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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제대로 체면이 깎이다!

  •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등불이 훤히 켜져 있는 주씨 가문의 별장이 보였다. 주차장 안에 세워져 있는 차량들은 하나같이 특수 번호판이거나 수억 원을 호가하는 럭셔리 차량들이었다.
  • 주정호는 정치권의 고위인사었기에 연회를 너무 거하게 벌일 수 없었다. 게다가 주건후와 송지유가 약혼하는 일도 임시로 결정된 것이었기에 초대한 사람이 너무 많지 않았다.
  •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레벨은 아주 최상급이었다.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남 상류사회에서 이름을 내노라 하는 고위층이거나 재벌들이었다.
  • 인맥을 넓히고자 관계를 통해 초대장을 얻어서 온 사람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각자의 영역에서 명성을 날린 사람들이었다.
  • 강우영 일행 세 사람이 문 앞에 도착하자 반듯한 정장차림의 경호원 두 명이 그들을 막아섰다.
  • “죄송하지만 초대장을 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강우영은 고개를 저었다.
  • “난 초대장이 없어요.”
  • 두 경호원은 서로 마주보더니 이내 무시하듯 쳐다봤다.
  • 한 사람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 “죄송합니다, 초대장이 없으면 입장할 수 없으니 그만 돌아가세요.”
  • 그에게 대꾸하기조차 귀찮았던 강우영은 동진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동진은 바로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손을 쓰려 했다.
  • 바로 그때 옆에서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라! 이 분은 우리의 강 대표님이 아니십니까?”
  • 강우영이 고개를 돌리자 머리에 기름칠을 한 남자가 2남1녀와 함께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 강우영은 머리에 기름칠을 한 남자의 얼굴이 왠지 낯익었지만 도대체 누구인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 기름 머리 남자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 “강 대표님은 역시 바쁘신 분이라 쉽게 잊으시네요, 저는 전체 회사 사람들 앞에서 공개 비판을 받고 잘린 마케팅팀 차장 박훈이에요. 기억나세요?”
  • 강우영의 흐릿하던 기억이 순간 또렷해졌다.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다.
  • 그가 기억하는 이유는 박훈이 실적을 내기 위해 큰 고객의 환심을 사려 했고 그 때문에 부하 여직원더러 술자리를 함께 하고 심지어 잠자리도 가지라고 강요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여직원 한 명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하마터면 투신 자살을 할 뻔했다.
  • 지금 그의 모습을 보니 나름 잘 나가는 것 같았다. 이건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여자들을 망치면서 얻은 것일지 몰랐다. 강우영은 그때 그를 자르기만 한 것이 후회되었다. 응당 두 다리를 부러뜨리고 다시 잘랐어야 했다.
  • 박훈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 “듣자 하니 강 대표님은 회사의 권력 다툼에서 패배해서 거의 증발하다시피 사라졌다던데, 이제 와서 재기하려고 다시 돌아온 거예요? 아이고, 제 기억에 강 대표님은 기회를 틈타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기회를 빌어 주 부총장님에게 잘 보이려고 왔어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 동정한다는 표정으로 말하던 박훈은 고개를 저었다.
  • “그런데 초대장도 없다니 너무 안쓰러운 거 아니에요? 쯧쯧! 됐어요, 됐어. 어차피 같이 일을 했던 사이고 강 대표님이 불쌍한 걸 봐서 내가 데리고 들어갈게요.”
  • 사실 지금 박훈의 지위로는 주씨 가문의 초대장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었다. 그가 오늘 밤 연회의 초대장을 얻게 된 것도 애를 적잖이 써서 애걸복걸 빌어서야 겨우 얻게 된 것이었다.
  • 하지만 강우영 앞에서는 당연히 자신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자랑해서 강우영의 체면을 짓밟아야 했다.
  • 그와 동행한 여자 파트너는 설쳐대는 그의 소인배 같은 모습에 혐오감을 드러냈다.
  • 하도원이라고 하는 그녀는 오늘 친구에게 끌려 억지로 온 것이었다. 전에 강우영이 떠들썩하게 박훈을 잘랐던 일을 알고 있었던 그녀는 강우영의 원칙과 박력에 탄복했다.
  • 하지만 너무나 초라해져서 박훈의 조롱에도 전혀 반격할 힘이 없는 지금의 그를 보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 지금 사회는 정말 착한 사람이 벌을 받는 세상이었다.
  • 그때 강우영이 차갑게 말했다.
  • “너따위가 필요할 것 같아?”
  • 박훈은 놀라서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이내 웃었다.
  • “어쭈, 이 꼴이 돼서도 자존심만 세우네? 대체 어디서 이런 근거도 없는 자존심을 세우는지 모르겠어!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오늘 주 도련님이 당신 전처와 약혼을 한다지? 와이프가 다른 남자랑 도망을 갔는데 여기서 무슨 잘난 척하고 있어? 응? 나 같으면 얼굴 들고 다니기 부끄럽겠어!”
  • 말을 마치기 무섭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박훈은 어느새 뺨을 맞고 말았다.
  • 박훈은 크게 화를 내려 얼굴을 감싸고 소리를 질렀다.
  • “씨발…”
  • 강우영이 또 따귀를 날렸다.
  • “다시 욕해 봐?”
  • 박훈은 강우영을 매섭게 노려볼 뿐 화가 나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주씨 가문의 두 경호원이 달려와서 윽박질렀다.
  • “담도 크지!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요!”
  • 박훈이 초대장을 높이 들고 소리 질렀다.
  • “저 사람들이 내 초대장을 빼앗으려고 해요!”
  • 두 경호원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당장이라도 전기충격기를 뽑아 들려고 했다.
  • 동진이 두 손을 뻗어 마치 병아리 잡듯 두 사람의 목을 움켜쥐고 서로 부딪혔다. 두 사람은 곤죽이 된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강우영은 주변 사람들의 놀란 시선을 무시한 채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 “너무 멋있어.”
  • 하도원은 강우영의 뒷모습을 보고 푹 빠져서 말했다.
  • “멋있긴 개뿔! 주씨 가문 사람들이 함부로 때려도 되는 사람이야? 감히 이런 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이따가 틀림없이 볼성 사납게 죽을 거야!”
  • 박훈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 이어 그는 주씨 가문 사람에게 고자질하러 별장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