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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미안해

  • 남건은 일부러 침착한 척했다.
  • “네, 여기 있습니다. 보세요.”
  • 허정안은 얼른 기획안을 건네주었다.
  • “완전 엉망진창이네요. 안 돼요. 다시 해요!”
  • 남건은 이번에 온 목적을 잊지 않고 말했다.
  • “왜요? 제 생각에는 괜찮은 것 같은데요?”
  • 허정안은 이해할 수 없었다.
  • “당신이 결정해요? 아니면 내가 결정해요? 다시 하기 싫다면….”
  • “다시 할게요. 다시 해요.”
  • 허정안은 상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남건의 말을 끊어버렸다.
  • “지금은 수정하지 마세요. 제가 지금 목이 마르니 커피를 부탁해요.”
  • 남건이 그녀에게 말했다.
  •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가져다드릴게요.”
  • “당신이 해요!”
  • 허정안은 남건이 그녀를 일부러 괴롭힌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녀는 그의 괴롭힘을 묵묵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녀는 그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빚졌기에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다면 그녀의 마음도 조금 편해질 것이다.
  • “남건 대표님, 말씀하신 커피예요.”
  • 허정안은 고개를 숙인 채 그를 바라보지 못했다.
  • 남건은 커피를 받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허정안을 바라보았는데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 남건은 한참 동안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 “허정안 씨, 고개를 들어요. 당신에게 물어볼 말이 있어요.”
  • 허정안은 몸을 떨었다.
  • ‘결국 이 순간이 오고야 말았나? 하지만 내가 뭘 어쩔 수 없잖아?’
  • 허정안은 고개를 들고서 남건의 깊고 복잡한 눈빛을 마주 보았다.
  • “당신은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남아 있어요. 그때 왜 저를 떠났어요?”
  • 남건의 목소리는 허정안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았다.
  • 허정안은 침묵했다.
  • “도대체 왜? 너는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 남건의 목소리는 더는 침착하지 않았다.
  • “그 시간 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아?”
  • 허정안의 눈가가 서서히 붉어지며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 “알아. 내가 미안해. 하지만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 허정안은 억지로 울음을 삼켰다.
  • ‘나는 너를 사랑해! 너를 깊이 사랑하고 있지만, 너는 이미 여자 친구가 있잖아. 그것도 내 절친이 네 여자 친구야. 내가 진실을 말한다면 서로 힘들어지기만 할 뿐이야.’
  • 허정안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보며 남건은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았다.
  • “그러니까 너는 여전히 진실을 알려주지 않겠다는 거야? 아니면 그때 나말고 좋아하는 놈 따로 있었어?”
  • 허정안은 끝내 눈물을 펑펑 흘렸다.
  •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생각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 비록 그녀가 아직도 그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지만, 그녀는 다시 되찾을 수도 있는 사랑을 스스로 망가뜨리기로 했다.
  • 남건은 허정안의 눈에 비친 슬픔과 절망을 읽고서 그녀를 더는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 ‘어쩌면 그녀에게 정말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을지도 몰라.’
  • “미안하다는 말하지 마. 네가 미안해할 필요 없어. 다 내가 원해서야.”
  • 남건은 다시 침착함을 되찾았다. 비록 그들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고 해도 그는 허정안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 “기획안은 수정할 필요가 없으니 계속 일하세요. 전 먼저 갈게요.”
  • 말을 마치고 남건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자리를 떴다. 그는 허정안이 슬픔에 잠겨 무기력한 모습을 보고서 마음이 약해져 그녀를 껴안을까 봐 두려워 잠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 ‘그는 가버렸어. 그도 이젠 포기했겠지?’
  • 그녀는 그때 매정하게 그를 떠났던 것처럼 또다시 그를 밀어냈다.
  • 그를 사랑하는 마음은 뼛속 깊이 새긴 채, 켜켜이 쌓인 기억들이 아직도 그녀의 심장을 계속해서 갉아먹고 있었다. 허정안은 괴로워하며 바닥에 쭈그려 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 ‘이미 결정한 이상 더는 후회하지 말자.’
  • 허정안은 잊기로 했다. 지금의 그녀는 그저 이번 사업을 순조롭게 진행하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남건과의 모든 관계를 깨끗이 정리하고 싶었다.
  • 그녀는 더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평온하게 잘 지내면서 묵묵히 남건의 행복을 축복해주고 싶었다.
  •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좋지만, 남건은 그녀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 이것은 이미 남건이 네 번째로 구함 디자인회사에 오는 것이었다. 회사 직원들은 이미 맨 처음의 놀라고 두려워하던 것으로부터 지금의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구함 디자인회사의 사장은 남건이 세 번째 방문했을 때부터는 더 마중 나오지 않았다.
  • ‘남건 대표님은 우리 회사 직원보다도 더 자주 들르니, 저는 정말 매일 마중 나오고 싶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