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 남자는 침대에 조용히 누운 채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요사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얼굴에 부자연스러운 붉은색이 감돌고 있는 그의 모습은 굉장히 허약해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세 꼬맹이들은 마음을 졸이며 황급히 강소원을 이끌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엄마, 빨리 살펴봐봐.”
이에 남자를 한번 힐긋 쳐다본 강소원은 생각했다.
‘잠들어 있을 때는 꽤 착해 보이네. 어젯밤 그 사납던 모습보다는 훨씬 보기 좋잖아!’
그녀는 시간낭비 하지 않고 재빨리 침대 옆에 앉아 그의 맥을 짚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예쁜 눈썹이 바로 일그러졌다.
남자의 맥은 미약하고 혼란했다. 마치 언제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그의 맥은 어떻게 보아도 일반적인 발열 증상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었던 강소원은 다시 한번 더 자세히 맥을 짚어보았다.
그런 다음 또 손을 뻗어 박우진의 눈꺼풀을 뒤집어 보기도 했다.
잠시 후,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상황은… 정말이지 극도로 심각했다! 그의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생명력이 거의 다 닳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열한 번 난 것만으로도 죽음의 문턱을 들락날락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강소원은 곧바로 손을 놓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람이 이지경이 됐는데 왜 아직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지 않은 거죠? 숨이 넘어가길 기다리실 생각인가요?”
그 말에 민은호는 대경실색하며 물었다.
“그 말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 대표님께선…”
그녀의 말을 들은 세 아이들의 안색 역시 미세하게 변화했다.
“엄마, 많이 심각한 거야?”
“당연히 심각하지! 애초에 체질 자체가 좋지 않은 상태야. 보아하니 뭔가 안 좋은 약물이나 독에 의해 몸이 망가졌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미 간당간당 하다고. 평소에 감기에 걸리거나 열이 나지 않는 상태라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일단 발열이 있으면 그건 말 그대로 죽음을 재촉하는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야…”
강소원은 굉장한 속도로 박우진의 상태에 대한 설명을 쏟아냈다.
그 말에 민은호는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만 같았다. 항상 침착한 성격이었던 그가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럼 어떡하죠? 지금 당장 병원으로 모셔가야 할까요? 대표님께서는 꽤 오랫동안 발열이 없으셨단 말입니다. 이제껏 항상 조심해 가며 몸을 챙기고 있었는데… 목숨이 위태로우신 겁니까?”
“이제 와서 병원으로 데려가기엔 이미 늦었고, 지금 당장 이곳에서 응급조치를 하는 수밖에 없겠어요!”
강소원은 쓸데없는 말들은 제쳐두고 곧바로 민은호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를 도와 이 사람의 옷을 벗기세요. 어서요.”
그리고는 몸을 돌려 자신의 캐리어를 연 다음 그 안에서 고급 의료상자를 하나 꺼냈다. 상자를 열자 안에는 수많은 의료기구들과 약물들이 들어있었다.
강소원은 그 안에서 양피지를 말아놓은 것 같이 생긴 물건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것을 펼치자 안에는 들쭉날쭉하게 수백 개의 은침이 꽂혀있었다. 이를 본 민은호는 조금 놀란 듯 물었다.
“선생님, 그건…?”
‘치료를 한다며? 그 침들로 뭘 하려는 거지?’
“응급처치요!”
강소원은 쓸데없는 말들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쪽 대표님의 지금 상태로는 약을 삼킬 수 있을지 없을지부터가 문제예요. 게다가 제가 가지고 있는 약제들도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는 게 아니라서 약물 주사도 불가능하고요. 이 방법밖에는 없어요. 그러니 빨리 움직이세요!”
민은호는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는 의사라고 하는 그녀의 대처가 맞는 것인지 걱정되었다.
침을 놓는 방식으로 발열증세를 치료한다는 말을 그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 의료팀은 아직 도착 전이었기에 그는 마지막 한줄기 희망을 품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박우진의 옷을 벗겨냈다. 그러자 이내 남자의 탄탄한 몸이 눈앞에 드러났다.
이에 자기도 모르게 그의 몸을 힐끔 쳐다본 강소원은 그가 아마 평소에도 필요한 운동은 계속하고 있었을 것이고, 거기에 더해 전문 의료팀이 케어를 해주고 있었기에 그나마 이러한 몸선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그의 망가진 몸상태로는 이미 오래전에 바짝 말라 뼈밖에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는 어쩌면 지금 이때까지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소원은 잡념을 떨쳐버리고 이내 침을 놓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은 굉장히 빨랐다.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도 없이 그녀는 혈자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민은호는 보고도 아는 것이 없으니 그저 마음이 조마조마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그 분야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분명 강소원이 찌른 자리가 거의 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혈자리들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어떤 실수나 의외의 상황이라도 발생하게 된다면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강소원이 치료하고 있는 건 애초에 발열증상도 아니었다. 그녀가 하고 있는 건 남자의 몸상태를 안정시켜 우선적으로 넘어가기 직전인 그 마지막 숨을 다시 붙잡아오는 작업이었다. 다른 치료는 그가 정신을 차린 뒤에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