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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맘 프로젝트

싱글맘 프로젝트

효월

Last update: 2024-04-27

제1화 임신을 해버렸다

  • 강남 영인병원.
  • “축하드려요. 임신입니다. 태아는 아주 건강한 상태예요.”
  • 심하연은 다소 멍한 표정으로 손안의 진단서를 움켜쥐었다.
  • ‘임신?’
  • 얼떨떨했던 하연은 검사 결과가 믿어지지 않았다.
  • “앞으로 꼬박꼬박 정기검진받으러 오셔야 해요. 아이 아빠는 어디 계시죠? 당부드릴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아이 아빠더러 들어오라고 하시겠어요?”
  • 하연은 의사의 목소리에 곧 정신을 차리고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 “남편은 오늘같이 안 왔어요.”
  • “저런, 아무리 바빠도 와이프와 아이 곁을 지켜야 하는 건데.”
  • 병원을 나설 때쯤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연은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 ‘여기에 조그만 새 생명이 생겼다는 거네. 나와 진우현의 아이가…’
  • 그 순간 그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확인해 보니 남편인 우현에게서 문자가 와있었다.
  • “비 오네. 여기 주소로 우산 좀 가져다줘.”
  • 하연은 주소를 확인했다. XX 클럽.
  • ‘여긴 뭐 하는 곳이야? 미팅 있는 거 아니었어?’
  • 하지만 하연은 더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진 씨 가문의 운전기사에게 자신을 그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 “먼저 돌아가세요.”
  • “나오실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어요, 사모님?”
  • 잠시 생각하던 하연은 고개를 저었다.
  • “괜찮아요. 이따가 그 사람이랑 같이 돌아가면 돼요.”
  • 그녀는 우현을 찾아온 김에 기다렸다가 그와 함께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 그녀의 말에 진 씨 가문의 운전기사인 전 실장은 이내 차를 몰고 떠나갔다. 하지만 처음 내리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저 작은 보슬비였던 빗발이 점차 굵어지더니 이제는 거의 폭우 수준으로 내리고 있었다. 하연은 우산을 쓰고 클럽의 입구로 향했다. 그곳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당구클럽이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려던 하연은 입구에서 제지를 당했다.
  • “손님, 죄송하지만 멤버십 카드 좀 확인할게요.”
  • 잠시 생각하던 하연은 결국 밖으로 나와 우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 “나 도착했어. 얼마나 더 오래 있어야 돼? 나 여기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 문자를 보낸 그녀는 우산을 들고 근처에 서서 내리는 빗물들을 바라보며 임신 진단서에 대해 생각했다.
  • ‘그가 나오면 바로 말해야 할까? 아니면 얼마 뒤 그의 생일날에 서프라이즈로 알려줄까?’
  • 생각에 잠긴 하연은 그런 자신이 위쪽에 있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있는 줄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창가에 손을 짚은 채 건물 아래 서있는 인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 “우현, 너네 가짜 와이프 말이야, 와이프 역할에 꽤 열심인데? 우산 가져다 달란다고 진짜로 우산을 가지고 왔어. 설마 네가 진짜로 우산이 없다고 비를 맞을 거라 생각하는 거 아냐?”
  • “널 너무 사랑한 나머지 논리적인 사고가 안 되나 봐.”
  • “헛소리.”
  • 그때 나른하고도 낮은 목소리 하나가 룸의 안쪽 구석에서 들려왔다. 훤칠한 키에 긴 다리, 사뭇 차가워 보이는 이목구비와 투명할 정도로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 남자의 위로 살짝 올라간 눈꼬리가 유독 눈길을 사로잡았다. 회색빛이 감도는 고급 맞춤 정장을 입은 그는 긴 다리를 꼰 채 앉아있었다. 그가 손을 살짝 들어 올리자 손목에 걸려있는 고급시계가 소매 밖으로 드러났다.
  • “이리 내.”
  • 장난을 쳤던 친구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 “쯧, 이렇게 빨리 휴대폰이 주인한테 돌아가는 거야?”
  • “됐어. 유라가 여기 없었다면 저 자식 휴대폰에 손도 못 대봤을 거야.”
  • 그들은 농담을 던지며 남자의 옆에 앉아있는, 예쁜 얼굴에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하얀 원피스 차림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하는 농담을 들은 그녀는 살짝 미소 지으며 나긋나긋한 말투로 말했다.
  • “그만들 해. 우현이 휴대폰을 가지고 장난친 것도 모자라 왜 나까지 놀리고 그래.”
  • 하지만 주변의 친구들은 그들을 가만 놔둘 생각이 없는 듯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 “우현이 마음속엔 네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어?”
  • “그러니까. 진우현 한테 직접 물어봐도 그렇다고 대답할걸? 안 그래 진우현?”
  • 그 말에 강유라 또한 참지 못하고 우현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현은 그저 입꼬리를 살짝 올릴 뿐 달리 부정하지 않았다. 그가 부정하지 않자 사람들은 신나서 더 놀리기 시작했다.
  • “내가 진작에 말했잖아. 진우현 마음속에 강유라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다고!”
  • 사람들의 소란 속에서 우현은 시선을 내리깐 채 빠르게 하연에게 답장을 보냈다.
  • “우산 필요 없어졌어. 너 먼저 집으로 돌아가있어.”
  • 그 문자를 받은 하연은 무언가 이상하다 생각하며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 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다본 채로 잠시 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우현으로부터 오는 답장은 없었다.
  • ‘진짜로 뭔가 바쁜 일이 있나 보지 뭐.’
  • 하연은 먼저 돌아가기로 했다.
  • “잠깐.”
  • 그때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하연은 고개를 돌렸다. 멋스럽게 차려입은 두 명의 여자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중 키가 큰 여자가 눈을 흘기며 기분 나쁜 듯 물었다.
  • “당신이 심하연이야?”
  • 적의를 가득 담고 있는 상대의 표정에 하연 역시 기분이 나빠져 딱딱하게 대답했다.
  • “누구시죠?”
  •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유라가 돌아왔다는 거지. 그러니까 염치란 게 있으면 알아서 진우현 옆에서 꺼져.”
  • 여자의 말에 하연은 흠칫했다. 그녀는 꽤 오랫동안 그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었다.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도 거의 잊어버릴 만큼 오랫동안 말이다. 그런 그녀의 기분을 알아챈 상대가 짜증스러운 듯 그녀를 쳐다봤다.
  • “뭘 그렇게 놀라? 2년 동안 가짜 진 씨 집안 사모님 노릇 좀 했다고 그새 멍청해진 거야? 그 자리가 진짜로 당신 거라도 되는 줄 알았어?”
  • 아랫입술을 깨문 그녀의 안색은 창백했다. 우산을 붙들고 있는 손가락 마디마저 하얗게 질려있었다.
  • “보아하니 내키지 않나 본데? 유라한테서 뺏기라도 하려고?”
  • “그 주제에?”
  • 하연은 더 이상 그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고 몸을 돌려 그곳을 벗어났다. 등 뒤에서 두 여자가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혔다.
  • 그녀가 진 씨 가문의 저택으로 돌아오자 문을 열어주던 집사는 문 앞에 서있는 비에 흠뻑 젖은 사람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내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집사는 놀라 소리쳤다.
  • “사모님! 어쩌다가 이렇게 비를 쫄딱 맞으신 거예요? 얼른 안으로 들어오세요.”
  • 하연의 팔다리는 얼다 못해 이젠 감각마저 무뎌져 있었다. 그녀가 집안으로 들어서자 얼른 한무리의 고용인들이 커다란 수건을 챙겨와 그녀를 에워싼 채 몸에 수건을 덮어주고 젖은 머리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 “얼른 가서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
  • “그리고 생강차 좀 끓여오고.”
  • 진 씨 집안의 고용인들은 비를 쫄딱 맞고 들어온 하연 때문에 한바탕 난리였다. 그러다 보니 그 누구도 저택의 대문을 들어서는 차 한 대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의 기다란 인영이 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무슨 일이야?”
  • 그 목소리에 소파에 앉아있던 하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 ‘쟤가 왜 돌아온 거지? 지금쯤 지네 유라 곁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 “사모님께서 비를 잔뜩 맞으셔서요.”
  • ‘비를 맞아?’
  • 진우현의 짙은 눈동자가 소파 위의 조그만 한 인영을 향했다. 긴 다리를 휘적이며 소파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하연의 모습을 확인한 우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온몸이 흠뻑 젖은 모습이었다. 부드러운 머리칼은 축축하게 젖어 그녀의 창백한 얼굴 위에 달라붙어 있었고 이전의 앵두 같던 입술도 전혀 핏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 “너 무슨 일이야?”
  • 눈살을 찌푸리며 물어오는 우현의 말투는 다정하지 않았다. 하연은 겨우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는 고개를 들어 우현을 향해 창백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설명했다.
  • “휴대폰 배터리가 다 돼서. 돌아오는 길에 또 우산이 없는 어린아이를 마주쳐 가지고.”
  • 하지만 진우현의 눈빛은 오히려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 “미친 거지?”
  • 하연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그대로 굳었다.
  • “걔가 우산이 없다고 네 우산을 걔한테 주고 넌 비를 잔뜩 맞는다고? 너 대체 몇 살이야? 그런다고 내가 칭찬이라도 해줄 줄 알았어?”
  •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고용인들은 서로를 쳐다보기만 할 뿐, 그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시선을 떨군 하연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온 힘을 다해 눈물을 참았다. 우현이 다가와 그녀를 그대로 안아들고 나서야 그 한 방울의 뜨거운 눈물은 비로소 그녀의 손등 위에서 부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