼 두터운 살기를 드러내는 건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녀가 단번에 악셀을 확 밟자 차가 쏜살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요란한 엔진소리가 들리고 스피드도 너무 빨랐던 탓에 차창 밖의 풍경이 흐릿하게 보였지만 강우영은 여전히 느리게만 느껴졌다.
“속도 더 올려! 더 빨리!!”
이를 세게 악문 그의 온 몸 뼈마디에서 으드득하는 소리가 났고 가슴에서는 피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5년 전 그는 사업이 한창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좋은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였던 고우빈에게 배신을 당했다.
고우빈은 함정을 파서 그가 무고한 여자를 덮치게 한 뒤 정의라는 명의로 사람을 보내 그를 깊은 강에 던져버렸다. 다행히 명줄이 세서 죽지 않고 살아서 해외로 도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피를 흘리며 싸웠다. 그는 깊은 원한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품은 채 수천 수백 번 생사를 넘나들며 성공적으로 다크 나이트 조직을 세계 정상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그 역시 전 세계 각 국과 조직들이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다크 나이트의 제왕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다크 나이트 제왕인 그의 여동생과 부모님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니!
“오빠, 나 너무 두려워요… 오빠, 제발요. 빨리 돌아와요… 오빠, 살려줘요…”
여동생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한 번 또 한 번 강우영의 귓가에 울려퍼졌다. 강우영은 이제 18살 되는 여동생이 천진난만한 얼굴에 피가 낭자한 채 덜덜 떨면서 손을 내밀고 도움을 구걸하는 모습을 마치 보는 것만 같았다.
마음속에서 자책과 양심의 가책이 파도처럼 밀려와 강우영은 거의 광기에 사로잡혔다.
강씨 본가 안, 강씨 내외는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담 모퉁이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목에는 두꺼운 쇠사슬이 묶여 있었다. 두 사람 주변에 가득 쌓인 분노가 심각한 악취를 뿜어내고 있어 적지 않은 시일 갇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똑같이 처참한 모습의 강연우도 옆에 있었는데 나쁜 마음을 품은 세 명의 남자들이 그녀를 바닥에 누르고 훑어보고 있었다.
사람들 맞은편의 대문과 가까운 곳에 댄디한 모습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코를 부여잡고 강씨 내외와 얘기를 했다.
“이봐, 두 늙은이. 개가 된 기분 아직 다 못 느꼈어? 내가 기어이 꽃 같은 당신의 딸을 망쳐야만 그만두겠어?”
고개를 번쩍 든 강 아버지는 눈이 튀어나올 듯했다.
“감히 내 딸을 건드리면 내가 귀신이 되어서도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댄디한 남자가 껄껄 웃었다.
“내가 놀랄 것 같아?! 당신 딸을 망치고 싶지 않으면 빨리 고개나 끄덕여! 더이상 강우영을 위해 진정서를 넣지 않고 그의 사망증명서를 신청하겠다고 대답만 해. 그래서 송지유가 그와 이혼할 수 있으면 내가 바로 당신들 풀어줄게.”
5년 전 한 식당에서 밥을 먹던 주건후는 강우영과 송지유 부부를 만났다. 송지유를 보고 흑심을 품은 주건후는 술기운을 빌려 사람들 앞에서 송지유를 희롱하다 강우영에게 맞아 출산능력을 상실했다.
주씨 가문이 권력과 힘이 강대했지만 그때는 강우영도 영남에서 명성과 지위가 만만치 않았기에 복수에 성공하지 못했다.
수모를 당한 주건후는 앙심을 품고 그 후에 여러 번이나 송지유를 찾아와서 밝은 미래로 그녀를 유혹했다. 유혹을 견디지 못한 송지유는 결국 그와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두 사람은 한통속이 되어 고우빈을 꼬드기고 협박해서 강우영을 배신하게 하여 강우영의 재산을 빼앗았다.
아들이 괴롭힘을 당해서 증발이라도 하듯 사라졌다는 걸 알고 있는 강씨 내외는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5년 동안 쉬지 않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진정서를 제출하며 아들을 위해 정의를 되찾아주려 했다.
최근에는 서울까지 가서 진정서를 제출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일이 커져서 전에 했던 일이 드러날까 두려웠던 주건후는 강씨 가문 세 식구를 잡아 놓고 모질게 괴롭혔던 것이다.
“우리 오빠 죽지 않았어요! 우리가 죽는 한이 있어도 당신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단념해요!”
강연우는 죽을지 언정 굴복하지 않았고 강씨 내외 역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모진 고초를 당해 사람 꼴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타협하지 않았다.
비록 강우영이 실종된 지 5년이나 됐지만 그들은 강우영이 아직 살아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정말 죽었다 해도 강우영이 큰 억울함을 품은 채 눈을 감지 못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 맷집이 좋다 이거지? 대체 얼마나 버티는지 두고 볼 거야!”
주건후는 차갑게 웃으며 옆에 있는 부하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때려, 병신이 되도록 때려.”
험상궂은 표정의 건장한 세 남자는 왜소한 강연우를 중간으로 걷어찼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주먹질과 발길질이 비바람처럼 몰아쳤다.
불쌍한 소녀는 마치 학대를 당한 강아지처럼 울부짖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외침소리는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것 같았다.
강 아버지의 부릅뜬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피가 터져나올 것 같았다.
“짐승만도 못한 놈아! 이런 짓을 저지르고 천벌 받을까 두렵지도 않아?!”
주건후가 껄껄 웃었다.
“천벌? 내가 당신 아들의 와이프를 갖고 놀고 당신 아들을 죽이기까지 했는데 천벌 받았어? 당신 아들은 시체까지 다 썩었겠지만 나는 아무 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점점 잘 지내고 있잖아. 하늘은 그저 당신들 같은 사회 밑바닥 천민들에게나 벌을 내리는 거야!”
그는 말을 하며 한숨을 가볍게 쉬었다.
“강우영이 이곳에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야. 그가 직접 두 눈으로 이 모든 것을 봤으면 더 대박이었을 텐데. 그래야만 이 도련님의 미움을 사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잘못인지 알 텐데 말이야. 어이!”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저희가 이곳에서 지낸지도 벌써 일주일이 됩니다. 저희를 눈치챈 이웃이 있는 것 같은데 만약 신고라도 하면…”
주건후는 개의치 않는 듯 손을 저었다.
“별일 아니야, 내가 해결할 수 있어. 나의 힘과 권력이면 개미떼 같은 거지 천민들을 마음대로 손볼 수 있는 거 아니겠어? 됐어, 이곳은 너희들에게 맡길 테니 빨리 처리해.”
두 명의 사내가 강연우를 들어올렸다. 소녀는 이미 숨이 간들간들한 채 피범벅이 되어 머리를 축 늘어뜨리고 죽음에 임박한 듯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두머리 사내가 비수 한 자루를 꺼내서 손 위에 놓고 살펴보았다.
“먼저 얼굴 살을 도려낼까, 아니면 손바닥 살을 도려낼까? 얘들아, 너희들 생각은 어때?”
더한 고통이 닥칠 거라는 걸 들은 강연우는 절망감에 눈물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오빠! 어디 있는 거야?!’
강씨 내외도 소리를 내어 통곡하며 분노하여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짐승만도 못한 놈들아! 너희들이 그러고도 인간이야?! 내가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라도 절대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들이 격하게 반응할 수록 주건후의 부하들은 되려 더욱 흥분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우두머리 사내가 말했다.
“살아있는 당신들도 함부로 괴롭힐 수 있는데 죽은 당신들을 두려워 할 것 같아? 딸이 못 볼 꼴 당하는 걸 원하지 않으면 얌전히 우리 사장님 요구를 받아들여!”
그는 말을 하며 강연우의 손을 확 잡고 그녀의 엄지 손가락을 조준하여 비수를 세게 꽂았다.
“악!!!”
강연우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들썩이자 두 명의 사내가 바로 그녀를 꽉 제압했다.
우두머리 사내는 비수를 돌려 강연우의 엄지 손톱을 그대로 도려냈다.
“악!악!!!”
강연우는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비명소리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처절했다.
“연우야! 연우야!!”
강씨 내외는 더없이 처량하고 절망적으로 울부짖으며 통곡했다.
이미 고통에 정신이 흐릿해진 강연우는 입가에서 진득한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더이상 이런 모진 고통을 버티기 힘들었다.
‘오빠, 우리는 그만 다음 생에 만날 수밖에 없겠어.’
그녀는 이를 세게 깨물었다. 혀를 깨물고 자결한 것이다.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자 세 명의 사내는 깜짝 놀라서 순간 강연우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녀가 꼬꾸라진 곳은 이내 피로 흥건해졌고 그녀의 몸은 가볍게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우두머리는 기절해버린 강연우를 툭 차며 혀를 끌끌 찼다.
“이렇게 죽은 거야? 재미도 없네.”
이어 더는 울부짖지도 못하는 강씨 내외에게 말했다.
“봤지? 이게 다 늙고 고집스러운 당신들 때문이야! 이제는 내가 당신 딸을 능지처참할 거야. 여전히 협조하지 않는다면, 헤헤! 당신들 딸은 시체조차 온전치 못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