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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아빠가 생기게 될 거야

  •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강소원은 해외에 있는 고모 강상희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강 씨 집안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말해주었다.
  • 그녀의 말을 다 듣고 난 강상희는 실망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 “오빠가 너더러 돌아오라고 한 이유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거라는 건 나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런 이유일 줄이야… 그 사람은 정말이지 네 행복을 고려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구나!”
  • 하지만 강소원은 이에 대해 그다지 큰 감회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강상국에게 그 어떤 희망도 품고 있지 않았다.
  • 만약 그 사람이 정말 그녀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6년 전 그때 그녀를 그렇게 집에서 쫓아내지도 않았을 것이고 지난 6년 동안 그녀의 소식에 그토록 무관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 만약 이번에 그녀에게 그나마 조금의 이용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 자신에게 딸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조차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 강소원은 속으로는 온갖 조롱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평온한 얼굴로 강상희를 위로해주기까지 했다.
  • “괜찮아, 고모. 어차피 그 혼약, 난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친어머니가 나한테 남겨주신 주식은 내 방식으로 되찾아 올 거고! 그건 내거니까, 아무도 가져갈 수 없어.”
  • “그래, 고모는 널 믿어.”
  • 강상희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조카딸이 마냥 안타깝기만 했다.
  • 지난 몇 년간 강소원은 너무 많은 고난들을 겪었었다. 강상국은 정말이지 너무도 모질었다.
  • 강소원 본인이 애쓰지 않았다면 그녀의 처지가 어느 정도까지 처참해졌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 이에 강상희는 화도 나고 강상국이 증오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런 속상한 일들을 다시 들추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강소원의 마음만 아프게 할 뿐이었기에 그녀는 차라리 화제를 전환했다.
  • “귀국하고 적응은 잘 되니? 지낼 곳은 찾았고? 우리 착한 세 손주들은 어떻게 지내?”
  • 이에 강소원은 웃으며 말했다.
  • “이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아직까지는 다 괜찮아! 집은 아직 못 구했고. 승빈이가 집안의 모든 자금이 동결상태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잠시동안은 집을 장만할 돈이 없어서 아직 호텔에서 지내고 있어요. 며칠 셋집을 알아보려고… 세 꼬맹이들이라면 너무 잘 지내고 있어. 시시각각 어디 재미있는 곳 없나, 뭐 맛있는 것 없나 계획하면서 공략을 열몇 가지나 만들어 놨다니까. 걔들은 여행하려고 돌아온 것 같아.”
  • 이에 강상희는 웃음을 터트렸다.
  • “떠난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벌써 너희들이 보고 싶구나… 집은 고모가 해결해 줄게! 내 친구가 최근에 해외에 정착하게 되면서 새 별장이 한 채 있는 걸 내놨다고 하더라고. 위치도 괜찮고 안에 있는 가구들도 전부 새 거라서 우선 거기 들어가서 지내도 돼. 돈은 자금이 풀리면 그때 다시 주면 되고. 그때 겸사겸사 소유권 이전도 하고 말이야.”
  • 그 말에 고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강소원은 사실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 씨 가문에서 계획한 그 혼사가 생각난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결국 동의했다.
  • 그리고 그녀는 박 씨 가문의 치료 의뢰는 거절할 생각이었다. 박 씨 가문에게 무언가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강 씨 가문과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에 강소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 “고마워, 고모.”
  • 이에 강상희가 그녀를 나무랐다.
  • “너 이 녀석, 나한테까지 뭘 그렇게 예의를 차리고 그러니?”
  • 강소원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마음이 따듯해져 왔다. 두 사람은 그 뒤로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고는 통화를 끝마쳤다.
  • 하지만 멀리 Y국에 있는 고모가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강승빈에게 메시지를 한 통 보냈다는 것을 강소원은 모르고 있었다.
  • “승빈아, 네가 부탁한 일은 이미 해결해 놨어! 집 대금도 이미 다 지불했고. 에듀타운 2번지 말이야! 그런데, 이 일을 왜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려는 거니? 너희 셋이서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거야?”
  • 메시지를 확인한 강승빈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드러났다. 아이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엄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요.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모할머니. 비밀은 꼭 지켜주셔야 해요…”
  • 메시지를 확인한 강상희의 대답은 당연하게도 승낙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강승빈이 콕 집어 그 집을 원한 저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 그 이유는… 박우진이 바로 에듀타운 1동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2동의 바로 옆 집 말이다!
  • ……
  • 강소원은 그런 것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호텔로 돌아간 뒤, 가장 먼저 승민이를 찾았다.
  • “엄마 대신 박 씨 가문의 그 의뢰를 거절해 줘.”
  • 그 말을 들은 세 꼬맹이들은 깜짝 놀랐다. 그나마 침착했던 승빈이가 곧바로 그녀에게 물었다.
  • “왜, 엄마? 그 의뢰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 “그런 건 아닌데… 어떤 이유 때문에 수락하기 싫어졌어. 박 씨 가문더러 더 훌륭한 분을 찾아보라고 하지 뭐! 그 사람들의 재력이면 좋은 의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잖아.”
  • 강소원은 아이들에게 그런 기분 잡치는 일에 대해서는 말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승민이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듯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 “엄마, 잘 생각해야 해. 자그마치 100억이라고. 정말 마다할 거야? 게다가 우린 이미 의뢰를 수락했잖아. 이제 와서 갑자기 번복하면 신뢰를 잃게 될 거고, 그러면 우리 평판에도 안 좋아.”
  • 승아도 이에 가세했다.
  • “그래, 엄마.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건 안 좋아. 게다가 박 씨 가문의 그분, 듣자 하니 몸상태가 굉장히 안 좋다던데. 분명 더 이상 방법이 없으니까 엄마를 찾아온 걸 거야. 엄마는 의사잖아.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게 그 어떤 일보다도 더 중요한 거잖아…”
  • 아이들의 말에 강소원은 마음이 켕겼다. 그녀 역시 이제 와서 거절하는 것이 그다지 좋은 모양새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하지만 강 씨 가문의 수작질에 그녀는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그 집안과 엮인다면 좋을 게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결정을 고집했다.
  • “미안해, 얘들아. 정말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래. 그러니까 이 의뢰는… 우리 받지 말자. 나중에 엄마가 꼭 무슨 수를 써서든 돈을 많이 벌어올게, 응? 게다가… 앞으로 엄마는 고모할머니의 연구소에 출근도 해야 하니까 엄청 바쁠 거야. 따로 의뢰를 받을 정신도 없을 거고.”
  • 이미 마음을 정한 듯한 그녀의 모습에 세 아이들 역시 순간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 결국, 승빈이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 “알겠어, 엄마. 엄마가 그렇게 결정했다니까 우리는 엄마 의견에 따를게.”
  • 어차피 ‘아빠’와 이웃이 될 테니 앞으로도 서로 마주칠 기회는 많을 것이다. 그러니 치료도 하게 될 거고, 아빠도 생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