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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뜻밖의 손님

  • 허정안은 잠깐 멈춰 있다가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대문으로 들어갔다.
  • 남건의 사무실 문은 열려 있었다. 허정안은 문 앞에 멈춰서 고개를 숙이고 일하는 남건을 보았다.
  • 윤곽이 뚜렷한 얼굴에 깊고 맑은 눈동자, 열심히 일할 때 미간을 약간 찌푸리는 것까지 그는 예전이랑 같은 모습이었다.
  • ‘모든 것이 이리도 익숙하잖아. 하지만….’
  • 인기척을 느낀 듯 남건이 고개를 들더니, 정신을 집중해서 그를 주시하고 있는 허정안을 보았다.
  • “왔어요?”
  • 남건의 차분한 목소리에는 알아차리기 힘든 흥분이 묻어났다.
  • “네. 저는 계획서를 전해드리러 왔어요.”
  • 허정안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 “네. 책상 위에 올려 두세요.”
  • 남건은 멍하니 대답했다.
  • 계획서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후 허정안은 멍하니 서서 말이 없었다. 남건도 아무런 말 없이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었기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 “남건 대표님, 이번에 함께 일하면서 매우 즐거웠어요. 다음에도 함께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허정안은 소탈하게 웃었다. 그녀가 아무리 아쉽더라도 그를 이만 놓아줘야 했다.
  • 허정안은 마치 마지막으로 한번 더 남건의 온기를 느껴보고 싶다는 듯이 예의 바르게 손을 내밀었다.
  • 허정안의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와 말투에 남건은 말문이 막혔다. 한참 뒤에야 남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정안의 손을 잡았다.
  • “좋아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요.”
  • ‘또 기회가 있을까?’
  • 허정안은 씁쓸하게 웃었다.
  • “남건 대표님, 그럼 더는 방해하지 않을게요. 저는 이만 나가볼게요.”
  • 허정안은 남건을 바라보며 마지막 미소로 화답하고는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갔다.
  • 남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그녀를 떠나보냈다.
  • 그 후 며칠 동안 허정안의 생활은 평온을 되찾아갔다. 그녀는 또 평소처럼 똑같은 생활을 반복했다. 다만 그녀의 마음속에 아직 그가 있을 뿐이었다.
  • 그날 구함 디자인회사에는 손님이 한 명 도착했다. 그는 격식 없는 옷차림에 캡 모자를 썼고 준수한 외모를 가졌으며 웃는 모습도 유난히 밝았다.
  • 그는 회사 접수처로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 “안녕하세요. 허정안 씨의 사무실은 어디 있어요?”
  • 안내원은 남자에게 사무실의 상세한 위치를 예의 바르게 알려줬다.
  • “감사합니다.”
  • 남자는 감사 인사를 한 후 자리를 떴다.
  • “요즘은 어떻게 된 거지? 잘생긴 남자들이 허정안 씨를 자주 찾아오네. 아, 언제면 잘생긴 남자가 나를 찾아올까?”
  • 안내원은 남몰래 중얼거렸다.
  • “똑, 똑, 똑.”
  • 허정안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들어오세요.”
  • 허정안은 고개를 들었고 평온하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 “영준 씨! 어떻게 왔어요? 어서 와 앉아요.”
  • 허정안은 흥분하며 일어나서 그를 맞아주었다.
  • 영준은 허정안이 병을 치료하는 동안의 주치의였다. 그 기간 영준은 허정안과 아침저녁으로 만나면서 저도 모르는 새에 따뜻하고 착하며 가끔 어리숙한 이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영준이 그녀를 살뜰히 보살펴주었기에 허정안도 그를 매우 달가워했다.
  • 영준이 이번에 M시티에 온 것은 허정안을 그의 여자친구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 그걸 위해 그는 허정안과 자주 만날 수 있게 특별히 허정안이 사는 곳으로 전근 신청을 했다.
  • “정안 씨, 괜찮아요?”
  • 영준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매우 즐거워 보였다.
  • “이번에 일 때문에 M시티로 전근하게 되었어요.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날 수 있겠네요.”
  • 두 사람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훌쩍 지났다.
  • “지금 일하는 중이니 방해하지 않을게요. 시간이 날 때 다시 이야기해요.”
  • 영준은 허정안을 만나는 목적은 달성했으니 오래 머물지 않고 일어나 갈 준비를 했다.
  • “영준 씨, 이렇게 해요. 오늘 저녁 퇴근 후에 제가 밥을 살게요. 멀리서 온 손님을 잘 대접해드려야죠. 어때요?”
  • 허정안이 그를 보며 말했다.
  • 영준은 허정안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 “그렇게 해요. 먼저 말해두겠는데 저는 비싼 걸 먹을 거예요.”
  • “그러세요. 약속했어요.”
  •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 남건은 요 며칠 짜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