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원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녀는 그때까지만 해도 욕탕 안에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물속에 앉아있는 박우진의 실루엣을 주변의 의자와 탁자가 막고 있기까지 했던 터라 그녀는 그렇게 까지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은 채 곧바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첨벙’ 하는 가벼운 물소리에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박우진은 깜짝 놀랐다. 그는 잔뜩 경계하며 눈을 떴다.
하지만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건 하얗고 늘씬한 두 다리였다. 다리를 따라 시선을 위로 옮기자 눈에 보인 것은 가녀리면서도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었다.
아슬아슬하게 허벅지를 덮고 있는 하얀색의 타월 위로 가늘고 하얀 목덜미와 쇄골이 한눈에 들어왔다.
더 위로 시선을 옮기니 지나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
그때, 그녀 역시 뒤늦게 그를 발견하고는 반짝이는 두 눈이 놀라움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당신 누구야?”
잠시 멍하니 있던 박우진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사나운 목소리로 추궁했다. 이곳은 오직 그에게만 출입 권한이 있는 곳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아예 들어올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현재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여자 하나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
이에 예전의 경험을 토대로 그는 눈앞의 이 여자가 허튼수작을 꾀하고 있거나, 그런 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보낸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상황들을 수도 없이 겪어왔던 그였기에 그는 바로 위험하게 눈을 찡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여긴 뭘 하려고 온 거지?”
그 말에 강소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긴 당연히 반신욕을 하러 왔죠… 그보다, 당신은 누구시죠? 왜 여기 계시는 거예요?”
‘방금 전 그 직원이 분명 이곳은 굉장히 프라이빗한 곳이라 다른 사람은 못 들어온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이 남자는 뭐지?’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박우진의 목소리가 더욱더 차갑게 얼어붙었다.
“여긴 내 구역이야. 그런데 내가 왜 여기 있냐고? 누가 당신을 이곳에 들여보낸 거지?”
박우진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번뜩이더니 말을 함과 동시에 그는 미처 막아낼 새도 없이 강소원의 손목을 움켜잡으며 어떠한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말해봐!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그가 손을 쓸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던 강소원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그녀는 다소 불쾌한 듯 말했다.
“당신 피해망상 있는 거 아니에요? 이곳에 반신욕을 하러 왔지 뭘 하러 왔겠어요? 이거 놔요!”
그녀는 그의 손을 떨쳐내려 시도했다. 하지만 남자의 강한 힘에 그녀는 도저히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박우진은 그녀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이제껏 나한테 접근하려고 시도했던 여자들도 다 그런 식이었어! 여러 가지 수법들을 질릴 만큼 많이 봤지. 그런데 무슨 재간인지는 몰라도 내 개인공간에 발을 들인 건 당신뿐이야! 조언 하나 하자면, 눈치껏 바른대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는 위험하게 말끝을 흐리며 손에 더욱 힘을 실었다. 그 힘에 강소원은 금방이라도 손목이 끊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이 정신 나간 놈이, 이 손이 얼마나 귀한 손인지 알아?!!’
이에 강소원 역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대로 서서 당해줄 생각은 없었던 그녀는 갑자기 다리를 들어 올려 남자가 있는 곳을 향해 공격을 가했다.
그녀는 빠르고 정확한 동작으로 가차 없이 남자의 사타구니를 향해 곧게 발을 뻗었다.
그녀가 반격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박우진은 재빨리 손을 놓고 그녀의 발길질을 피했다. 그 틈에 강소원은 몸을 일으켜 뒷걸음치며 그와의 거리를 벌리려 했다.
하지만 박우진이 굳은 얼굴로 다시금 그녀를 향해 다가가자 이에 놀란 강소원은 발이 미끄러지더니 순간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졌다.
“악!”
그녀는 짤막한 비명을 내지르며 뭐라도 잡으려고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적였다.
이에 박우진이 흠칫 놀라며 반사적으로 그녀를 잡아당기려 했지만 그가 붙잡을 수 있었던 건 타월의 한쪽 끄트머리뿐이었다.
이윽고… 강소원은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타월이 풀려버린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이어, 그녀는 세차게 물속으로 넘어져 버렸다.
첨벙-
그 순간 욕탕 안의 물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게다가 강소원은 재수 없게도 물까지 잔뜩 먹게 되었다.
하지만 겨우 몸을 추슬렀음에도 그녀는 일어서지 못하고 물속에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이에 잔뜩 화가 난 그녀는 눈앞에 있는 이 지나칠 정도로 잘생긴 남자를 이를 갈며 노려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에요!”
그녀는 자신의 중요 부위를 두 손으로 최대한 가리며 쏘아붙였다.
“제가 말했잖아요! 전 여기 반신욕을 하러 온 거라고요! 호텔의 SVIP카드로 떳떳하게 들어온 거예요! 정당하지 못한 수단을 써서 들어온 게 아니란 말이에요! 당신이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요? 당신이 뭔데요? 한 나라의 대통령쯤 되나요? 아니면 어느 나라의 귀족이라도 되시는 거예요? 당신이 아무리 잘생겼다고 해도, 모든 여자들이 그 얼굴을 보고 당신 침대로 뛰어들지는 않는다고요. 아시겠어요?”
도저히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던 강소원은 내뱉는 말 또한 상당히 가차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박우진은 그녀가 그저 튕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몇 마디 조롱하려던 순간, 머릿속에서 갑자기 스치듯 뭔가가 생각났다. 그날 오후 그 귀여운 세 꼬맹이들에게 SVIP카드를 한 장 선물했던 것이 말이다.
그리고 눈앞의 이 여자는 아까는 미처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지금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여자아이와 꽤나 닮은 모습이었다.
이에 박우진은 타월을 손에 들고 돌연 그 자리에 굳은 채로 잠시 망설이더니 물었다.
“당신… 그 SVIP카드 어디서 난 거야?”
“그야 당연히 우리 아들이 준거죠! 설마 내가 당신한테서 훔친 거겠어요?”
강소원은 가차 없이 그를 조롱했다. 하지만 말을 마치고 나니 그녀 역시 뒤늦게 무언가 알아챈 듯 입을 열었다.
“당신… 당신이 바로 오후에 우리 승아가 침을 놓아준 그 ‘아저씨’인가요?”
박우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맞습니다.”
그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대답했다. 항상 조금의 흔들림도 없던 그의 잘생긴 얼굴에 굉장히 보기 드물게 난처한 기색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