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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엄청난 재능을 가진 귀염둥이

  • 아이의 호통에 민은호는 순간 멍해져 침을 빼야 할지, 아니면 기다려야 할지 몰랐다. 그는 마음이 조급해 미칠 지경이었다.
  • “대표님, 어디 불편하지는 않으십니까?”
  • 그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박우진을 향해 물었다. 박우진의 준수한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그래도 민은호보다는 훨씬 침착해 보였다.
  • “아직까지는 불편한 건 없어.”
  •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시선을 옮겨 눈앞에 있는 세 꼬맹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진지한 표정은 정말로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 그 표정에 감화된 박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의심이 들었다.
  • ‘이 꼬마, 보기에는 고작 네다섯 살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데, 정말 그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단 말이야?’
  • 한 줄기 기대를 품은 채 그는 의외로 민은호에게 침을 빼라고 하지 않고 정말 그대로 앉아 기다렸다.
  • 그렇게 약 3분 정도가 지나자 기적이 일어났다.
  • 끊임없이 울렁거리던 그의 위장이 정말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하더니 아픔도 조금씩 잦아들어 10분 뒤에는 완전히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게 된 것이었다.
  • 박우진은 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항상 차갑기만 하던 그의 얼굴에 드물게 의아한듯한 표정이 드러났다.
  • “정말 괜찮아졌군.”
  • 그 말에 민은호는 깜짝 놀랐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 “이건… 그저 우연은 아닐까요?”
  • 이를 들은 승민이가 곧바로 불만을 드러내며 반박하고 나섰다.
  • “우연 같은 게 어딨어요! 혈자리를 찔러 몸의 많은 질병들을 고칠 수 있다고요. 제 동생이 방금 침을 놓은 혈자리는 아마 위장에 대응되는 자리일 거고요. 이런 가장 기본적인 의학 이론을 아저씨같이 다 큰 어른이 설마 모르시는 거예요?”
  • 민은호는 아이의 반박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정말로 문외한이었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눈앞의 이 꼬맹이는 고작 다섯 살밖에 안 되어 보였다. 다른 꼬마들은 그 나이 때면 아직 유치원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었을 텐데 이 꼬마는 어떻게 사람을 치료하고 있는 것인지 그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 이건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지능과 능력이란 말인가? 그런 그의 생각을 눈치챈 듯 승빈이가 시기적절하게 한마디 보탰다.
  • “우리 엄마는 엄청 대단한 외과 의사예요. 한의학의 약리에 대해서도 해박하시죠. 제 동생은 그걸 보고 들으며 자라다 보니 몇십 개의 주요 혈자리들은 이미 진즉에 다 외우고 있고 이런 기본적인 치료들도 충분히 가능하다고요. 제 여동생을 얕보지 마세요, 아저씨!”
  • “얕보지 않을게…”
  •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민은호는 도저히 눈앞의 세 아이들을 우습게 여길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는 예의를 갖추어 정중한 태도로 승아를 향해 말했다.
  • “꼬마야, 미안해. 방금 내가 화를 냈던걸 사과할게. 네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오해를 해선 안 되는 거였는데, 아저씨가 잘못했어.”
  • 그런 그의 모습에 승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 “괜찮아요.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잘못을 알고 고칠 수 있으면 착한 어린이랬어요. 그러니까 용서해 드릴게요!”
  • 말을 마친 아이는 고개를 돌려 박우진을 쳐다보며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아저씨, 이제 침 뽑을게요. 비록 지금은 괜찮아졌어도 돌아간 뒤엔 그래도 약을 챙겨드셔야 해요. 다지 재발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 “그래, 꼬마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할게. 너 정말 대단하구나!”
  • 박우진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꼬마 의사 선생님’이라는 말에 승아는 참지 못하고 웃음 지었다.
  • 볼 위에 드러난 두 개의 작고 귀여운 보조개가 아이가 신났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 그 귀여운 모습에 박우진은 손을 뻗어 아이의 말랑말랑한 볼을 만져보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 어느 집 꼬맹이들인지는 몰라도 사랑스러운 외모에 똑똑하고 영리한 것도 모자라 그런 꼬맹이들을 한 번에 셋이나 키워내다니 말이다.
  • ……
  • 그 시각, 귀여운 꼬맹이를 셋이나 키워낸 강소원은 마침 걸려온 한통의 전화로 인해 잠에서 깨어났다.
  • 비몽사몽 휴대폰을 더듬어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에서 그녀의 친부인 강상국의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강소원, 네가 탄 비행기는 이미 착륙했던데, 왜 곧바로 본가로 돌아오지 않는 거냐? 설마 내가 직접 모시러 가기라도 해야 하는 거냐?”
  • 그의 말투에는 짙은 불만에 담겨있었다. 그 말에 강소원은 예쁜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렸다.
  • 그녀의 눈빛에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것에 대한 짜증이 가득했고 말투 또한 상당히 나빴다.
  • “내가 안 급하다는데, 강 회장님이 뭘 그렇게 조급해하세요? 아니면 양심이라도 생겨서 얼른 나한테 주식을 돌려주고 보상해주고 싶어 한시라도 못 기다리시겠어요?”
  • 여기까지 말하던 그녀는 순간 말을 멈추고 비웃음을 터트렸다.
  • “아, 아니지. 당신 같은 사람한테 어떻게 ‘양심’따위가 있을 수 있겠어요? 그런 게 정말 있었다면 진작에 주셨겠죠!”
  • ‘그러니 이번에 갑자기 이렇게 호의를 보이는 것도 모르긴 몰라도 무언가 속셈이 있는 거겠지!’
  • 그 속에 무언가 함정이 있을 것임을 강소원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친어머니가 남긴 것이니 되찾아 오는 게 마땅했다.
  • 반면에 강 씨 가문은… 아예 그녀의 안중에 없었다. 수화기 너머의 강상국은 강소원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 “너 그게 무슨 버르장머리냐? 외국에 나가있는 몇 년 동안 너희 고모가 그렇게 가르치디? 친아버지한테 그딴 식으로 말하라고? 너 도대체 교양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깬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강소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항상 그렇듯 날카로웠다.
  • “친아버지? 당신이? 허…”
  • 그녀는 조롱 섞인 웃음을 흘렸다.
  • “저라는 사람은 원래 이래요. 다른 사람이 절 어떤 태도로 대하면 저도 그 사람을 어떤 태도로 대하죠. 교양이라면, 사람에 따라 다르고요. 적어도… 강 회장님은 제 기준에 예의를 갖추어드리기에는 아직 자격 없으세요.”
  • 말을 마친 그녀는 강상국이 뭐라 대꾸도 하기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 한편 강 씨 가문 본가에 있는 강상국은 화가 잔뜩 난 채 곧바로 휴대폰을 내던졌다. 이에 옆에 있던 임수연이 황급히 그 휴대폰을 주워 들며 물었다.
  • “왜 그래요? 왜 이렇게 화가 나신 건데요? 소원이는 지금 어디 있대요? 알아내셨어요?”
  • 강상국은 불쾌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못 알아냈어. 그것도 모자라 몇 마디 되받아치기까지 하더군. 그 망할 년은 정말이지 가면 갈수록 교양 없이 구는군!”
  • 그 말에 강은설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졌다.
  • “어떻게 못 알아낼 수가 있어? 강소원은 대체 언제 돌아오는데? 박 씨 가문 쪽에서 제안한 혼사에 이미 승낙까지 했는데, 설마 진짜로 나보고 그 집안에 시집을 가라고? 난 싫어! 아빠, 아빠도 내가 남규 오빠를 좋아한다는 거 알잖아. 원래는 우리의 약혼 이야기까지 오가고 있었는데 박 씨 가문에서 갑자기 찾아와서는 나더러 액을 막으라고 한 거잖아… 난 시집가서 과부가 되고 싶지는 않단 말이야! 박 씨 가문의 그 비실거리는 남자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잖아!”
  • 잔뜩 흥분한 딸의 모습에 강상국은 급히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 “알아. 아빠도 널 그 집에 시집보내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그래서 강소원 그 아이를 부른 거잖니. 지금 이미 서울에 와있다는 건 그 5%의 주식이 엄청 가지고 싶다는 거겠지. 그걸 가져간 뒤에는 자연스레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거야. 시집을 갈지 말지는 걔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 강상국이 이와 같이 약속을 하자 강은설은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히고 어머니인 임수연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 무언가 속셈이 있는 듯, 두 모녀의 눈에 만족스러움과 탐욕이 드러났다.
  • 그녀들에게 5%의 주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현금으로 환산해 봤자 기껏해야 몇억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박 씨 가문에서 주기로 약속한 돈과 예물의 가치는 수백억은 훨씬 넘을 것이었다.
  • 가장 중요한 건, 강소원 하나를 희생시키면 그들 일가족이 부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거였다. 말 그대로 일거양득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