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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노코멘트

  • 차우빈은 호탕하게 웃어버렸다.
  • 차가운 손가락이 서희의 창백한 턱을 잡으며 목소리를 낮추어 웃었다.
  • “ 한서희 양, 이 세상에서 나 차우빈이랑 원나잇 한 여자는 부지기수인데! 놀고 승인도 못하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
  • 그의 의미심장한 말에 놀라서 연달아 두 걸음 물러선 서희는 쑥스러움 대신 얼굴이 창백해졌다.
  • 갑자기 음악이 멈췄다.
  • 무도장 밖에는 박수소리가 울렸다.
  • 서희는 위험한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 그는,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 갑자기, 그는 한 발 앞서 서희에게 다가갔다.
  • 큰 손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전혀 조짐이 없이 그녀의 빨간 입술에 키스를 했다.
  • “ 아... ”
  • 주위의 관객들은 모두 놀라서 굳어버렸다.
  • 입술이 떨어졌어도 그녀의 독특한 향기는 여전히 남아있는 듯했다. 블루빛을 띤 눈동자가 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 “ 한서희, 네가 나 차우빈의 노예가 되기 전까지 니 몸을 깨끗이 지키고 있어! 어느 날엔가 꼭 네가 원해서 나의 사람이 되고 ‘ 주인 ’이라고 부르게 할 거니까... ”
  • 말이 끝나자마자 멍한 서희를 남긴 채 차우빈은 고귀한 왕자처럼 무도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 “ 하니, 너무 최고다!! ”
  • 김소아는 흥분하여 무도장으로 들어가 서희를 와락 안았다.
  • “ 난 알고 있었어, 넌 절대로 날 실망시키지 않아! 날 믿어, 넌 꼭 제일 빛나는 스타가 될 거야! 차 씨 도련님도 니 손에 거머쥐었는데 이 작은 연예계가 뭐라고?! ”
  • 서희는 아직 좀 전의 모습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했다. 차우빈과 춤을 추었을 뿐인데 서희는 마치 영혼이 빠져나온 듯 힘이 일도 없었다.
  • “ 소아야, 나 좀 힘들어... ”
  • 말이 끝나자마자 서희는 무도장을 빠져나갔다.
  • 맑은 눈가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당황함이 남겨있었고 입가에는 아직 그 남자의 냄새가 남아있는 듯했다.
  • 청량하고, 차갑고.
  • 서희에게 일본행은 한차례의 악몽이었다.
  • 그로부터 차우빈의 요염한 얼굴은 시도 때도 없이 서희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그가 남긴 마지막 하마디도 생각날 때마다 서희더러 섬뜩하게 하였다.
  • 하지만, 한서희가 생각지 못한 것은 국내에는 더 큰 악몽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 ***********
  • 서희는 무거운 짐을 끌고 현관문밖에 서서 비밀번호를 끊임없이 누르고 있었다.
  • 한번...
  • 두 번...
  • 세 번...
  •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일곱번 여덟번...
  • 그녀는 믿기지가 않은 듯 한번 또 한 번 비밀번호를 누르고었다. 하지만 매번의 음성은 그 한마디였다...
  • “ 입력 착오... ”
  • “ 입력 착오... ”
  • “ ... ”
  •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 서도윤이 몰래 비밀번호를 고쳒다니?!
  • 슬프고 급한 나머지 서희는 핸드백에서 폰을 꺼내더니 손을 떨며 그 남자의 전화를 연결했다.
  • 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서도윤이 아니라 그의 비서였다.
  • “ 그 사람 지금 어디야?? ”
  • 서희의 말투는 차갑지 못해 은은히 떨기까지 하였다.
  • “ 죄송합니다, 한서희 양, 허 보스께서 요즘에 바빠서 전화받을 겨를이 없습니다. ”
  • 이걸 봐, 봐봐!! 그의 비서도 자기 머리 위에서 날뛰는데!!!
  • “ 그 사람보고 전화받으라 해--”
  • 분노에 찬 서희는 폰을 향해 소리쳤다.
  • 그쪽 이 비서도 서희의 큰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의 기억 속에서 이분은 아무런 억울함 속에서도 항상 예의 바르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었기에 이렇게 큰 화를 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 “ 저기...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 이 비서는 서류를 심의하고 있는 서도윤에게 폰을 넘겼다.
  • “ 허 보스, 한서희 양의 전화입니다, 직... 직접 받으시겠나요? ”
  • 비서의 말을 듣은 서도윤은 머리를 들고 눈썹을 찌푸리며 이 비서를 불쾌하게 바라보았다.
  • “ 이런 작은 일도 처리 못하면 너도 있을 필요가 없지 않아? ”
  • “ 이, 이게 아니라... ”
  • 이비서 얼굴이 하얘졌다.
  • “ 보스, 제가 이 년 동안 곁에 있던걸 봐서 저를 용서해주게요... ”
  • 서도윤은 그를 차갑게 노려보더니 그의 손에서 폰을 가져왔다.
  • “ 넌 먼저 나가 있어! ”
  • “ 네... 네네! ”
  • 이 비서는 식은땀을 닦고 사무실에서 급하게 빠져나왔다.
  • “ 무슨 일로 찾은 건데? ”
  • 싫은 티가 많은 서도윤의 말투였다.
  • 이쪽에서, 서희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더니 가슴에 얹힌 화를 눌리고 입을 열었다.
  • “ 서도윤, 비밀번호, 네가 바꾼 거야? ”
  • “ 응! ”
  • 서도윤은 차갑게 웃으며 느긋이 몸을 뒤로 했다.
  • “ 어때? 무슨 문제인데? ”
  • “ 비밀번호 뭐야? ”
  • 한서희는 아픈 마음을 참고 그에게 물었다.
  • “ 노코멘트!! ”
  • 그럴 줄 알았어!!!
  • 이런 답일 줄 알았어!!!
  • 서희는 폰을 잡고 있는 손을 조금씩 조였다.
  • 마음도 따라서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 서도윤, 넌 꼭 날 궁지에 몰아가 갈 길이 없어야 마음이 편한 거야?!
  • “ 비밀번호가 얼만데... ”
  • 그는 소리를 떨며 다시 한번 물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