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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어디 안 가고 바로 여기 있어

  • 그 말을 들은 세 꼬맹이들은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 ‘약혼자까지 있었다니! 그럼 우리 엄마는 어떡하지?’
  • 승아가 곧바로 캐묻기 시작했다.
  • “아저씨 약혼자는 예쁘게 생겼어요? 나만큼 예뻐요? 난 이제 기회가 없는 거예요?”
  •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 민은호가 말했다.
  • “우리 대표님한테 약혼자가 없다고 해도 너한테는 기회가 없어.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잖아, 꼬맹아.”
  • 이에 승아는 문득 생각이 난 듯 말했다.
  • “많지 않은데…”
  • ‘엄마랑 아저씨는 기껏해야 서너 살 차이 밖에 안 나는데. 하나도 많지 않아!’
  • 하지만 승아가 스스로를 두고 한 말이라고 오해한 박우진은 그런 승아가 그저 웃길 뿐이었다.
  • “너 취향이 전혀 까다롭지 않구나.”
  • 그러자 승아가 귀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 “까다로운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다 마음에 안 드는데, 아저씨는 마음에 들어요!”
  • 그는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친아빠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건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점이었다.
  • 옆에 있던 승빈이와 승민이 마저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 “아저씨라면 저희도 받아들일 수 있어요.”
  • 이에 박우진은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어쩌다 이 세 꼬맹이들과 만나게 된 것인지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민은호는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오랫동안 박우진을 모셔오면서 누군가에 의해 이토록 당황하는 박우진의 모습은 그 역시도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 그때 마침 종업원이 음식을 내왔다. 근사한 요리에서 풍기는 향긋한 냄새에 세 아이의 관심은 곧바로 음식에 집중되었다.
  • 그러자 박우진은 급히 방금 전의 화제를 끝내버리며 말했다.
  • “음식 나왔다.”
  • 세 꼬맹이들은 너무 배가 고팠다.
  •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그게 뭐든 일단 밥부터 배불리 먹고 다시 얘기하자. 어차피 잘생긴 아저씨도 어디 안 가고 바로 여기 있으니까!’
  • 이에 아이들은 수저를 들고 밥을 먹는데 열중했다.
  • 박우진은 아이들의 하얗고 보들보들한 두 볼이 음식을 씹을 때마다 볼록볼록 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 그 미치도록 귀여운 모습에 항상 차갑기만 하던 그의 표정이 왜인지 한결 부드러워졌다.
  • 입맛도 생겼는지 그도 아이들을 따라 음식을 조금 먹기 시작했다.
  • 하지만 약 10분 뒤, 그가 갑자기 수저를 내려놓았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그의 안색은 어딘가 창백해 보였다.
  • 세심한 승빈이가 곧바로 그의 이상함을 알아채고는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 “아저씨 왜 그래요?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어디 아프세요?”
  • 그 말에 승민이와 승아도 덩달아 그를 쳐다보더니 그의 이마에 맺혀있는 식은땀을 발견하고는 급히 걱정하며 물었다.
  • “아저씨 괜찮으세요?”
  • “대표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병원으로 모셔다 드릴까요?”
  • 이에 민은호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하며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려했다. 하지만 박우진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시켰다.
  • “그럴 필요 없어. 아무래도 점심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것 때문에 지금 위에 순간적으로 경련이 왔는지 잠깐 심하게 아픈 것뿐이야…”
  • 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상태는 전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 이에 승아는 재빨리 작은 몸을 움직여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는 귀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제가 한번 볼게요.”
  • 곧이어 아이의 작은 손이 박우진의 손목을 잡아당기더니 그의 손목 위에 가볍게 손가락을 얹었다. 아이는 진맥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 그 광경에 박우진과 민은호는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 하지만 승아는 침착하게 진맥을 마치고는 곧바로 자신이 메고 있던 작은 가방을 뒤적거렸다.
  • 잠시 후,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낸 승아는 상자 안에서 은침 한대를 집어 들고는 박우진을 향해 말했다.
  • “이 침은 미리 소독해 둔 거예요. 찌르면 조금 아플 테니 조금만 참아요, 아저씨.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 그리고는 두 성인 남자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혈자리를 찾아내어 단번에 침을 찔러 넣었다.
  • 이에 박우진과 민은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 “……”
  • “……”
  • “세상에! 너 함부로 침을 찔러 넣으면 어떡해? 지금은 의사 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 민은호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가 보기엔 승아의 행동은 철없는 어린애가 단순히 재미로, 결과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침을 가지고 찔러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 하지만 박우진의 몸은 조금의 고생도 견뎌내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만약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는 그 책임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에 민은호는 화가 났다.
  • 어린아이가 적당히 장난스러운 건 귀엽게 생각했겠지만 선을 넘는다면 혼나야 하는 것이다.
  • 그는 급히 손을 뻗어 박우진에게 꽂혀있는 침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한 작은 손에 의해 허공 중에서 쳐내졌다.
  • 그 손의 주인은 강승빈이었다. 아이는 차갑게 얼굴을 굳히며 나직이 호통쳤다.
  • “건드리지 마요! 제 여동생은 엄마한테서 의술을 배웠다고요.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아무렇게나 찌른 건 더더욱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