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들은 강소원은 자칫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정말이지 엄청난 우연이 아닐 수가 없었다.
바로 어제 박 씨 가문에서 그녀에게 박우진을 치료해 달라는 의뢰를 해오더니, 오늘은 그녀의 ‘상냥하신 부친’께서 그녀더러 박 씨 가문에 시집을 가라고 하다니 말이다.
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박우진의 병세는 꽤 심각했다. 어쩌면 이미 죽음의 문턱에 서있는 상태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것 참 큰 복이겠네!’
강소원은 이 집안사람들이 더 증오스럽기만 했다.
6년 전 그날 그녀를 쫓아내고 이제껏 관심조차 없더니, 이제 와서 갑자기 그녀를 찾은 건 단지 그녀를 돈벌이 도구로 이용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던 것이다.
이에 인대심이 바닥난 강소원은 비꼬듯 강상국을 바라보았다.
“설마 정말로 제가 그깟 주식 따위가 아쉬워서 돌아왔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절 낳아주신 어머니가 남기신 게 아니라면, 그리고 고모의 체면 때문이 아니었다면 오늘 전 이 강 씨 집안에 단 한 발짝도 들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저의 혼약을 좌우지하려는 헛된 망상을 품고 계시네요?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말을 마친 그녀는 굳은 얼굴로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나려 했다.
이에 강상국과 임수연 모녀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들은 강소원이 주식을 마다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 서!”
강상국은 즉시 그녀를 향해 호통쳤다.
“너 정말로 이 주식을 포기하겠다는 거냐?”
그는 믿을 수 없는 듯 말을 이어갔다.
“너 이 주식이 얼마인지 알긴 하는 거야? 해마다 떨어지는 순이익만 해도 10억이야. 그거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텐데, 그걸 마다하겠다고?”
그러자 강소원은 발걸음을 멈추고 비웃듯 말했다.
“고작 10억을 가지고 절 어떻게 해보시겠다고요? 지금 절 물로 보시는 건가요?”
그 말에 강은설이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를 내기 시작했다.
“강소원, 욕심 좀 적당히 부려! 해마다 너한테 10억씩이나 던져주고 재벌가에 시집도 보내준다는데 뭘 더 어떻게 하라고? 네 주제를 알아야지!”
“거지한테 적선하듯 던져주는 그깟 돈, 난 정말이지 관심 없거든! 그리고, 당신들이 나더러 시집을 가라고 하면 내가 시집을 가야 하는 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고작 그 가련한 혈연관계 때문에?”
강소원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차가운 시선으로 그 세 사람을 한번 훑어보더니 조롱했다.
“당신들한테도 그런 자격이 있나?”
마지막 한마디를 마친 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 그리고 남겨진 건 일그러진 표정의 세 사람뿐이었다.
……
강 씨 집안에서 나온 강소원은 휴대폰을 꺼내 차를 불렀다. 방금 전 그 집 안에서 기분을 잡친 그녀는 지금 그저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부른 차가 도착도 하기 전에 그녀는 도리여 윤남규와 마주치게 되었다. 윤남규는 강은설을 회사에 데려다주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새로 뽑은 포르쉐를 몰고 실버그레이색 정장을 입고 있는 그는 꽤나 멋스럽고 세련되어 보였다.
차에서 내리며 얼핏 강 씨 집안 문 앞에 누군가 서있는 것을 발견한 그는 무의식 적으로 그 사람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 아름다움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제껏 이토록 예쁜 여자는 본 적이 없었다. 이에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강소원의 앞으로 걸어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가씨. 실례지만 혹시 강 씨 가문의 사람을 찾아오셨나요?”
그 말에 시선을 들어 올려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 강소원은 한때 그녀의 허울뿐인 ‘약혼자’였던 그를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이에 그녀의 표정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지만 원래부터 마음속에서 일렁이고 있던 혐오감은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윤남규의 말에 대꾸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이내 시선을 거두며 고개를 숙여 휴대폰 어플로 자신이 부른 차의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윤남규는 오히려 더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정말이지 너무 아름다웠다. 남자라면 누구나 설렐만한 미모였다.
강소원의 휴대폰 화면 속 어플을 힐긋 들여다본 그가 신사적으로 말을 꺼냈다.
“아가씨, 어디로 가십니까? 제차로 데려다 드릴수도 있는데요.”
강소원은 여전히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파리같이 시끄럽다고 느낄 뿐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외쳤다.
‘차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그때 마침 밖으로 나온 강은설이 윤남규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기쁜 기색을 드러내며 그에게 다가갔다.
“왔어, 남규 오빠? 왜 들어오지 않고? 내가 한참을 기다렸는데!”
하지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 있는 강소원을 발견한 그녀는 저도 모르게 표정을 굳히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강소원, 너 왜 아직 안 가고 여기 있는 거야?”
그 말에 윤남규는 깜짝 놀라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은설아, 방금 뭐라고? 이 사람이… 강소원이라고?”
‘이 여자가 6년 전 내가 극도로 혐오했던 그 촌스러운 여자라고? 말도 안 돼!’
윤남규는 눈을 부릅뜨고 눈앞의 이 아름다운 여자에게서 지난날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해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 강소원이 부른 차가 도착하자 그녀는 잠시도 더 이곳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다는 듯 이내 차를 타고 떠나갔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윤남규에게 더 이상의 눈길은 주지 않았다. 하지만 윤남규는 그녀가 타고 간 차가 멀어질 때까지도 오래도록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