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진실을 알리는 메시지
- 모든 게 확연해졌다.
- 사랑하는 남자와 결실을 맺었음에도 담담하기만 한 심하연.
- 애 아빠가 될 사람에게 알리려고도 하지 않는 심하연.
- 그 모든 게 그제서야 주소희는 납득이 되었다.
- 하지만 무슨 말을 해 줘야 친구에게 도움이 될 지를 몰랐고 심하연 역시 더 할 말이 없어 보였다.
- 그렇게, 한동안의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 심하연과 허물없는 친구로 오랫동안 알고 지내며 사교 활동에 종종 심하연과 같이 나가곤 했던 주소희인지라 진우현과 강유라에 대한 일을 잘 알고있었다.
- 모두가 아름다운 인연이라고 칭찬들을 하지만 심하연의 절친인 주소희의 시점에서 그 둘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 친구가 걱정되고 안쓰럽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 둘에 대한 미움만 커져갔다.
- 아랫입술을 깨물고 씩씩거리던 주소희가 입을 열었다.
- “그게 뭐. 강유라가 돌아왔든 말든 뭔 상관이야. 그 둘이 애인 사이도 아니고, 그 사람이랑 결혼하고 애까지 가진 건 넌데. 설마 진우현이 자기 애를 지우라고 할 정도로 모진 사람이겠어.”
- 묵묵히 듣던 심하연이 고개를 들었다.
- “그런 사람 맞을걸.”
- 그 말에 주소희가 펄쩍 뛰었다.
- “뭐라고? 그게 무슨…”
- “지우라고 할 거야.”
- “안 알려줬다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 “떠보긴 했어. 애 가졌으면 어떡할거냐고.”
- “아이고 답답아.”
- 주소희는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 “떠보기만 하면 뭐 해. 다 털어놓고 부딪쳐 봐야 알지. 지금 당장 문자해. 임신했다고!”
- “……”
- 심하연이 잠자코 있자 주소희가 한 마디 보탰다.
- “두려워서 그래? 아무리 그래도 남편인데 한 번 믿어 보라니까.”
- “안 그래도 돼.”
- 심하연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 마디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가자. 계산은 내가 할게.”
- 말릴 새도 없이 카운터로 다가가 계산하고 카페 문을 나섰다.
- 부랴부랴 뒤따라 나온 주소희가 심하연의 앞을 막아섰다.
- “심하연!”
- 심하연이 그 자리에 멈췄다.
- “네가 진우현에게 마음이 없었다면 나도 이러진 않아. 하지만!”
- “누가 봐도 그 인간 좋아하는 티가 팍팍 나는데. 그토록 오랫동안 좋아하다가, 결혼까지 하고 애까지 가졌는데!”
- “강유라 그 X이 뭐라고 네가 애까지 포기해야 하는데? 왜 그 X 좋은 노릇만 하려고 해?”
- “나는…”
- 심하연은 입을 열었지만 말이 더 나오지 않았다.
- 주소희가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 물었다.
- “몇 가지만 더 묻자.”
- “뭐… 뭐를?”
- “진우현이 알까 봐 두려운 거지?”
- 심하연이 머리를 끄덕였다.
- “진우현이 알았다 해도 애를 지우게 할 거라는 생각인 거지?”
- 심하연이 잠시 머뭇거렸다가 다시 머리를 끄덕였다.
- “강유라가 돌아왔으니 진우현이 그 여자한테 갈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 그 한 마디에 갑자기 가슴이 저릿해왔지만 심하연은 꾹 참고 머리를 끄덕였다.
- “그걸 지켜보고만 있을 거야?”
- “!”
- “잘하면 진우현도 애도 다 지켜낼 수 있고, 지우든 안 지우든 진우현은 강유라한테 갈 판인데 두려울 게 뭐야.”
- “하지만…”
- 떨리던 심하연의 입술이 열렸다.
- “그가 모른다면, 헤어지더라도 좋은 사이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 주소희는 할 말을 잃었다.
- 하… 정말 진우현을 끔찍이도 좋아하는구나, 심하연.
- 한참 뒤에야 주소희는 심하연의 손을 꼭 잡으며 입을 열었다.
- “좋은 사이면 뭐 해, 남편이었던 사람이 남 편이 되는데. 그 사람만 헤아리지 말고 네 자신의 행복도 좀 생각해 봐. 진우현이랑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 놓치고 싶어? 기회는 있을 때 스스로 잡아야 하는 거야.”
- 심하연은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 가짜 결혼이었는데.
- 비록 자신의 마음은 진짜였지만.
- 진 씨 가문 노부인인 한애순 여사가 안 계셨더라면 결혼은 꿈도 못 꾸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 “다시 잘 생각해 봐. 결혼과 임신은 한 사람의 마음이 바뀔 만큼 진짜 큰 일이거든.”
- “어렸을 때무터 한결같이 강유라를 기다려 온 진우현이 너한테 한 톨의 애정도 없었다면 과연 지금껏 부부로 같이 지내왔을까?”
- 주소희의 마지막 한 마디가 심하연의 귀에 벼락같이 꽂혔다.
- ‘맞아. 다 가짜라기엔 날 너무 잘 대해줬어. 애까지 가졌잖아.’
- 하늘에서 동아줄 내려오듯, 벼랑 끝에 선 것만 같았던 심하연에게 희망의 끈이 드리워졌다.
- “소희야, 고마워.”
- 심하연의 눈이 반짝 빛났다.
- “후후, 이제야 잘 알아들은 것 같네.”
- 둘은 마주 보며 웃었다.
- 집으로 돌아온 심하연에게 집사가 걱정 어린 얼굴로 다가왔다.
- “사모님, 채 낫지도 않으신 몸으로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 “기분 전환도 좀 할 겸 친구 만나고 오는 길이에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 집사는 심하연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어보고는, 이상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 “별 말씀을요. 얼른 올라가 쉬시죠.”
- 방으로 들어간 심하연은 문을 닫아 잠갔다.
- 조용한 방 안.
- “네 자신의 행복도 좀 생각해 봐.”
- 주소희의 말이 귓가에 생생했다.
- ‘그래, 소희 말이 맞아. 뱃속 아기를, 내 행복을 위해서라도 용기를 내 봐야지. 용기는 예전에도 내 봤는데, 까짓 거…’
- 순간, 뇌리를 스치는 한 마디가 있었다.
- 성인식을 갓 마친 그녀가 고백하러 달려갔을 때 들은 그 한 마디.
- 자신의 옆자리는 영원히 강유라 것이라고 말하던 그 한 마디.
- 영원히가 무슨 뜻인지도 잘 알고, 진우현이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도 잘 알았다.
- 하지만…
- 다잡은 마음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 희망이 부풀어 오르다가 헛된 욕심으로 터져버릴 것만 같아 두려웠다.
- 더군다나, 진우현의 새카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 정도의 용기는 없었다.
- 한참을 고민하던 심하연은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 카톡을 열어 ‘내 남편’을 찾았다.
- 가슴이 쿵쾅쿵쾅 나대기 시작했다.
- 떨리는 손으로 한 자 한 자 누르기 시작했다.
- 그러다가, 모조리 지워버리고는 휴대폰 연락처를 열었다.
- 문득 평소에는 톡으로만 문자를 주고 받던 진우현이, 메시지로 보내면 좀 더 눈여겨 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 연락처 상단에서 역시 ‘내 남편’이라고 표기된 전화 번호를 찾아, 메시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 “나 임신했어.”
- 다 적은 뒤, 몇 번이고 확인한 심하연은 눈을 꼭 감은 채 발송 버튼을 눌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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