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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언제쯤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 강소원 역시 순간 이 뜻밖의 사태를 파악하고는 곧바로 불쾌한 듯 말했다.
  • “그러니까, 우리 승아가 당신을 도와줬는데도 불구하고 당신은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은 거네요!”
  • 그 말에 박우진은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분명 그가 상황을 제대로 묻지도 않고 그녀와 마찰을 빚은 것이 맞기는 했지만 그 역시 그 세 꼬맹이들이 카드를 자신들의 엄마에게 주었을 거라고는 예상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이에 방금 전 자신이 손을 올렸던 장면과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은 그녀가 생각난 박우진은 골치가 아파왔다.
  • 그때 마침 민은호가 문을 두드렸다. 방금 전 객실로 돌아가 박우진이 갈아입을 옷을 챙겨 온 그는 안쪽에서 들려오는 예상에 없던 소란스러운 소리에 혹시라도 박우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곧바로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사람들을 불러올까요?”
  • 이에 박우진이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강소원은 이미 잔뜩 놀란듯한 눈치였다.
  • 방금 전 이 남자에게 보여진 건 그렇다 치더라도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친다니, 그녀의 순결이 위기에 처해버린 상황인 것이다.
  • 그녀는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움츠리며 예쁜 두 눈을 부릅뜨고 경고하듯 남자를 바라보았다.
  • 그런 그녀의 눈빛을 문제없이 전달받은 박우진은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 그 심하게 아름다운 입술을 오므렸다.
  • 누군가가 감히 그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 순간적으로 흥미를 느낀 그는 찰나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담담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 “아니,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내 허락 없이는 들어오지 마.”
  • 문 밖에 있던 민은호는 그 말에 섣불리 행동하지 못했다. 이에 강소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 말했다.
  • “타월이나 돌려줘요!”
  • 그러자 박우진은 지체 없이 그녀에게 타월을 던져주며 시선을 돌렸다.
  • 하지만 비록 일부러 보려 하지 않았더라도 시야의 끝에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모습이 조금 비쳐 들어왔다.
  • 수면 위에서 하늘거리는 긴 머리카락들이 그녀의 몸을 반쯤 가리고 있기는 했지만 그 효과는 미비했다.
  • 그 머리카락들 사이로 여전히 눈처럼 하얀 피부와 봄날의 색으로 물들어 있는 부분 부분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 의도치 않게 그 모습을 엿본 박우진은 간신히 입을 열어 해명했다.
  • “방금 전의 일은 제가 실례했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들어오기 전에 노크를 하지 않았고 미리 사람이 있는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으니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는 거죠. 그러니 이 일은 서로 이렇게 마무리하시죠.”
  • 그는 말을 하면서 걸음을 옮겨 물 밖으로 나갔다. 옷을 입고 있지 않았던 터라 그의 넓은 어깨와 가는 허리 라인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 아래에 두른 타월과 완벽한 비율의 몸매, 거기에 그의 차가운 분위기까지 더해져 그는 순식간에 금욕적인 분위기를 짠득 뿜어내고 있었다.
  • 하지만 겨우 다시 타월을 몸에 두른 강소원은 그의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 ‘이 일은 서로 이렇게 마무리하시죠’라니? 타월이 벗겨져 버린 것, 그리고 심지어 알몸이 보여져 버리기까지 한 건 어떻게 계산한단 말인가?
  • 손해를 보고도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던 강소원은 바로 남자와 톡톡히 따지고 들려했다.
  • 하지만 그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 생각이 없었던 박우진은 의자 위에 놓여있던 가운을 가져다 몸에 걸치고는 이내 그곳에서 나가버렸다.
  • 그렇게 순식간에 문이 닫히고, 욕탕 안에는 강소원 혼자만 남게 되었다. 이에 강소원은 화가 났다.
  • ‘뭐야 저 사람!’
  • 이 일로 인해 반신욕을 할 기분이 싹 사라져버린 그녀 역시 안에서 잠시 기다리다 밖의 사람이 완전히 가버린 것을 확인한 뒤에야 옷을 갈아입으러 나갔다.
  • 그리고 옷을 갈아입은 뒤, 그녀는 곧바로 객실로 돌아갔다.
  • 그 시각 한창 소파 위에 나란히 앉아 게임에 집중하고 있던 세 꼬맹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온 강소원을 보자 의아한 듯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 “엄마,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
  • “말도 마!”
  • 강소원이 짜증스럽게 옷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 “엄청 짜증 나는 사람을 하나 만났어! 들어가자마자 나한테 시비를 걸더라고!”
  • 그 말을 들은 세 아이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짜증 나는 사람? 설마 아빠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 승빈이가 황급히 물었다.
  • “그 사람이 뭘 어쨌는데, 엄마?”
  • 이에 강소원은 입을 달싹였다. 원래는 본격적으로 하소연을 늘어놓을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삼켰다. 오늘 밤의 일은 세 아이들이 준 그 카드로 인해 벌어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아이들은 그저 그녀의 피로를 풀어주고 싶은 마음에 좋은 뜻에서 그 카드를 준 것이었을 텐데, 만약 그녀가 그 일에 대해 말한다면 철이 든 아이들이라면 분명 자책하게 될 터였다.
  • 그렇게 생각한 강소원은 화제를 돌렸다.
  • “됐어. 별거 아니야. 이미 지나간 일인데 뭐! 엄마는 여기서 씻어도 별 차이 없으니까, 너희들은 먼저 놀고 있어. 엄마가 씻고 나오면 슬슬 잘 시간이니까.”
  • 그러자 세 아이들은 착하게도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 “알겠어, 엄마.”
  • 그리고는 욕실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문이 닫히자 승민이가 곧바로 다른 두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소곤거렸다.
  • “난 왠지… 두 사람을 이어주려던 우리 계획이 역효과가 난 것 같은데? 엄마가 다퉜다는 사람은 아빠인 거겠지?”
  • 승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으로선 그런 것 같아.”
  • 승아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 “우리가 공들여 만들어 낸 기회가 이렇게 낭비되어 버리다니. 이대로 가다가는 언제쯤에야 아빠와 엄마가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거야!”
  • “조급해하지 마.”
  • 승빈이가 다독이듯 여동생의 머리를 토닥여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 “오빠가 계속해서 방법을 찾아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