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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조롱

  • 눈앞의 유인영은 5년 전의 유인영과 크게 달라져 있었다. 몸에 걸친 것들은 죄다 명품이었는데 특히 손에 들고 있는 GC 가방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명품 가방의 체인이 조금 전 부딪치면서 끊어지게 된 것이었다.
  • 유인영의 얼굴 또한 5년 전과 달라져 있었다. 코, 눈, 윤곽 예전과 많이 달라졌는데 돈을 쓴 것만큼 예뻐져 있었다. 하지만 금방 주사를 맞아서 그런지 얼굴은 예쁘면서도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럽고 어딘가 어색했다.
  • ‘유인영... 5 년 동안 아주 잘 지냈나 보네. 그 말인즉 조지훈도 아주 잘 지냈다는 소리겠지...’
  • 소은정이 유인영을 훑어보고 있을 때, 유인영 역시 소은정을 아래위로 찬찬히 훑어보았다.
  • ‘브랜드를 알 수 없는 검은색 티셔츠, 평범해 보이는 청바지 그리고 하얀색 신발에 유행 지난 가방까지. 몸에 걸친 액세서리라고는 시계가 전부야. 짠 내 나게 살았나 보네.’
  • 유인영은 팔짱을 끼고 가련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 “쯧쯧. 은정아, 어떻게 지내나 했더니 이러고 사는 거야? 이 가방 이천만 원이 넘는 가방인데, 어휴. 됐다, 됐어. 딱 봐도 물어줄 형편도 안 되는 것 같으니까 그만 가 봐.”
  • 유인영은 소은정이 백화점 1층에 즐비한 사치품들을 소비할 능력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 ‘애를 데리고 백화점을 부랴부랴 찾은 건 에어컨 바람이나 쐬려고 그런 거겠지. 쯧쯧.’
  • 유인영의 비아냥에 소은정이 반박하기도 전에 소연준이 먼저 말했다.
  • “이봐요, 못생긴 아줌마! 아줌마가 먼저 우리 엄마한테 부딪친 거거든요? 우리 엄마도 아줌마한테 뭘 물어내라고 하지 않았는데 아줌마가 왜 먼저 그러시는 거예요? 설마 지금 사기 치는 거예요? 자해공갈 뭐 그런 거?”
  • 자해공갈이라는 단어는 소연준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 구글에서 본 단어였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에서는 자해공갈로 다른 사람에게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 ‘엄마가 너무 착해 보이니까 저 아줌마가 이러는 거야. 나는 집안의 유일한 남자니까, 엄마를 반드시 잘 지켜야 해.’
  • 유인영은 보잘것없어 보이던 소은정의 아들이 이처럼 똑 부러지게 자기 앞의 말을 하자 순간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 ‘아니, 금방 주사 맞아서 조금 부자연스럽기는 해도, 내가! 이 천하의 유인영이 못생겼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지 않아?’
  • 유인영은 어린아이를 상대로 말싸움하고 싶지 않았기에 대신 소은정에게 시비를 걸었다.
  • “은정아, 애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애가 너무 교양 없이 말하잖아. 우리 둘 사이의 옛정을 생각해서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런 식이면 안 되겠어!”
  • 소은정이 제일 싫어하는 얘기가 바로 아이 교양을 어떻게 시켰냐는 말이다. 그런데 제일 싫어하는 말을 자기 가정을 파탄 낸 내연녀에게서 들어야 한다니 더욱 납득이 되지 않았다.
  • 소은정은 몸을 숙여 씩씩대고 있는 소연준의 볼에 뽀뽀해주고는 작게 속삭였다.
  • “연준아, 연준이가 엄마를 보호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은 엄마가 너무나도 잘 알겠어. 그런데 이 일은 엄마 혼자 해결할 수 있어. 그러니까 연준이는 엄마 곁에서 얌전하게 있어 줄래?”
  • 소연준은 당장이라도 나서 못생긴 아줌마를 밀쳐버리고 싶었으나 엄마가 직접 얘기하니 엄마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 소연준은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조용히 소은정의 뒤에 가서 휴대폰을 꺼내 들고 현란하게 손을 놀리며 프로그래밍하기 시작했다.
  • ‘얌전히 있으라고 했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까.’
  • 자리에서 일어난 소은정은 유인영의 가방을 보며 비웃는 투로 말했다.
  • “유인영, 5년이나 지났는데 너는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멍청해? 네 그 가방, 진품 아니야. 딱 봐도 짝퉁이라고. 기껏 해봐야 몇십만 원 정도 할걸? 그런데 몇십만 원짜리 짝퉁 가방으로 나한테 이천만 원을 넘게 물어내라니, 너무한 거 아니야? 뜯어내려면 뭘 좀 알고서 행동해.”
  • 사실 소은정도 첫눈에는 가방이 진품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조금 전, 끊어진 가방의 체인을 보며 소은정은 가방이 진품이 아닌 짝퉁이라고 확신했다.
  • 끊어진 가방 체인의 색상이 진품의 색상과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 백화점 입구에서 두 사람이 옥신각신 다투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짝퉁, 이천만 원, 뜯어내다와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에 사람들은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사람들은 소은정의 쪽으로 기울어져 유인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기 시작했다.
  • “어머, 이 사람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명품매장 쪽에 돈 많은 사람들이 온다는 거 알고 한 몫 제대로 뜯으려고 이러는 거야? 사지 멀쩡한 사람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
  • “생긴 건 멀쩡해서, 왜 이런 짓을 하나 몰라!”
  • 또 어떤 사람들은 아예 소은정에게 다가와 그녀에게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 “저런 사람은 봐주지 말아요. 경찰에 신고하는 게 답이에요. 여기 CCTV 전부 깔려 있으니까 신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