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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아빠를 만났다

  • 그 시각, 같은 호텔의 다른 스위트룸 안, 막 잠에서 깨어난 박우진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 그의 준수한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간간히 해대는 기침이 조금 창백한듯한 안색의 그를 더욱 수척해 보이게 했다.
  • 하지만 그런 아파 보이는 모습에도 그의 온몸에 감도는 귀티는 감춰지지 않았다.
  • 깨어난 그를 발견한 비서 민은호가 급히 인삼차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 “물 한 모금 들이켜세요, 대표님.”
  • 이에 박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받아 들어 한 모금 들이켜고는 물었다.
  • “지금 몇 시야?”
  • 민은호가 대답했다.
  • “오후 세시입니다.”
  • 박우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6시간 동안 기절하듯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 하지만 그럼에도 몸의 피로가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온몸이 더욱더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의 몸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져가고 있었다. 이에 민은호는 걱정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 “지난 며칠 동안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내내 일만 하시고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않으셨잖아요. 이제부터는 바쁜 일은 잠시 손에서 내려놓으시는 게 어떠십니까? 회사의 일은 제가 이미 다 처리해 놨습니다.”
  • 침대에서 일어난 박우진은 아랑곳 않고 옷깃을 정리하며 차갑게 말했다.
  • “아무리 오래 자도 좋아지지 않을 거야. 내 몸은 내가 알아.”
  • 민은호는 당장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확실히 박우진의 몸상태는 굉장히 나빴다.
  •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의사들이 그를 거쳐갔지만 끝내 근본적인 치료는 받지 못했었다.
  •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다행히 이번에는 드디어 해외의 그 신의를 찾아낸 것이다.
  • 민은호는 급히 이 사실을 박우진에게 보고했다.
  • “저희가 전부터 계속 찾고 있던 그 신의 말입니다. 드디어 소식이 왔습니다. 그쪽에서 대표님을 치료하겠다며 의뢰를 수락했습니다. 그러니까 대표님, 몸 꼭 잘 챙기셔야 해요.”
  • 하지만 이를 들은 박우진은 그다지 기쁘지는 않은 눈치였다.
  • “찾아냈다 하더라도 소용이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겠지. 그 의사 말이야. 소문은 꽤 신통하게 났지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어? 게다가 세계 최고의 의사들이란 의사들한테 다 치료를 받았어도 나의 이 몸상태는 끝내 완전히 치료되지 않았어. 그런데 그 사람은 가능할 거란 보장이 없잖아…”
  • 그러자 민은호가 말했다.
  • “그건 시도해 봐야 아는 거죠! 그리고… 회장님께서 아무래도 이미 대표님의 신붓감을 물색해 놓으신 것 같습니다. 대표님을 위한… 액막이 차원이라고 하시면서요.”
  • 그 말에 박우진은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 ‘내가 죽은 것도 아닌데, 그 늙은이는 무슨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거야?’
  • “이번엔 누군데?”
  • 박우진의 말투는 상당히 나빴다. 이에 잠시 망설이던 민은호가 입을 열었다.
  • “강 씨 가문의 강은설 아가씨랍니다.”
  • 그러자 박우진의 미간에 패인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지시했다.
  • “뭐라도 방법을 대서 이 일은 거절하도록 해.”
  • 이에 민은호는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 “이 일은 아무래도 대표님께서 직접 회장님께 말씀드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 박 회장의 결정은 박우진 조차도 어쩌지 못하는데 일개 비서인 그가 무슨 수가 있겠는가?
  • 이에 차갑게 굳어있던 박우진의 안색이 더욱더 안 좋아졌다. 기침 또한 점점 더 격해져 갔다.
  • 민은호는 혹시라도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다급히 그의 등을 두드려주며 화제를 돌렸다.
  • “아직 몸이 안 좋으시니 화를 내시면 안 됩니다. 일단 푹 쉬세요. 제가 룸서비스를 불러드릴까요?”
  • 박우진은 손을 내저었다.
  • “그럴 거 없어… 내려가서 먹을 거야. 겸사겸사 바람도 좀 쐬고.”
  • ……
  • 다른 한쪽의 스위트룸 안. 너무 피곤했던 강소원은 결국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이에 강승빈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목소리를 낮추며 두 동생들에게 말했다.
  • “엄마 잠들었으니까 너희들 조용히 해. 엄마가 깨지 않게.”
  • 그 말에 승민이와 승아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들 발소리를 죽이며 방을 빠져나갔다.
  • 밖으로 나온 뒤, 승아는 곧바로 승빈이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귀여운 목소리로 애교를 부렸다.
  • “오빠, 나 배고파. 뭐라도 좀 먹고 싶어.”
  • “나도 배고파! 내가 귀국하기 전에 찾아봤는데, 여기 레스토랑 음식이 일품이래. 주방장이 국빈만찬의 음식을 담당했던 사람이라더라고. 우리도 내려가서 먹어보자!”
  • 승민이도 배가 고팠는지 절실한 눈빛으로 형을 바라보았다. 이에 강승빈은 사뭇 어른스러운 척 잠시 심사숙고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내려간 김에 엄마 것도 좀 챙겨 오자. 자고 일어나면 분명 배고프실 거야.”
  • 그 말에 강승민과 강승아는 곧바로 작은 소리로 환호했다. 그리하여 세 아이들은 방 카드를 챙겨 서로 손을 잡고서 밥을 먹으러 아래층으로 향했다.
  • 호텔 레스토랑은 1층에 있었는데 지금 시간에는 식사를 하러 오는 손님들이 꽤 많아 거의 만석인 상태였다.
  • 레스토랑에 들어선 세 꼬맹이들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빈자리를 찾아보았지만 당장은 비어있는 테이블이 없었다.
  • 그런 아이들을 발견한 종업원이 올망졸망 예쁘게 생긴 세 아이의 모습에 참지 못하고 다가와 다정하게 물었다.
  • “얘들아, 왜 여기 서있는 거니? 부모님을 찾고 있는 거야?”
  • 이에 강승빈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 “아니요. 저희들끼리 내려온 거예요. 배가 고파서요. 엄마는 피곤해서 방에서 쉬고 계세요. 그런데… 자리가 없는 것 같네요.”
  • 그제야 아이의 손에 들려있는 스위트룸 키카드가 종업원의 눈에 들어왔다.
  • 이 아이들은 호텔의 VIP손님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손님들을 소홀히 대할 수 없었던 종업원은 곧바로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 “내가 빈 테이블이 있나 찾아볼 테니까 이곳에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을래? 여긴 사람들이 많아서 길을 잃을 수도 있어.”
  • 강승빈이 고개를 끄덕이려던 순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승민이가 갑자기 그의 손을 잡아끌며 소곤거렸다.
  • “형, 저 사람 좀 봐봐… 대진 그룹 그 사람 아니야?”
  • 그 말에 강승빈도 자연스레 승민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 역시나,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박우진의 모습이 보였다. 이에 아이의 두 눈이 순간 반짝였다.
  • “그 사람이야!”
  • 아이들이 아빠로 의심하고 있는 그 사람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그들이 찾아가기도 전에 이런 곳에서 그를 마주치다니, 이것이 바로 인연이 아닐까 싶었다.
  • 강승빈은 곧바로 결단을 내리고는 종업원을 불러 세웠다.
  • “아저씨… 지금 한창 피크타임이라 빈자리가 없는 것 같은데 합석을 하면 어떨까요? 저쪽… 저 테이블은 두 사람 밖에 없으니까 가서 물어봐 주시면 안 돼요?”
  • 이에 거절할 수가 없었던 종업원은 곧바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내 그는 박우진이 앉아있는 테이블 앞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죄송하지만, 손님,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지금 한창 피크타임이라 저쪽에 세 꼬마들이 당장은 앉을만한 자리가 없어서 그런데, 혹시 괜찮으시면 아이들과 합석하셔도 되겠습니까?”
  • ‘합석?’
  • 종업원의 말에 박우진은 곧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옮겨 멀지 않은 곳에 서있는 세 꼬맹이들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