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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나 그냥 경고하는 거야

  • 밤 두시, 서희는 미친 듯이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들을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 마치 그 망할 몸이 그녀의 마음, 그녀의 사랑을 짓밟아 미련도 없이 냉정하게 쓰레기통에 버려버린 것처럼 말이다...
  • 새벽 다섯 시, 여전히 단잠에 빠져 있는 서도윤을 뒤로한 채 서희는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왔다.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김소아와 매니저들은 그녀의 흐릿한 눈빛에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잠깐 멍해 있던 김소아는 서둘러 그녀의 가녀린 손에 쥐어진 캐리어를 받아 들었다.
  • “ 서희야, 힘내! 한 달만 일본으로 휴가 간다고 생각하자! ”
  • “ 응...”
  • 서희는 김소아의 걱정에 고마움이라도 표하듯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 일곱 시, 비행기는 정각에 출발했고 가는 동안 김소아는 서희와 앞으로 한 달 동안의 일정을 의논해보려 했으나 그녀의 어두운 기색에 한숨을 푹 쉬었고 손에 있던 문서를 한쪽에 제쳐두곤 타이르듯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 “ 서희야, 사실 난 네가 그 망할 놈의 서도윤이랑 이혼한다고 했을 때 굉장히 기뻤어! ”
  • 김소아의 말에 서희의 마음이 움찔했지만 그냥 창문에 기댄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 “ 서희야, 만약 이 허황된 결혼에 얽매이지 않았다면 너도 네 언니처럼 유명해졌을 거야! 이렇게 연예계 밑바닥 생활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
  • 김소아는 서희가 안타까운 듯 말했다.
  • 그렇다! 그녀가 보기엔 한서희는 연예인의 자질을 타고났고 그녀의 언니와 비교해봐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서희는 거절했고 그 이유는 전부 자기 아내가 밖으로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는 그녀의 남편 서도윤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한동안 서도윤을 위하여 연예계 은퇴까지 생각했었고 다행히도 배우가 한서희의 꿈인 걸 알고 있는 김소아의 설득 때문에 은퇴까진 가지 않을 수 있었다.
  • “ 미안해.. .”
  • 서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 “ 넌 분명 훨씬 더 유명한 연예인들의 매니저가 될 수 있었지만 날 포기하지 않았잖아! 소아야, 정말 고마워.. .”
  • 김소아는 웃으며 말했다.
  • “ 그건 내가 네 미래의 가치를 봤기 때문이야! 서희야, 나만 믿어! 넌 분명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될 거야!! 하지만 그전에 더 이상 그 멍청한 서도윤 때문에 네 자신을 망가뜨리지 마! 걔는 그럴 가치가 없는 놈이야!! ”
  • 서희는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 “ 노력할게... ”
  • 얼마 후, 서희는 김소아 예상대로 정상에 올라 가장 빛나는 별이 되었고 서도윤 그리고 그의 내연녀까지 모조리 짓잛아주었다! 물론 전부 나중 일이지만 말이다.
  • ***
  • 일본에서의 다섯 번째 날, 서희의 개인 휴대폰은 여전히 조용했다. 서도윤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도윤은 자라나는 박테리아처럼 그녀의 짓무른 가슴을 갉아먹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더 심해져 갔다.
  • 저녁 잡지 촬영을 끝낸 그녀는 혼자 걷고 싶다는 핑계로 소아에게서 벗어났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거리를 떠돌던 서희는 어느 한 클럽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유리 문을 통해 클럽 안의 떠들썩한 모습을 바라보던 서희의 표정은 극도로 황홀해졌고 자기도 모르게 안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정말 술일 지도 모른다!!
  • 취하면 아무것도 생각 안 나니까! 기억이 없으면 아프지도 않을 테니까!!
  • 서희는 자기가 얼마나 많이 마셨는 지도 모를 만큼 술을 마셨고 지금까지 이렇게 많이 마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술에 취한 서희가 흐릿한 눈빛으로 홀을 바라볼 때면 언제나 몇몇 귀엽게 생긴 남자들이 와서 말을 걸었고 그중 다수가 의도가 좋지만은 않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서희는 그 남자들의 말을 무시한 채 휴대폰을 꺼내어 취기를 빌려 서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 “ 도윤아, 뭐해? ”
  •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물었고 서도윤의 태도는 냉담했다.
  • “ 한서희, 나 지금 바쁘니까 할 말 있으면 내 비서랑 해! ”
  • “ 저녁인데 뭐가 바쁘다고... ”
  • 술을 마신 탓인지 서희는 투정을 부리듯 말했다.
  • “ 항상 비서! 비서! 비서! 서도윤, 내 남편은 너야, 비서가 아니라 흑흑... ”
  • “ 한서희, 취했어? ”
  • 늠연해진 서도윤의 목소리에 서희는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 “ 도윤아, 넌 역시 날 걱정하는구나... ”
  • 그녀는 뿌듯한 듯 미소를 지었다.
  • “ 걱정? ”
  • 서도윤은 차갑게 웃었다.
  • “ 한서희, 경고하는데 술주정할 거면 딴 사람 찾아봐! 난 바빠서 받아줄 시간 없으니까!! 끊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