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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귀국

  • 5년 뒤, 해운시국제공항.
  • 부드러운 목소리의 안내방송이 공항에 울려 퍼졌다.
  • “프랑스 리옹 국제공항에서 출발해 해운시국제공항으로 오는 CT078 비행기가 이미 착륙하여...”
  • 안내방송이 나오자 출구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들썩였다.
  • ‘소은정 디자이너님’이라는 팻말을 든 장소윤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제일 앞자리를 차지했다.
  • 그녀는 출구에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어울릴법한 성숙하고 세련된 여자를 눈 씻고 찾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런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 그 대신 그녀의 눈길을 끈 사람은 검은색 벙거지를 쓰고 캐리어에 웬 꼬마를 앉히고 걸어오는 여자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 여자가 눈길을 끌었다기보다는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옷과 전체적인 분위기가 시선을 끌었다.
  • 옷에 관해 공부해 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여자와 꼬마가 입고 있는 옷에는 숨은 포인트들이 많았다. 적당히 센스 있으면서도 절대로 과하지 않은 옷차림에 장소윤은 멍하니 여자를 바라보았다.
  • 여자는 전체적으로 날씬한 편이었지만 볼륨감이 좋았다. 그녀는 F 사의 자수가 새겨진 검은색 크롭탑에 C사의 9부로 된 카키색의 배기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신발은 화룡점정으로 부츠를 신었다.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조화를 이루어 옷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 같았다.
  • 그리고 검은색 벙거지 밑으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 또한 아주 아름다웠다. 얼굴은 갸름했고 커다란 눈은 정기가 넘쳤으며 코는 오뚝하고 입술은 적당하게 작은 게 탑급 연예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미모였다.
  • 패션 디자이너들이 선호하는 모델은 몸매가 뛰어나면서 얼굴은 개성이 넘치는 유형이었다. 그래야 모델이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무대를 워킹하면 얼굴이 아니라 옷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기 때문이었다.
  • 지나치게 예쁜 모델들은 종종 시선을 옷이 아닌 얼굴에 집중적으로 받을 수가 있었기에 디자이너들이 옷이 묻혀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 그때, 장소윤이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던 여자가 캐리어를 끌고 장소윤에게로 다가오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제가 바로 소은정이에요.”
  • 깜짝 놀란 장소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답했다.
  • “반가워요, 디자이너님. 저는 장소윤이라고 해요. 해운시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 공항에 마중 오기 전 장소윤은 소은정의 경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바가 있었다. 자료에 의하면 그녀는 꽤 대단한 인물이었는데 파리에서 두 차례 개인 패션쇼를 열었고 지난해에는 MF 신인 디자이너 패션어워즈에서 최우수 디자이너 상을 받기도 했다.
  • 장소윤은 소은정이 젊은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지는 미처 몰랐기에 속으로 은근히 놀라면서도 감탄했다.
  • 소은정은 두 눈을 반짝이며 선망의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장소윤을 보며 싱긋 웃었다.
  • “사실 저 해운시에서 나고 자랐어요.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해운시에 다시 돌아온 거예요.”
  • 공항 밖으로 나온 소은정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 ‘4년만이야... 결국은 이곳에 다시 돌아왔어.’
  • 4년 전의 소은정은 처참한 몰골로 해운시를 떠났다면 4년 후의 지금은 주목받는 신인 디자이너의 신분으로 해운시에 다시 돌아왔다.
  • 장소윤은 소은정을 보며 힘차게 말했다.
  • “소은정 디자이너님께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신 것을 환영해요! 디자이너님, 차는 이미 대기시켰어요. 저쪽으로 가시죠!”
  •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연준이 놀고 있던 휴대폰의 화면을 가리며 자못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
  • “연준아, 너 엄마랑 어떻게 약속했어? 계속 휴대폰하면 엄마 진짜 화낸다?”
  •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장소윤은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이렇게 젊어 보이는 소은정에게 몇 살짜리 아들이 있을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몸매를 보면 아이를 낳았다는 게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 작은 벙거지를 쓰고 캐리어에 앉은 채 말없이 휴대폰을 놀고 있던 아이가 고개를 들자 장소윤은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 꼬마 남자아이는 검은색 상의에 카키색의 바지 그리고 검은색의 부츠까지 소은정과 똑 닮은 커플룩을 입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환호가 터져 나올 만큼 아주 귀여웠다.
  • 그런데 그것보다 더 이목을 끄는 게 있다면 바로 얼굴이었다. 아이답지 않게 깊고 그윽해 보이는 눈, 이미 완성형이라 봐도 무방할 오뚝한 코, 그리고 도톰한 입술에 통통한 볼까지 동화 속에 나오는 왕자님이 현실에 있다면 꼭 마치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 꼬마 왕자님은 소은정의 불호령에도 휴대폰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아이는 자그마한 손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소은정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 “엄마, 이제 마지막 공식만 입력하면 돼요. 그러면 프로그램 완성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