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6화 안쪽도 닦아야지

  • 고집불통?
  • 심하연이 멈칫했다가 곧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 “아무렴, 유라만큼 싹싹하진 못하겠지.”
  • 감기 기운 탓인지, 속마음이 그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 진우현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 ‘유라가… 왜 거기서 나와?’
  • 심하연도 그 자리에 굳어졌다.
  •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 갑자기 진우현이 심하연의 턱을 이끌어 그녀의 눈망울을 자신의 칠흑처럼 캄캄한 눈동자 앞에 세웠다.
  • “지금 질투하는 거야?”
  • 순간 심하연의 미간이 꿈틀했다.
  • “아니거든?”
  • 손을 들어 진우현의 손을 밀쳐내려 했으나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 진우현이 그녀의 턱에서 손을 떼고 대신 그녀의 손목을 잡아 쥐었다.
  • “왜 이렇게 맥을 못 추는 거지?”
  • “신경 꺼.”
  • 홱 쏘아붙이며 손목을 빼 내려던 심하연이 제 힘을 못 이기고 소파에 벌렁 넘어졌다. 안간힘을 썼지만 몸이 일으켜지지가 않았다. 아마도 손목을 빼는 데 온 힘을 다 쓴 듯했다.
  • “기다려.”
  • 그런 심하연을 심란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진우현은 한 마디를 남기고 나가더니, 대야에 찬 물을 받아 들고 와서는 수건을 담가 적시고 물기를 짜 심하연의 이마에 가져갔다.
  • 하지만, 이마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수건이 몇 번 문지르다가 점차 아래로 내려오자 심하연이 흠칫했다.
  • “뭐 하는 거야?”
  • 진우현을 쏘아보는 심하연의 눈망울에, 진우현의 찌푸려진 미간이 비쳐졌다.
  • “가만 있어. 이래야 열 빨리 내려.”
  • 괜찮다며 밀어내려 했으나, 찬 수건이 지나가는 곳마다 시원해지며 부글부글 끓는 것만 같았던 몸이 한결 편안해졌다.
  • ‘뭐, 부부인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 열을 식히는 것 뿐이니까. 뱃속의 아기를 위해서라도 빨리 낫는 게 최우선이야.’
  • 속으로 이런저런 정당한 이유를 내세우며 심하연은 진우현의 손길을 더 마다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 수건은 심하연의 이마에서 얼굴로, 얼굴에서 목으로 내려왔다.
  • 묵묵히 그녀를 닦아 주던 진우현이 문득 입을 열었다.
  • “심하연, 영광인 줄 알아.”
  • “뭐?”
  • 무덤덤한 그 한 마디에 심하연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 “놀라긴. 누군가의 몸을 닦아주는 건 처음이다 이거야. 그 영광의 주인공이 바로 너고.”
  • 심하연이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 수건을 쥔 진우현의 손이 옷깃을 타고 그녀의 가슴 안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 느닷없는 그 손길에 심하연이 깜짝 놀라며 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 “뭐 하는 거야?”
  • “안쪽도 닦아야지.”
  • 진우현은 여전히 무덤덤한 말투였다.
  • “아, 아냐. 여긴… 나 절로 닦으면 돼.”
  • 열이 내렸던 심하연의 목덜미가 다시 빨개졌다.
  • “뭐야. 갑자기 새삼스럽게.”
  • 그의 손은 꿈쩍도 않았다.
  • 수건 하나를 사이에 두긴 했지만, 손이 머무른 데가 너무나도 아찔하단 건 전혀 의식하지 못한 듯했다.
  • “그게 아니라…”
  • 진우현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 “너 혹시…”
  • 펑-!
  • 문 밖에서 나는 소리에 진우현과 심하연이 문 쪽을 돌아보았다.
  • 허둥지둥 뭔가를 줍고있는 강유라가 보였다.
  • 동시에 진우현의 손이 심하연의 몸에서 떨어졌다.
  • 그는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 다시 소파에 누운 심하연의 입가에 조롱에 찬 미소가 피어났다.
  • 이윽고 강유라가 걸어 들어오며 진우현과 심하연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치 아무 것도 못 봤다는 듯이.
  • “많이 놀랐지? 미안, 손이 미끄러웠나 봐.”
  • 진우현이 뭔가 말하려 했으나, 그 전에 강유라가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 “줘 봐.”
  • 진우현은 고분고분 수건을 내어주었다.
  • “민성이가 열 식히는 법 알려줬어.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넌 나가서 좀 쉬어.”
  • 진우현은 꼼짝 않고 누워있는 심하연을 한 번 바라보고는 나가면서 문을 닫았다.
  • 조용하기만 한 방 안, 강유라가 수건을 들고 다가왔다.
  • “하연아, 내가 닦아줄게.”
  • “간호사를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무슨 염치로…”
  • 아직 열이 다 내리지는 않은 지라 닦기는 닦아야 하겠지만 본능적으로 강유라의 호의는 사절하고 싶었다.
  • “간호사가 나만 하겠어. 괜찮으니까 편하게 있어.”
  • 강유라가 별 거 아니라는 듯 빙긋 웃어보이기까지 하자 심하연은 더 사양할 수가 없어 힘겹게 웃어보이고는 눈을 꼭 감았다. 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다. 위 아래로 자신을 훑는 강유라의 눈길을.
  • 강유라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방금 전, 문 밖에서 못 본 게 아니었다. 닦아주기만 하는 거였다면 또 모를까. 분명 진우현은 그녀의 옷깃 속으로 손이 가고 있었다.
  • 둘이…… 그런 사이였어?
  • ‘내가 외국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그녀의 눈길이 심하연의 풀어헤친 옷깃 속에 보이는 연한 핑크빛이 감도는 뽀얀 살결과 여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깊은 골짜기에 멈췄다.
  • ‘여자인 내가 봐도… 탐스럽네.’
  • 강유라의 옥다물고 있던 입이 열렸다.
  • “사실 그동안 고마웠던 것도 있고.”
  • 서서히 열이 내려가는 편안함에 잠시 나른해졌던 심하연이 그 말에 눈을 번쩍 떴다.
  • 강유라의 예쁜 눈망울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 “고마웠다고?”
  • 강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 “맞아, 고마웠어. 다른 사람들한테는 우현이가 가짜 결혼으로 널 도와준 걸로 보이겠지만, 내 입장에선 네가 날 도운 거지. 내가 돌아올 때까지 우현이를 지켜줬잖아.”
  • 그 말에, 심하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드러운 말투 속에 숨은 뜻이 또렷이 들렸다.
  • 너와 우현이는 가짜 부부라고! 너는 그저 맡겨뒀던 우현이를 지키는 역할 뿐이니 딴 생각 품지 말라고!
  • 심하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 말을 마친 강유라는 심하연을 마저 닦아준 뒤, 그녀의 옷깃을 여며주고 일으켜 앉혔다.
  • “어때? 좀 나아졌어? 물 좀 마실래?”
  • “응? 어.”
  • 머릿속이 심란해 진 심하연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 강유라가 따라준 물을 마시자 바싹 타들어가던 목이 그제야 좀 나아졌다.
  • 하지만 심란한 머릿속과 막힌 듯 답답한 가슴은 풀리지 않았다.
  • ‘왜 이러지? 유라 말이 맞는 거잖아.’
  • 심하연은 자신의 생각 그대로를 얘기하기로 마음먹었다.
  • “사실 너는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진우현의 곁은 항시 널 위해 남겨두고 있으니까. 내가 가장 어려울 때, 진우현을 빌려줘서 고마워. 이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