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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 강소원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녀는 그때까지만 해도 욕탕 안에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 거기에다 물속에 앉아있는 박우진의 실루엣을 주변의 의자와 탁자가 막고 있기까지 했던 터라 그녀는 그렇게 까지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은 채 곧바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 ‘첨벙’ 하는 가벼운 물소리에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박우진은 깜짝 놀랐다. 그는 잔뜩 경계하며 눈을 떴다.
  • 하지만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건 하얗고 늘씬한 두 다리였다. 다리를 따라 시선을 위로 옮기자 눈에 보인 것은 가녀리면서도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었다.
  • 아슬아슬하게 허벅지를 덮고 있는 하얀색의 타월 위로 가늘고 하얀 목덜미와 쇄골이 한눈에 들어왔다.
  • 더 위로 시선을 옮기니 지나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
  • 그때, 그녀 역시 뒤늦게 그를 발견하고는 반짝이는 두 눈이 놀라움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 “당신 누구야?”
  • 잠시 멍하니 있던 박우진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사나운 목소리로 추궁했다. 이곳은 오직 그에게만 출입 권한이 있는 곳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아예 들어올 수조차 없었다.
  • 하지만 현재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여자 하나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
  • 이에 예전의 경험을 토대로 그는 눈앞의 이 여자가 허튼수작을 꾀하고 있거나, 그런 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보낸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 그런 상황들을 수도 없이 겪어왔던 그였기에 그는 바로 위험하게 눈을 찡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 “여긴 뭘 하려고 온 거지?”
  • 그 말에 강소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여긴 당연히 반신욕을 하러 왔죠… 그보다, 당신은 누구시죠? 왜 여기 계시는 거예요?”
  • ‘방금 전 그 직원이 분명 이곳은 굉장히 프라이빗한 곳이라 다른 사람은 못 들어온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이 남자는 뭐지?’
  •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박우진의 목소리가 더욱더 차갑게 얼어붙었다.
  • “여긴 내 구역이야. 그런데 내가 왜 여기 있냐고? 누가 당신을 이곳에 들여보낸 거지?”
  • 박우진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번뜩이더니 말을 함과 동시에 그는 미처 막아낼 새도 없이 강소원의 손목을 움켜잡으며 어떠한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 “말해봐!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 그가 손을 쓸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던 강소원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그녀는 다소 불쾌한 듯 말했다.
  • “당신 피해망상 있는 거 아니에요? 이곳에 반신욕을 하러 왔지 뭘 하러 왔겠어요? 이거 놔요!”
  • 그녀는 그의 손을 떨쳐내려 시도했다. 하지만 남자의 강한 힘에 그녀는 도저히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 게다가 박우진은 그녀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 “이제껏 나한테 접근하려고 시도했던 여자들도 다 그런 식이었어! 여러 가지 수법들을 질릴 만큼 많이 봤지. 그런데 무슨 재간인지는 몰라도 내 개인공간에 발을 들인 건 당신뿐이야! 조언 하나 하자면, 눈치껏 바른대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 그는 위험하게 말끝을 흐리며 손에 더욱 힘을 실었다. 그 힘에 강소원은 금방이라도 손목이 끊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 ‘이 정신 나간 놈이, 이 손이 얼마나 귀한 손인지 알아?!!’
  • 이에 강소원 역시 화가 나기 시작했다.
  • 그대로 서서 당해줄 생각은 없었던 그녀는 갑자기 다리를 들어 올려 남자가 있는 곳을 향해 공격을 가했다.
  • 그녀는 빠르고 정확한 동작으로 가차 없이 남자의 사타구니를 향해 곧게 발을 뻗었다.
  • 그녀가 반격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박우진은 재빨리 손을 놓고 그녀의 발길질을 피했다. 그 틈에 강소원은 몸을 일으켜 뒷걸음치며 그와의 거리를 벌리려 했다.
  • 하지만 박우진이 굳은 얼굴로 다시금 그녀를 향해 다가가자 이에 놀란 강소원은 발이 미끄러지더니 순간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졌다.
  • “악!”
  • 그녀는 짤막한 비명을 내지르며 뭐라도 잡으려고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적였다.
  • 이에 박우진이 흠칫 놀라며 반사적으로 그녀를 잡아당기려 했지만 그가 붙잡을 수 있었던 건 타월의 한쪽 끄트머리뿐이었다.
  • 이윽고… 강소원은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타월이 풀려버린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이어, 그녀는 세차게 물속으로 넘어져 버렸다.
  • 첨벙-
  • 그 순간 욕탕 안의 물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게다가 강소원은 재수 없게도 물까지 잔뜩 먹게 되었다.
  • 하지만 겨우 몸을 추슬렀음에도 그녀는 일어서지 못하고 물속에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 이에 잔뜩 화가 난 그녀는 눈앞에 있는 이 지나칠 정도로 잘생긴 남자를 이를 갈며 노려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이게 대체 무슨 짓이에요!”
  • 그녀는 자신의 중요 부위를 두 손으로 최대한 가리며 쏘아붙였다.
  • “제가 말했잖아요! 전 여기 반신욕을 하러 온 거라고요! 호텔의 SVIP카드로 떳떳하게 들어온 거예요! 정당하지 못한 수단을 써서 들어온 게 아니란 말이에요! 당신이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요? 당신이 뭔데요? 한 나라의 대통령쯤 되나요? 아니면 어느 나라의 귀족이라도 되시는 거예요? 당신이 아무리 잘생겼다고 해도, 모든 여자들이 그 얼굴을 보고 당신 침대로 뛰어들지는 않는다고요. 아시겠어요?”
  • 도저히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던 강소원은 내뱉는 말 또한 상당히 가차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박우진은 그녀가 그저 튕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이에 몇 마디 조롱하려던 순간, 머릿속에서 갑자기 스치듯 뭔가가 생각났다. 그날 오후 그 귀여운 세 꼬맹이들에게 SVIP카드를 한 장 선물했던 것이 말이다.
  • 그리고 눈앞의 이 여자는 아까는 미처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지금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여자아이와 꽤나 닮은 모습이었다.
  • 이에 박우진은 타월을 손에 들고 돌연 그 자리에 굳은 채로 잠시 망설이더니 물었다.
  • “당신… 그 SVIP카드 어디서 난 거야?”
  • “그야 당연히 우리 아들이 준거죠! 설마 내가 당신한테서 훔친 거겠어요?”
  • 강소원은 가차 없이 그를 조롱했다. 하지만 말을 마치고 나니 그녀 역시 뒤늦게 무언가 알아챈 듯 입을 열었다.
  • “당신… 당신이 바로 오후에 우리 승아가 침을 놓아준 그 ‘아저씨’인가요?”
  • 박우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맞습니다.”
  • 그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대답했다. 항상 조금의 흔들림도 없던 그의 잘생긴 얼굴에 굉장히 보기 드물게 난처한 기색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