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씨 가문의 속셈을 모르는 강소원은 그 한 번의 통화로 졸음이 완전히 사라져 버려 차라리 자신의 세 아이들을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밥이라도 먹을 생각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안방 밖에도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한창 궁금해하고 있던 그때,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세 꼬맹이들이 돌아온 것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던 승빈이는 잠옷 차림으로 소파옆에 서있는 강소원을 발견하자 곧바로 잰걸음으로 그녀에게 달려가 다정하게 물었다.
“엄마, 일어났네? 잘 잤어?”
이에 강소원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승빈이 덕분에 엄청 잘 잤어! 그보다, 너희들 어딜 갔었던 거야? 밖에서는 또 어떻게 들어온 거고? 엄마가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잖아.”
“내가 배고프다고 해서 오빠들이 날 데리고 레스토랑에 밥 먹으러 갔었던 거야, 엄마! 우리가 엄마 주려고 엄마가 좋아하는 요리도 챙겨 왔는걸…”
승아가 그녀에게 설명해 주며 보물을 바치듯 포장해 온 그릇을 열었다. 전부 강소원이 좋아하는 해산물들이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보자마자 배가 고파져왔지만 그럼에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짚고 넘어갔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겠는데 다음부터는 그러면 안 돼! 앞으로는 어디 갈 거면 최소한 엄마한테 미리 말이라도 해줘. 안 그러면 엄마가 걱정되잖아.”
비록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난 지능을 가진 세 아이들이었기에 큰 문제는 없을 테지만 어쨌든 귀국한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에게는 사람들도 낯설고 길도 익숙하지 않을 것이니 그녀는 그 어떤 의외의 상황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다.
이에 세 아이들도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엄마. 다음부터 안 그럴게!”
곧이어 아이들은 목욕을 하러 가라며 강소원을 재촉했다. 그런 아이들의 살가운 태도에 강소원도 더는 따지지 않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가 세수를 한 다음 밖으로 나와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그녀가 식사를 하는 동안 세 꼬맹이들은 그 옆에 앉아 식사를 하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승아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맛있어, 엄마?”
세심한 승민이는 그녀에게 게다리를 하나 집어다 주었다.
“이게 맛있어, 엄마. 한 번 먹어봐.”
그런 두 아이의 모습에 강소원은 아이들도 먹고 싶어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는 물었다.
“엄마랑 같이 좀 더 먹을래?”
그러자 두 꼬맹이는 의외로 고개를 저었다.
“우린 아래에서 엄청 많이 먹어서 더 이상은 배불러서 못 먹겠어.”
그때, 승빈이가 침착하게 카드를 한 장 꺼내 강소원에게 건넸다.
“엄마, 이거 가져.”
“이게 뭔데?”
강소원은 궁금한 듯 그것을 들고 살펴보았다.
그것은 이 호텔의 VIP카드처럼 보였지만 보통의 카드와는 어딘가 달랐다. 일반적인 VIP카드는 금색인데 비해 그 카드는 검은색이었고 테두리에는 자금으로 된 특수한 꽃무늬가 새겨져 있어 왜인지 모를 존귀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승빈이가 말했다.
“그건 호텔의 SVIP카드야. 아까 밥 먹을 때 어떤 아저씨가 승아한테 줬어. 그 아저씨가 몸이 안 좋아서 승아가 침을 놔줬거든. 그래서 고맙다면서 준 거야. 들어 보니까 이걸 쓰면 특권을 누릴 수 있다더라고. 예를 들면 숙박이랑 식사는 전부 무료인 데다, 위층에 올라가면 스파도 있고 최고의 마사지사한테 전신 케어 서비스도 받을 수 있대. 그래서 내 생각엔, 엄마는 평소에도 힘들게 일하고 이번에는 또 그렇게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왔으니까, 엄마가 갔으면 좋겠어. 피로도 풀 겸 말이야.”
그 말에 강소원은 마음이 따듯해져 왔다. 그녀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이런 좋은 일이 생길 줄은 생각도 못했네. 너희들 정말 대단해!”
이에 승빈이는 입술을 오므린 채 웃음 지었다. 하지만 아이의 시선은 옆에 있는 동생들에게 향했고 아이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세 아이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 마음이 통한 듯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엄마와 ‘아빠’를 이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빠’가 다른 사람과 약혼을 해버리기 전에 두 사람 사이에 그 어떤 불꽃을 피워내야 했다.
또한 그 카드는 전 호텔에서 오직 박우진만 갖고 있는 것이었고. 강소원이 갖고 있는 것이 바로 두 번째 장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오늘 밤 어떻게 해서든 엄마와 ‘아빠’를 만나게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 꼬맹이들의 속셈을 강소원은 알리가 없었다.
조금 뒤, 시간을 보던 그녀는 갈아입을 옷가지들을 챙겨 목욕 갈 준비를 했다. 방을 나서기 전, 그녀는 세 아이들을 불렀다.
“너희도 엄마랑 같이 갈 거지?”
그러자 아이들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엄마. 우린 오늘 밤에 누구랑 같이 게임하기로 했는데 약속한 시간이 다 돼서 그냥 엄마 혼자 가. 가서 제대로 누리고 와. 우린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각자 휴대폰 하나씩을 손에 들고 게임할 준비를 하고 있는 세 아이의 모습에 강소원도 강요하지 않았다.
이내, 그녀는 스파센터에 도착했다. 그곳을 담당하는 직원은 그녀의 손에 들린 SVIP카드를 보자 바짝 긴장하며 곧바로 그녀를 한 넓고 호화로운 탈의실로 안내했다.
실내에는 마사지 침대와 마사지 기구들, 그리고 각종 에센셜 오일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안쪽에 있는 욕탕은 호텔의 가장 귀하신 손님만 이용 권한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프라이빗하고 누구에게 방해받을 일 또한 없을 겁니다. 반신욕을 마치신 후엔 옆에 있는 사우나에서 찜질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다만 너무 오래 안에 계시지는 마시고요. 그 밖에 가운과 타월은 다 장롱 안에 있으니 직접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준비가 되셨으면 벽에 있는 벨을 눌러주세요. 그럼 저희 호텔 최고의 마사지사가 서비스해드리러 올 겁니다.”
직원이 친절하게 강소원에게 이것저것들을 소개해주었다.
“네, 알겠어요. 고마워요.”
강소원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대꾸했다.
곧이어 직원이 방에서 나가고 문이 닫히자 강소원은 또 한 번 실내를 한 바퀴 더 훑어보고 나서야 옷을 벗고 장롱에서 타월을 한 장 꺼내 몸에 둘렀다. 그런 다음 그녀는 욕탕으로 향했다…
같은 시각, 탈의실과 고작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욕탕 안에서, 박우진은 한창 고개를 젖힌 채 눈을 감고 따듯한 물이 가져다주는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수면을 자욱하게 에워싸고 있는 옅은 안개가 그를 마치 구름 사이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뿌연 안개 사이로 그의 탄탄한 가슴과 상반신이 보였고 물아래로는 완벽하게 갈라져 있는 복근과 아름다운 치골이 보일 듯 말 듯했으며, 섹시한 쇄골과 목젖은 고개를 젖힌 상태에서 완벽한 곡선을 그려내며 더더욱 매혹적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