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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유치원

  • 5년 만에 다시 만난 엄마에게 푸대접받으니 소은정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의 곁에 소연준이 있었기에 하루가 지나자 다시 기운을 회복했다.
  • 소은정은 아침 7시 전부터 잠에서 채 깨지 못한 소연준을 번쩍 들어 화장실로 가 세수를 시켰다. 그러고는 다시 소연준을 안아 식탁에 앉혔다.
  • 그녀는 잠에서 깨지 못해 병아리처럼 꾸벅꾸벅 졸고 있는 소연준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소연준의 앞에 빵과 우유를 놓아주었다.
  • 그녀는 아들의 볼에 힘주어 뽀뽀하며 말했다.
  • “연준아, 우리 아들! 인제 그만 정신 차려! 오늘 유치원 가는 날이야, 그러니까 늦으면 안 돼.”
  • 유치원에 갈 거라는 말에 반쯤 감겨있던 소연준의 눈이 번쩍 떠졌다.
  • “저는 유치원 안 갈래요! 유치에는 죄다 침 흘리고 우는 아이들뿐이에요!”
  • 사실 소연준은 세 살 때 프랑스에서 유치원에 가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딱 하루 가고는 유치원의 어린이들은 침도 많이 흘리고 계속 울어 머리가 아프다며 이튿날부터 가기를 거부했다. 소연준이 자신을 방안에 가두는 것으로 시위했기에 소은정은 그때 하루 보내고는 줄곧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었다.
  • 소은정은 소연준의 빵에 잼을 바르고 빵을 먹기 좋게 잘라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연준아, 엄마 내일부터 출근해야 해. 그러면 너 혼자 집에 있어야 하잖아. 여기에는 고모할머니도 없단 말이야. 연준이를 봐줄 사람이 없으면 엄마 불안해서 어떻게 출근해?”
  • 소은정이 말하는 고모할머니란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원민아의 고모였다. 전에 소은정이 프랑스에서 출근할 때면 항상 고모할머니가 집으로 와서 소연준을 봐주고는 했다. 하지만 귀국한 지금, 집에는 달랑 소은정과 소연준 두 사람뿐이었으므로 소연준을 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소은정은 소연준을 다시 유치원에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 소은정은 소연준이 또래 아이들답지 않게 성숙한 생각을 하는 게 반갑지 않았다. 계속 그런 식이면 친구도 없이 혼자 외롭지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을 계기로 소연준을 유치원에 보내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기도 했다.
  • “저 혼자 잘 지낼 수 있어요!”
  • 소연준은 빵을 입에도 대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소은정을 바라보며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은 자신의 의지를 밝혔다.
  • “그렇게 걱정되면 집에 감시카메라 설치해요. 그러면 엄마가 출근해서도 항상 저를 지켜볼 수 있잖아요.”
  • 소은정의 소연준의 입에 빵을 넣어주고는 그가 다 먹기를 기다렸다가 말했다.
  • “연준아, 엄마도 연준이가 혼자서 잘 지낼 거라는 거 알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 이제 고작 4살이야. 만약 너 혼자 있을 때, 나쁜 아저씨가 갑자기 집에 들이닥치면 어떡해? 엄마는 너 혼자 집에 있는 게 너무 불안해.”
  • 소은정은 소연준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소연준은 엄마의 눈빛에서 자신을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읽었다.
  • 소연준은 하는 수 없이 엄마에게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소연준은 입을 크게 벌려 엄마가 주는 빵을 받아먹으며 말했다.
  • “알겠어요. 그러면 오늘은 갈게요. 하지만 엄마도 약속해요. 만약 유치원에 저번처럼 온통 침 흘리는 아이들과 우는 아이들만 있다는 저는 내일부터 가지 않을 거예요!”
  • 소은정은 소연준이 유치원에 가겠다고 하자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그래, 그렇게 하자.”
  • 밥을 먹은 후, 소은정은 소연준에게 파란색 체크무늬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히고 검은색 구두를 신겼다.
  • 그렇게 입히면 조금 더 얌전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 하지만 그렇게 입은 당사자인 소연준은 줄곧 웃지도 않고 시크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어딘가 도도하면서도 귀해 보였다.
  • 소은정은 참지 못하고 아들의 볼에 또다시 뽀뽀했다.
  • 그러자 소연준은 덤덤한 표정으로 침이 묻은 볼을 쓱 닦았다.
  • 소은정은 오렌지색의 드레스를 입고 긴 생머리를 풀어헤쳤는데 자연스럽게 예뻤다.
  • 두 사람이 햇빛유치원에 도착하자 선생님은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 오 선생님은 엄마 곁에 얌전히 서 있는 소연준을 보며 아이가 얌전하고 참 귀엽다고 생각했다.
  • 소은정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햇빛유치원은 집 부근에서 알아주는,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한 유치원이었다. 유치원 내부로 들어가자 안에는 아이들이 그림이 곳곳에 붙여져 있었고 내부 환경은 역시 아주 깨끗했다.
  • 한번 쭉 둘러본 소은정은 햇빛유치원이 퍼그나 마음에 들었다.
  • 첫날인지라 소은정은 점심까지 소연준과 함께 하루를 보내며 유치원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기로 했다. 점심이 되자 그녀는 소연준과 함께 유치원에서 식사했는데 고기며, 나물이며 균형 잡힌 반찬들이 나와 다시 한번 안심했다.
  • 소연준도 그럭저럭 유치원 생활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자 소은정은 아들을 이곳에 보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 한편, 소은정의 뒤를 따라다니며 유치원에서 지내본 결과 소연준도 유치원이 마냥 싫지 않았다.
  • ‘여기에는 끝없이 우는 아이들도 적고, 코흘리개 아이들도 적어. 뭐, 나쁘지 않은 것 같아.’
  • 소은정과 소연준은 유치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함께 손을 잡고 유치원에서 나와 택시를 탔다.
  • 그리고 그 모습을 마침 맞은 쪽에서 걸어오던 유인영이 목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