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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남 잡이가 제 잡이

  • 옆에 있는 구경꾼들의 수군거림을 들은 유인영은 가방을 쥔 손에 힘을 꽉 주며 부들거렸다.
  • “신고할 테면 해 봐!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고! 이 가방, 내가 2천4백만 원 주고 산 거야. 그런데 네가 뭘 안다고 짝퉁이니 뭐니 하는 거야? 돈 없어서 못 물어주겠으면 돈 없다고 하면 될 걸,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
  • 소은정은 원민아와 같이 밥 먹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에 유인영과 함께 경찰서에 갈 시간이 없었다.
  • “유인영, 이 건물에 GC 매장이 있는 거로 알고 있거든? 나랑 같이 가서 직원한테 이 가방이 진품인지, 짝퉁인지 확인해보는 건 어때? 그리고 자꾸 내가 너한테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고 그러는데, 그건 여기 CCTV 확인해 보면 될 거 아니야. 누가 먼저 부딪쳤는지. 동영상 확인하면 바로 답 나오는 거 아니야?”
  • 유인영은 소은정에게 제대로 본때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해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 “그래! 가 보자! 하, 옛정을 생각해서 좋은 마음에 봐주려 했더니 안 되겠어. 네가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는데 나라고 별수 있겠어?”
  • 소은정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 “정말 고맙네. 그런데 우리 사이에 옛정이라고 할 만한 게 있기나 해? 난 잘 모르겠는데.”
  • 소은정은 작은 손으로 휴대폰을 놀고 있는 소연준을 번쩍 안아 들고 유인영과 함께 건물 4층에 있는 GC 매장으로 향했다.
  • 그리고 조금 전 몰려있던 구경꾼 중에서도 몇 명은 슬며시 그들의 뒤를 따랐다.
  • 두 사람의 논쟁이 어느새 GC 매장에도 전해졌는지 매장 직원은 유인영과 소은정이 들어오자 곧바로 가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 유인영은 머리를 쓸어 넘기고 화장을 고치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 “눈 똑바로 뜨고 제대로 봐요! 내 가방이 진짠지 가짠지!”
  • 직원은 유인영의 가방을 안에서부터 밖에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방 체인은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
  • 그러자 옆에 있던 소은정이 귀띔했다.
  • “체인도 잘 살펴보세요.”
  • “은정아, 너는 이런 가방 사보기나 했어? 사보지 못했으면 입 다물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 괜히 아는 척하지 말고.”
  • “그래, 네 말대로 나 못 사봤어. 하지만 네 가방이 짝퉁이라는 게 어디서 가장 잘 드러나는지 알아? 바로 가방 체인이야. 네 가방은 구리 안에 쇠로 되어있거든? 잘 봐, 겉은 노란색인데 안은 하얗잖아. 그런데 GC 브랜드 가방 체인은 원래 안에서부터 겉에까지 죄다 구리로 만들어졌어! 이제 알겠어?”
  • “허튼소리 그만해! 아까도 말했지만 나 이 가방 2천 4백만 원 주고 샀어. 그런데 이게 어떻게 짝퉁이야!”
  •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유인영은 자기가 2천4백만 원씩이나 주고 짝퉁 가방을 샀을까 봐 불안하고 화가 치밀었다.
  • 그때, 가방을 살펴보던 직원이 입을 열었다.
  • “저분 말씀이 맞아요. 저희 브랜드 가방은 모든 체인을 다 구리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고객님 가방 체인은 구리 안에 쇠로 되어있네요. 그리고 이 가방은 정가가 3천3백 60만 원이에요. 그런데 2천 4백만 원을 주고 사셨다니, 죄송하지만 어디에서 구매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 매장 직원은 충분히 순화해서 부드럽게 말했지만 사실 그 속에는 유인영의 가방이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산 것이 아니므로 짝퉁이 분명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 유인영은 직원에게서 가방을 확 낚아채고는 가방 체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구리 안에 쇠붙이가 있는 게 확실했다.
  • 그녀는 자기가 2천4백만 원을 주고 짝퉁 가방을 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 그 분풀이를 매장 직원에게 했다. 유인영은 직원의 옷깃을 홱 잡으며 말했다.
  • “그럴 리 없어! 내가 2천 4백만 원이나 주고 샀는데 이게 어떻게 가짜야? 당신 눈 똑바로 뜨고 제대로 살펴본 거 맞아? 이 가죽, 이 디테일 잘 좀 살펴보란 말이야!”
  • 유인영의 난폭한 행동에 깜짝 놀란 직원은 다급히 백화점 경비팀을 불렀다.
  • 다급히 매장에 달려온 경비팀 직원들은 미친 듯이 날뛰는 유인영을 잡고 매장 밖으로 끌어내며 말했다.
  • “진정하세요. 자꾸 이렇게 난동 부리면 경찰 부를 거예요!”
  • 소은정은 옆에서 미손 띠 얼굴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 ‘5년 전 나를 버리고 이런 수준의 여자를 선택하다니... 조지훈 당신 눈이 정말 형편없는 거였어.’
  • 한편, 구경꾼 중에는 휴대폰을 꺼내 난동 부리는 유인영의 모습을 녹화하거나 사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 그중 몇 개의 카메라에서 플래시가 켜지자 그제야 유인영은 자기 모습을 사람들이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제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신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 경비팀 직원을 향해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이거 놔! 이거 놓으라니까!”
  • 경비팀 직원들은 그녀가 냉정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놓아주었다. 하지만 놓아주고 나서도 곧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그녀를 지켜보았다.
  • 유인영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죽일 듯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노려보았다.
  • “소은정, 너, 두고봐!”
  • 잔뜩 부아가 치민 유인영을 향해 소은정은 그저 웃어 보였다.
  • “그래, 그러면 잘 가! 다음번에 가방 살 땐 주의 좀 하고. 2천 4백만 원을 주고 짝퉁을 샀다니... 내가 다 가슴이 아파지려고 그러네.”
  • 약 올리는 소은정의 말을 듣고 다시 화가 치민 유인영은 2천4백만 원짜리 짝퉁 가방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발로 여러 번 힘껏 밟았다.
  • 그러자 유인영의 가방에서 립스틱이며 쿠션이며 화장품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 ‘유인영, 오늘 2천 4백만 원보다 더 많은 돈을 잃고 있군.’
  • 소은정은 왠지 기분이 좋았다.
  • 그녀는 옆에 얌전히 서 있는 소연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 “아들, 우리 인제 그만 가자!”
  • 소연준은 작은 손가락으로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빠르게 치솟는 댓글 수와 관람 수를 보며 씩 웃었다.
  • 소연준은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고 오랜만에 먼저 소은정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