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강소원은 해외에 있는 고모 강상희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강 씨 집안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말해주었다.
그녀의 말을 다 듣고 난 강상희는 실망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가 너더러 돌아오라고 한 이유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거라는 건 나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런 이유일 줄이야… 그 사람은 정말이지 네 행복을 고려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구나!”
하지만 강소원은 이에 대해 그다지 큰 감회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강상국에게 그 어떤 희망도 품고 있지 않았다.
만약 그 사람이 정말 그녀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6년 전 그때 그녀를 그렇게 집에서 쫓아내지도 않았을 것이고 지난 6년 동안 그녀의 소식에 그토록 무관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번에 그녀에게 그나마 조금의 이용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 자신에게 딸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조차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강소원은 속으로는 온갖 조롱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평온한 얼굴로 강상희를 위로해주기까지 했다.
“괜찮아, 고모. 어차피 그 혼약, 난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친어머니가 나한테 남겨주신 주식은 내 방식으로 되찾아 올 거고! 그건 내거니까, 아무도 가져갈 수 없어.”
“그래, 고모는 널 믿어.”
강상희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조카딸이 마냥 안타깝기만 했다.
지난 몇 년간 강소원은 너무 많은 고난들을 겪었었다. 강상국은 정말이지 너무도 모질었다.
강소원 본인이 애쓰지 않았다면 그녀의 처지가 어느 정도까지 처참해졌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에 강상희는 화도 나고 강상국이 증오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런 속상한 일들을 다시 들추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강소원의 마음만 아프게 할 뿐이었기에 그녀는 차라리 화제를 전환했다.
“귀국하고 적응은 잘 되니? 지낼 곳은 찾았고? 우리 착한 세 손주들은 어떻게 지내?”
이에 강소원은 웃으며 말했다.
“이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아직까지는 다 괜찮아! 집은 아직 못 구했고. 승빈이가 집안의 모든 자금이 동결상태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잠시동안은 집을 장만할 돈이 없어서 아직 호텔에서 지내고 있어요. 며칠 셋집을 알아보려고… 세 꼬맹이들이라면 너무 잘 지내고 있어. 시시각각 어디 재미있는 곳 없나, 뭐 맛있는 것 없나 계획하면서 공략을 열몇 가지나 만들어 놨다니까. 걔들은 여행하려고 돌아온 것 같아.”
이에 강상희는 웃음을 터트렸다.
“떠난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벌써 너희들이 보고 싶구나… 집은 고모가 해결해 줄게! 내 친구가 최근에 해외에 정착하게 되면서 새 별장이 한 채 있는 걸 내놨다고 하더라고. 위치도 괜찮고 안에 있는 가구들도 전부 새 거라서 우선 거기 들어가서 지내도 돼. 돈은 자금이 풀리면 그때 다시 주면 되고. 그때 겸사겸사 소유권 이전도 하고 말이야.”
그 말에 고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강소원은 사실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 씨 가문에서 계획한 그 혼사가 생각난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결국 동의했다.
그리고 그녀는 박 씨 가문의 치료 의뢰는 거절할 생각이었다. 박 씨 가문에게 무언가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강 씨 가문과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에 강소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고모.”
이에 강상희가 그녀를 나무랐다.
“너 이 녀석, 나한테까지 뭘 그렇게 예의를 차리고 그러니?”
강소원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마음이 따듯해져 왔다. 두 사람은 그 뒤로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고는 통화를 끝마쳤다.
하지만 멀리 Y국에 있는 고모가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강승빈에게 메시지를 한 통 보냈다는 것을 강소원은 모르고 있었다.
“승빈아, 네가 부탁한 일은 이미 해결해 놨어! 집 대금도 이미 다 지불했고. 에듀타운 2번지 말이야! 그런데, 이 일을 왜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려는 거니? 너희 셋이서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거야?”
메시지를 확인한 강승빈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드러났다. 아이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엄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요.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모할머니. 비밀은 꼭 지켜주셔야 해요…”
메시지를 확인한 강상희의 대답은 당연하게도 승낙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강승빈이 콕 집어 그 집을 원한 저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박우진이 바로 에듀타운 1동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2동의 바로 옆 집 말이다!
……
강소원은 그런 것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호텔로 돌아간 뒤, 가장 먼저 승민이를 찾았다.
“엄마 대신 박 씨 가문의 그 의뢰를 거절해 줘.”
그 말을 들은 세 꼬맹이들은 깜짝 놀랐다. 그나마 침착했던 승빈이가 곧바로 그녀에게 물었다.
“왜, 엄마? 그 의뢰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그런 건 아닌데… 어떤 이유 때문에 수락하기 싫어졌어. 박 씨 가문더러 더 훌륭한 분을 찾아보라고 하지 뭐! 그 사람들의 재력이면 좋은 의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잖아.”
강소원은 아이들에게 그런 기분 잡치는 일에 대해서는 말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승민이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듯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엄마, 잘 생각해야 해. 자그마치 100억이라고. 정말 마다할 거야? 게다가 우린 이미 의뢰를 수락했잖아. 이제 와서 갑자기 번복하면 신뢰를 잃게 될 거고, 그러면 우리 평판에도 안 좋아.”
승아도 이에 가세했다.
“그래, 엄마.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건 안 좋아. 게다가 박 씨 가문의 그분, 듣자 하니 몸상태가 굉장히 안 좋다던데. 분명 더 이상 방법이 없으니까 엄마를 찾아온 걸 거야. 엄마는 의사잖아.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게 그 어떤 일보다도 더 중요한 거잖아…”
아이들의 말에 강소원은 마음이 켕겼다. 그녀 역시 이제 와서 거절하는 것이 그다지 좋은 모양새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 씨 가문의 수작질에 그녀는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그 집안과 엮인다면 좋을 게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결정을 고집했다.
“미안해, 얘들아. 정말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래. 그러니까 이 의뢰는… 우리 받지 말자. 나중에 엄마가 꼭 무슨 수를 써서든 돈을 많이 벌어올게, 응? 게다가… 앞으로 엄마는 고모할머니의 연구소에 출근도 해야 하니까 엄청 바쁠 거야. 따로 의뢰를 받을 정신도 없을 거고.”
이미 마음을 정한 듯한 그녀의 모습에 세 아이들 역시 순간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승빈이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알겠어, 엄마. 엄마가 그렇게 결정했다니까 우리는 엄마 의견에 따를게.”
어차피 ‘아빠’와 이웃이 될 테니 앞으로도 서로 마주칠 기회는 많을 것이다. 그러니 치료도 하게 될 거고, 아빠도 생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