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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우연한 만남

  • 화면 속의 데이터를 보는 소연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는 만족스럽다는 듯 캐리어에서 뛰어내리더니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는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아기 목소리로 시크하게 말했다.
  • “엄마, 가요!”
  • 소은정은 캐리어를 끌고 아들의 뒤를 따르며 장소윤에게 말했다.
  • “소윤 씨, 인제 그만 가요.”
  • 차에 앉아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장소윤은 그제야 네 살짜리 아이가 프로그래밍에 능숙하다는 충격에서부터 조금씩 벗어났다. 장소윤은 소연준을 품에 안고 있는 소은정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 “디자이너님, 아기가 정말 네 살 맞아요?”
  • 사실 소은정에게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소은정은 아들에게 물병을 건네며 대답했다.
  • “그럼요. 확실해요. 우리 연준이가 나이는 어리지만, 또래에 비해 똑똑한 편이에요. 사실 전에 살던 이웃집에 프로그래머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한테서 프로그래밍을 반년 정도 배웠어요. 그래서 간단하게 할 줄 아는 거예요.”
  • 소은정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 검사결과에 의하면 소연준의 아이큐는 250으로 상위 1%에 들어갔는데 특히 기억력이 남달랐다. 네 살도 안 됐지만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알았고 고등학교 단계의 내용 역시 큰 어려움 없이 이해했으며 여섯 개 나라의 언어에도 재능을 보였다.
  • 그리고 프로그래밍 역시 누군가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책을 보고 사고하고 직접 손으로 해보면서 혼자 배워낸 것이었다.
  • 소은정은 자기 아이가 뛰어나기를 바라지 않고 그저 건강하고 즐겁게 커 주기를 바랐기에 다른 사람들이 아이에 관해 물을 때면 될수록 눈에 띄지 않게 무난하게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 한편, 소연준의 매력에 빠진 장소윤은 한 번이라도 더 소연준과 말하기 위해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 소연준에게 건네며 말했다.
  • “연준아, 나는 소윤 이모야~ 이거 먹지 않을래?”
  • 하지만 소연준은 고개를 홱 돌리며 장소윤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장소윤이 몇 번이고 말을 더 걸어봤지만, 소연준은 아예 소은정의 품에 고개를 묻어버린 채 묵묵부답이었다.
  • 그러자 소은정은 장소윤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 “우리 연준이가 낯을 조금 많이 가려요.”
  • 소은정의 말을 들은 장소윤은 왠지 소연준이 더욱 귀엽게 느껴졌다. 그래서 가는 길 내내 장소윤은 참지 못하고 소은정에게 소연준에 대한 질문들을 퍼부었다.
  • 소은정 역시 아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러다 소연준이 삐지기라도 할까 봐 걱정되어 장소윤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 “우리 집 애가 부끄러움이 많아요. 자꾸 본인 얘기하면 부끄러워하니까 다음번에 없을 때 이야기해요.”
  • 장소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 ‘그놈 참 귀엽고 사랑스러워!’
  • 장소윤은 소은정을 회사에서 마련해준 숙소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준 후, 바로 회사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녀는 휴식 시간을 이용해 트위터에 소은정의 천재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올렸다.
  • 덕분에 VG 해운시 계열사에 있는 직원들은 소은정을 만나기도 전에 그녀에게 천재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게 되었다.
  • 한편, 숙소에 도착한 소은정은 짐을 정리한 후 바로 원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은정아! 마이 달링! 우리 양아들도 해운시에 온 거야? 우리 똥강아지 빨리 보고 싶어!”
  • 소은정은 기운 넘치는 원민아의 목소리를 듣고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 “당연하지, 같이 도착했어. 그런데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네 양아들만 보고 싶어 하고 나는 안 보고 싶어?”
  • 귀엽게 자기 아들을 질투하는 소은정에게 원민아는 깔깔 웃으며 수화기 너머로 쪽 하고 뽀뽀 소리를 내며 말했다.
  • “우리 일 년도 넘게 못 봤지? 그동안 너랑 연준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나 곧 회의 있어서 이만 끊을게. 저녁에 좋은 곳에서 밥 같이 먹어.”
  • “그래, 어서 가봐. 저녁에 보자고.”
  • 소은정은 원민아가 자기 집 회사에서 대표이사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용건만 간단히 이야기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 소연준은 원래 숙소에서 프로그래밍에 관해서 더 연구해 볼 생각으로 밖에 나가고 싶어 하지 않았으나 소은정이 하도 나가자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결국 맥북을 사주는 조건으로 외출하게 되었다.
  • 차에서 내린 소은정은 소연준이 말 한마디도 없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뚱해 있자 참지 못하고 아들의 볼에 뽀뽀하며 물었다.
  • “우리 아들, 엄마가 너 나오는 조건으로 맥북 사준다고 했잖아. 그런데도 표정이 왜 그래?”
  • 아이큐가 250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애는 애였다. 소연준은 입을 삐죽 내밀며 토라진 표정으로 말했다.
  • “엄마, 여기 너무 더워요.”
  • 해운시는 이제 막 삼복더위에 진입한 터라 밖의 기온이 38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밖에서 조금이라도 오래 있을라치면 온몸에 땀이 흥건하게 났다. 어른도 그러한데 어린 소연준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 차에서 내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어느새 소연준의 이마에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 소은정은 아들이 더위에 얼굴이 빨개지자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공공장소에서는 안지 않겠다던 소연준과의 약속도 뒤로하고 아들을 번쩍 안고 냅다 백화점으로 뛰었다.
  • 백화점 입구에 도착한 소은정이 미처 소연준을 내려놓기도 전에 갑자기 웬 사람이 불쑥 나타나 그들에게 부딪쳤다. 그러다 보니 품에 안고 있던 소연준이 하마터면 나가떨어질 뻔하였다.
  • 소은정은 너무나도 놀라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 그런데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먼저 이들에게 부딪쳤던 여자가 되레 성을 내며 말했다.
  • “어머, 눈은 어디에다 두고 다니는 거예요? 당신들 때문에 가방 체인이 끊어졌잖아요!”
  • 익숙한 목소리였다. 소은정은 고개를 들고 여자를 바라보았다.
  • 바로 5년 전 자신을 사지로 내몬 장본인, 대학교 때 기숙사 룸메이트 유인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