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등불이 훤히 켜져 있는 주씨 가문의 별장이 보였다. 주차장 안에 세워져 있는 차량들은 하나같이 특수 번호판이거나 수억 원을 호가하는 럭셔리 차량들이었다.
주정호는 정치권의 고위인사었기에 연회를 너무 거하게 벌일 수 없었다. 게다가 주건후와 송지유가 약혼하는 일도 임시로 결정된 것이었기에 초대한 사람이 너무 많지 않았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레벨은 아주 최상급이었다.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남 상류사회에서 이름을 내노라 하는 고위층이거나 재벌들이었다.
인맥을 넓히고자 관계를 통해 초대장을 얻어서 온 사람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각자의 영역에서 명성을 날린 사람들이었다.
강우영 일행 세 사람이 문 앞에 도착하자 반듯한 정장차림의 경호원 두 명이 그들을 막아섰다.
“죄송하지만 초대장을 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우영은 고개를 저었다.
“난 초대장이 없어요.”
두 경호원은 서로 마주보더니 이내 무시하듯 쳐다봤다.
한 사람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초대장이 없으면 입장할 수 없으니 그만 돌아가세요.”
그에게 대꾸하기조차 귀찮았던 강우영은 동진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동진은 바로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손을 쓰려 했다.
바로 그때 옆에서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이 분은 우리의 강 대표님이 아니십니까?”
강우영이 고개를 돌리자 머리에 기름칠을 한 남자가 2남1녀와 함께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강우영은 머리에 기름칠을 한 남자의 얼굴이 왠지 낯익었지만 도대체 누구인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기름 머리 남자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강 대표님은 역시 바쁘신 분이라 쉽게 잊으시네요, 저는 전체 회사 사람들 앞에서 공개 비판을 받고 잘린 마케팅팀 차장 박훈이에요. 기억나세요?”
강우영의 흐릿하던 기억이 순간 또렷해졌다.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이유는 박훈이 실적을 내기 위해 큰 고객의 환심을 사려 했고 그 때문에 부하 여직원더러 술자리를 함께 하고 심지어 잠자리도 가지라고 강요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여직원 한 명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하마터면 투신 자살을 할 뻔했다.
지금 그의 모습을 보니 나름 잘 나가는 것 같았다. 이건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여자들을 망치면서 얻은 것일지 몰랐다. 강우영은 그때 그를 자르기만 한 것이 후회되었다. 응당 두 다리를 부러뜨리고 다시 잘랐어야 했다.
박훈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듣자 하니 강 대표님은 회사의 권력 다툼에서 패배해서 거의 증발하다시피 사라졌다던데, 이제 와서 재기하려고 다시 돌아온 거예요? 아이고, 제 기억에 강 대표님은 기회를 틈타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기회를 빌어 주 부총장님에게 잘 보이려고 왔어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동정한다는 표정으로 말하던 박훈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초대장도 없다니 너무 안쓰러운 거 아니에요? 쯧쯧! 됐어요, 됐어. 어차피 같이 일을 했던 사이고 강 대표님이 불쌍한 걸 봐서 내가 데리고 들어갈게요.”
사실 지금 박훈의 지위로는 주씨 가문의 초대장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었다. 그가 오늘 밤 연회의 초대장을 얻게 된 것도 애를 적잖이 써서 애걸복걸 빌어서야 겨우 얻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강우영 앞에서는 당연히 자신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자랑해서 강우영의 체면을 짓밟아야 했다.
그와 동행한 여자 파트너는 설쳐대는 그의 소인배 같은 모습에 혐오감을 드러냈다.
하도원이라고 하는 그녀는 오늘 친구에게 끌려 억지로 온 것이었다. 전에 강우영이 떠들썩하게 박훈을 잘랐던 일을 알고 있었던 그녀는 강우영의 원칙과 박력에 탄복했다.
하지만 너무나 초라해져서 박훈의 조롱에도 전혀 반격할 힘이 없는 지금의 그를 보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 사회는 정말 착한 사람이 벌을 받는 세상이었다.
그때 강우영이 차갑게 말했다.
“너따위가 필요할 것 같아?”
박훈은 놀라서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이내 웃었다.
“어쭈, 이 꼴이 돼서도 자존심만 세우네? 대체 어디서 이런 근거도 없는 자존심을 세우는지 모르겠어!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오늘 주 도련님이 당신 전처와 약혼을 한다지? 와이프가 다른 남자랑 도망을 갔는데 여기서 무슨 잘난 척하고 있어? 응? 나 같으면 얼굴 들고 다니기 부끄럽겠어!”
말을 마치기 무섭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박훈은 어느새 뺨을 맞고 말았다.
박훈은 크게 화를 내려 얼굴을 감싸고 소리를 질렀다.
“씨발…”
강우영이 또 따귀를 날렸다.
“다시 욕해 봐?”
박훈은 강우영을 매섭게 노려볼 뿐 화가 나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주씨 가문의 두 경호원이 달려와서 윽박질렀다.
“담도 크지!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요!”
박훈이 초대장을 높이 들고 소리 질렀다.
“저 사람들이 내 초대장을 빼앗으려고 해요!”
두 경호원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당장이라도 전기충격기를 뽑아 들려고 했다.
동진이 두 손을 뻗어 마치 병아리 잡듯 두 사람의 목을 움켜쥐고 서로 부딪혔다. 두 사람은 곤죽이 된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강우영은 주변 사람들의 놀란 시선을 무시한 채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너무 멋있어.”
하도원은 강우영의 뒷모습을 보고 푹 빠져서 말했다.
“멋있긴 개뿔! 주씨 가문 사람들이 함부로 때려도 되는 사람이야? 감히 이런 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이따가 틀림없이 볼성 사납게 죽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