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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푸대접

  • 홍진숙은 소파에 앉아 팔짱을 끼고는 범인을 심문하듯 인상을 쓰며 소은정에게 물었다.
  • “오기 전에 전화라도 하고 오지 그랬어?”
  • 소은정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 “죄송해요, 엄마.”
  • 소연준을 잡고 있는 소은정의 손은 어느새 점점 차가워졌다.
  • “언제 왔어?”
  • “어제 왔어요. 그래서 오늘 엄마랑 아저씨 뵈려고 연준이랑 온 거예요.”
  • “다시 안 갈 거지?”
  • “네.”
  • 홍진숙은 옆에 앉아 있는 소연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 “이게 그 아이야? 지금 몇 살인데?”
  • 소은정은 행여나 아이를 보면 엄마가 마음을 조금 열지 않을까 생각하며 소연준을 보며 말했다.
  • “연준아, 할머니께서 너 몇 살인지 물어보시잖아. 연준이, 몇 살이야?”
  • 소연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홍진숙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 “네 살.”
  • 필요 없는 말은 한마디도 더 하기 싫다는 눈치였다.
  • 홍진숙은 아이를 한번 쓱 훑어보고는 아이가 아이다운 멋이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이가 어쩌다가 태어났는지를 생각하자 다시 불결한 기분이 들어 소연준을 다시 더 쳐다보지 않았다.
  • “그래, 봤으니 됐어. 이제 다리도 멀쩡하고, 몸도 건강해. 그러니까 앞으로 너만 행실 똑바로 하고 다니면 나한테는 아무 문제도 없어. 자, 그러면 다 됐으니 인제 그만 가 봐.”
  • 홍진숙이 하도 쌀쌀맞게 굴자 소은정은 너무 서러워 코끝이 찡했다.
  •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아들을 안고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 “그러면 이만 가볼게요. 엄마, 건강 잘 챙겨요.”
  • 그때, 홍진숙의 남편, 즉 소은정의 새아빠가 손주를 안고 거실에 나타났다.
  • 그는 소은정을 보자 깜짝 놀라더니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은정이 왔구나. 아, 왜 벌써 가려고 그래? 더 놀다 가지 않고.”
  • 소은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홍진숙이 대답을 가로채며 말했다.
  •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대요. 바쁘다는 애를 왜 잡아요, 가게 내버려 둬요!”
  • 이어 홍진숙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남편의 품 안에 있는 손주를 받아 자기 품에 안으며 말했다.
  • “아이고, 우리 강아지. 할아버지랑 어디 갔었어? 놀이터에 갔었어? 재미있게 놀았어? 우리 강아지...”
  • 소은정의 새아빠는 소은정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그래, 그러면 조심히들 가.”
  • 소은정은 엄마와 새아빠가 그들의 손주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며 자신의 곁에 서 있는 소연준을 바라보았다.
  • ‘엄마는 연준이를 안아주기는커녕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고, 연준이에게 물 한 컵도 내어주지 않았어.’
  • 소은정은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고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 소은정과 소연준이 대문을 나서기 바쁘게 뒤에서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 그렇게 소은정과 소연준은 홍진숙에게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 소은정의 눈에서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또르르 흘러나왔다.
  • 소연준은 눈물을 흘리는 소은정을 보며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소은정의 목을 그러안고 작은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 “엄마, 엄마한테는 제가 있잖아요. 저는 항상 엄마 곁에 있을래요. 그러니까 엄마 울지 마세요.”
  • 소은정은 품속에 있는 소연준의 위로에 어쩐지 더욱더 서러워졌다. 아들에게 미안하면서도 또 고마웠다. 한참 후, 그녀는 눈물을 닦고 민망한 듯 작게 웃어 보였다.
  • “우리 아들, 엄마가 미안해. 엄마 다시는 안 울게. 자, 이제 엄마랑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 스테이크 집에 도착한 후 음식을 기다리는 데 소은정은 소연준이 자리에 앉아 뚫어져라 휴대폰을 보며 무언가 터치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 “연준아, 너 뭐해?”
  • 소은정은 불쑥 고개를 내밀어 소연준이 무엇을 하는지 보려 했지만, 소연준은 재빨리 피했다.
  • 그러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 “연준아, 너 또 나쁜 짓 하는 거 아니야?”
  • 소연준은 화면을 몇 번 더 터치한 후 잠금 버튼을 누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에 바로 앉으며 말했다.
  • “엄마, 이제 밥 먹어요.”
  • “안돼, 휴대폰 이리 줘. 뭐 했는지 엄마가 확인해 볼 거야.”
  • 소연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을 소은정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작게 탄식하더니 애늙은이처럼 말했다.
  • “엄마, 밥 먹을 땐 휴대폰 보는 거 아니랬어요.”
  • 소은정은 휴대폰을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소연준이 무언가 일을 꾸미는 것 같지만 딱히 이렇다 할 증거가 없었기에 소은정은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 “그래, 엄마 휴대폰 안 볼게. 인제 그만 밥 먹자.”
  • 그날 저녁, 홍진숙이 가족들과 함께 TV를 시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이 검게 변하더니 화면에 끔찍한 해골 모양의 그림이 나오며 노래가 울려 퍼졌다.
  • “찬 바람이 무섭던 날 엄마 외투에 숨어 집으로 가던 그 밤. 아직 생각이 나요, 작은 창 하나 단칸방이었어도 엄마의 가슴 속은 참 고요하고 따뜻했어요. 음~”
  • 갑자기 화면에 나타난 해골 모양의 그림과 기괴하게 울려 퍼지는 노래를 들은 홍진숙은 깜짝 놀라 심장병이 그만 다시 도지고 말았다. 그리고 홍진숙이 품 안에 안고 있던 손주 역시 놀랐는지 그날 밤 내내 고열에 시달렸다.