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옹 국제공항에서 출발해 해운시국제공항으로 오는 CT078 비행기가 이미 착륙하여...”
안내방송이 나오자 출구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들썩였다.
‘소은정 디자이너님’이라는 팻말을 든 장소윤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제일 앞자리를 차지했다.
그녀는 출구에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어울릴법한 성숙하고 세련된 여자를 눈 씻고 찾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런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의 눈길을 끈 사람은 검은색 벙거지를 쓰고 캐리어에 웬 꼬마를 앉히고 걸어오는 여자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 여자가 눈길을 끌었다기보다는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옷과 전체적인 분위기가 시선을 끌었다.
옷에 관해 공부해 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여자와 꼬마가 입고 있는 옷에는 숨은 포인트들이 많았다. 적당히 센스 있으면서도 절대로 과하지 않은 옷차림에 장소윤은 멍하니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전체적으로 날씬한 편이었지만 볼륨감이 좋았다. 그녀는 F 사의 자수가 새겨진 검은색 크롭탑에 C사의 9부로 된 카키색의 배기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신발은 화룡점정으로 부츠를 신었다.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조화를 이루어 옷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검은색 벙거지 밑으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 또한 아주 아름다웠다. 얼굴은 갸름했고 커다란 눈은 정기가 넘쳤으며 코는 오뚝하고 입술은 적당하게 작은 게 탑급 연예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미모였다.
패션 디자이너들이 선호하는 모델은 몸매가 뛰어나면서 얼굴은 개성이 넘치는 유형이었다. 그래야 모델이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무대를 워킹하면 얼굴이 아니라 옷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기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예쁜 모델들은 종종 시선을 옷이 아닌 얼굴에 집중적으로 받을 수가 있었기에 디자이너들이 옷이 묻혀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때, 장소윤이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던 여자가 캐리어를 끌고 장소윤에게로 다가오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제가 바로 소은정이에요.”
깜짝 놀란 장소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답했다.
“반가워요, 디자이너님. 저는 장소윤이라고 해요. 해운시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공항에 마중 오기 전 장소윤은 소은정의 경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바가 있었다. 자료에 의하면 그녀는 꽤 대단한 인물이었는데 파리에서 두 차례 개인 패션쇼를 열었고 지난해에는 MF 신인 디자이너 패션어워즈에서 최우수 디자이너 상을 받기도 했다.
장소윤은 소은정이 젊은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지는 미처 몰랐기에 속으로 은근히 놀라면서도 감탄했다.
소은정은 두 눈을 반짝이며 선망의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장소윤을 보며 싱긋 웃었다.
“사실 저 해운시에서 나고 자랐어요.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해운시에 다시 돌아온 거예요.”
공항 밖으로 나온 소은정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4년만이야... 결국은 이곳에 다시 돌아왔어.’
4년 전의 소은정은 처참한 몰골로 해운시를 떠났다면 4년 후의 지금은 주목받는 신인 디자이너의 신분으로 해운시에 다시 돌아왔다.
장소윤은 소은정을 보며 힘차게 말했다.
“소은정 디자이너님께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신 것을 환영해요! 디자이너님, 차는 이미 대기시켰어요. 저쪽으로 가시죠!”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연준이 놀고 있던 휴대폰의 화면을 가리며 자못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
“연준아, 너 엄마랑 어떻게 약속했어? 계속 휴대폰하면 엄마 진짜 화낸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장소윤은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이렇게 젊어 보이는 소은정에게 몇 살짜리 아들이 있을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몸매를 보면 아이를 낳았다는 게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작은 벙거지를 쓰고 캐리어에 앉은 채 말없이 휴대폰을 놀고 있던 아이가 고개를 들자 장소윤은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꼬마 남자아이는 검은색 상의에 카키색의 바지 그리고 검은색의 부츠까지 소은정과 똑 닮은 커플룩을 입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환호가 터져 나올 만큼 아주 귀여웠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이목을 끄는 게 있다면 바로 얼굴이었다. 아이답지 않게 깊고 그윽해 보이는 눈, 이미 완성형이라 봐도 무방할 오뚝한 코, 그리고 도톰한 입술에 통통한 볼까지 동화 속에 나오는 왕자님이 현실에 있다면 꼭 마치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꼬마 왕자님은 소은정의 불호령에도 휴대폰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아이는 자그마한 손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소은정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